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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26. 2023

남파랑 길 39일차

오늘 시작하는 코스는 대전해수욕장에서 시작하는 남파랑 길 73코스이다.

남파랑 길을 걸으면서 비를 만난 것이 세 번 정도였고, 그중에서 조화리에서 만난 소나기는 비가 많이 오면 걷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준 엄청난 비였고, 나머지는 걷기에 지장이 없었다.

오늘 대전해수욕장에서 걸을 때 내리는 비도 우의를 입고, 배낭에는 비닐을 덮어서 걷지만 걷기 힘든 비다. 앞도 잘 안 보이고, 길바닥에 고인 물로 들어가면 신발에 물이 들어갈 판이다.

그렇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앞이 멀리 보이지 않는 길을 표식만 찾아서 가고 있다. 걷기 불편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가는 것이다.


예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심하게 온다. 다른 생각 없이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해서 걷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머리에 떨어지는 물을 손으로 훔쳐내면서 걷는 길이다.

예회 마을 정자에 비를 피해서 들어갔다.

피를 피해서 들어가 배낭을 벗어 놓고 편안히 쉬었다. 일단 내리는 비를 피해서 앉아서 쉬니까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리는 비를 감상하면서 여유도 갖는다. 가는 길만 없으면 이렇게 무한정 앉아서 쉬면서 그냥 멍 때리고 싶은 마음이다. 마을에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내리는 비와 정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다시 길을 바다가 보이는 갯벌 옆으로 걸어간다.

바다는 흰 것만 보이고, 갯벌에는 내린 비가 고여 있다.

갯벌에는 갯가에 내린 빗물이 도랑으로 흘러 들어가고 바닷가의 모든 것이 젖어 있다.

비를 맞고 계속 걸어가니까 비가 잦아드는 것 같다. 보슬비로 바뀌면서 먼바다와 산에 안개가 올라간다. 구름이 걷히면서 멀리 섬들이 구름 속에 어렴풋이 보이면서 신비한 세계처럼 보인다.

바닷가에 간척된 논에는 비를 맞아서 물이 고이고 땅들은 촉촉이 젖어 있다.

봄 가뭄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비로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 같다. 들판에 한창 자라는 마늘은 더 싱싱하고 푸른 것 같다.


간간이 부지런한 농부들이 들녘에 나오는 것이 보이고, 마을을 지나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은 집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한 집에 모여서 앞으로 할 농사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날이다.


비가 가늘어지면서 우의를 벗고 천천히 걸어간다. 내리는 빗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마을 길을 걸어가는 과객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모습이다. 조용한 마을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개들이 짖는다. 비 올 때는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비가 그쳐가니까 개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극성이다.

한집의 개가 담 너머로 머리만 내놓고 너무 극성으로 짖는다. 그냥 지나려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집 담장 밑으로 계속 개를 보면서 다가갔다. 마치 담장을 넘어서 들어갈 듯이 걸어갔다. 그렇게 짖던 개가 가까이 다가가자 담장 아래로 머리를 내리고 짖지 않는다.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돌아서 가던 길을 나오니까 내 등 뒤에서 다시 짖는다. 겁이 많은 것이 등을 보이니까 다시 덤비려는 것 같다. 개들은 원래 그런 것 같다.


금성 마을을 지날 때 동네 회관에 북소리가 나고 판소리가 들린다. 이 마을은 격조 있게 비 오는 날 모여서 판소리 연습을 하는 것 같다. 남도 지방 예술 수준이 다른 곳과는 다른 것을 느낀다.

긴 방파제를 지나서 바닷길 걷는다.

바다 위의 하늘에는 푸른빛이 간간이 보이는 것이 날이 개는 중이다. 내리는 비도 그쳤다.

비가 그친 바다 위에 섬과 물 위에 한 척의 배가 주인 없이 떠 있다.

그것이 보이는 바닷가에 다른 매화보다 늦게 핀 매화꽃이 눈에 띄게 활짝 펴 있다. 그냥 길가에 핀 야생 매화인 것 같다.

걷다가 보니가 이번 코스의 종점이 내로 마을에 도착했다. 내로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벚꽃이 만개한 나무가 있다. 보통 탐스럽게 피는 왕벚꽃 나무가 아니라 수양벚꽃 나무가 만개해 있다. 수양 벚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밑으로 늘어진 벚나무의 한 종류이다.

수양 벚나무가 활짝 핀 도로 옆 가정집에는 대문에 굽어 있는 잘생긴 적송이 있다. 주인이 세심하게 관리한 흔적이 보인다. 이 집의 문패에는 근면, 사랑, 행복이 적혀 있다. 부지런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73코스 종점인 마을 회관 정자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한다. 뒤에 있는 회관 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린다. 농사가 시작하기 전에 한가한 농촌 모습이다. 내로 마을 다음에는 외로 마을도 나왔다.


다시 걷기를 시작해서 보이는 바닷가 길에는 섬과 먼바다가 보인다. 처음 만난 곳은 물이 빠진 갯벌에 살고 있는 게들과 짱뚱어가 놀고 있는 곳이었다. 멀리서 보니까 그렇게 분주하던 갯벌이 사람이 나타나니까 삽시간에 조용한 갯벌이 되었다.

다음은 섬이 보이면서 바닷물이 금방 빠진듯한 바닷길이다.

바닷물과 거의 수평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을 가면서 건너 보이는 섬에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주위에는 타고 건너간 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다로 들어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바다를 건너오는 길이 있는 것 같다. 늘 건너다닌 길인 듯 바닷속을 걷는 사람을 신기하게 보면서 다 건너올 때까지 계속 돌아보면서 갔다.

이번 길도 바닷길이 끝나고 시골길을 간다. 직선 길이나 도로 길로 가면 가까운 거리를 논길로 돌렸다가 다시 산 밑으로 갔다가 마을로 들어갔다가 한다. 그래도 오르막이 없어서 표시가 난 방향으로 착실히 따라갔다.

이번 코스의 마지막도 멀지 않은 곳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서 있다. 길지는 않지만 주변 길보다 색다르다. 처음부터 잘 관리되지 않아서 중간에 죽은 곳이 많아서 새로 심은 작은 나무들과 조화롭지는 않았다.

종점인 남양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 시간표를 보니까, 과역에서 벌교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래도 확인 차원에서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버스를 타는 장소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벌교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여기도 한 사람에게는 밥을 팔지 않는다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는 혼자서 여행을 하면 곤란한 것 중에 하나는 식당에서 메뉴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거의 2인 이상이어야 식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먹고 싶으면 2인분을 시키면 된다.

그래서 주로 가능한 것이 순대 국밥, 뼈 해장국, 그런 종류이다. 여행을 오래 하면 해장국이 지겨워진다. 그래도 그런 해장국집이 있으면 감사한 날이 많다.

오늘은 김치찌개를 주인에게 사정해서 1인분을 시켰다. 역시 남도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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