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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23. 2023

남파랑 길 38일차

녹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시골길을 걸어가면서, 도로가에 핀 노란 꽃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지방을 걸으면서 여러 곳에 보았는데, 꽃 이름은 잘 모르지만, 수선화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길옆이나 담장 밑에 수줍듯이 피어 있는 것이 생명력도 강해 보이고, 수수한 노란색이 곱다.


용정마을과 도덕 마을을 지나는 곳에는 들판에 농사일을 시작한 곳이 많다. 논을 갈아서 곱게 장만해 놓은 곳이나 아침에 트럭터로 부지런히 논을 갈고 있는 곳도 여러 곳에 보인다.


이른 봄이라서 시골길을 걸으면 맞아야 하는 냄새가 있다. 퇴비 냄새인데, 지금이 밭이나 논에 퇴비를 넣는 시기이므로 냄새가 날 때이다. 퇴비를 넣지 않으면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 요즈음은 집에서 퇴비를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만든 퇴비 비료를 뿌린다. 퇴비 비료를 뿌리고 갈아엎으면 퇴비 비료 냄새가 거의 없어지지만, 뿌린 상태로 두면 냄새가 많이 난다.

그래도 아직도 집에서 만든 퇴비를 실은 경운기가 보인다.


지금 들에는 마늘과 양파가 한창 자라고 이쪽 지방에서는 옥수수를 밭에 심고 있다. 어제 심은 것으로 보이는 옥수수밭에 물을 듬뿍 뿌려 놓았다.


농로를 지나서 바다가 나왔지만, 날씨가 흐려서 먼바다가 흐릿하게 보인다. 섬들도 잘 보이진 않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잔뜩 흐린 바닷가 길에 작은 아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운동화도 있고 실내화도 있다. 모두 색깔과 종류가 다르지만, 같은 크기의 여자아이 신발 같다. 어린아이 신발을 바닷가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것이 의아하고,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신발들은 모두가 신지 않은 새 신발이다.


바닷가에는 교회가 아직 십자가를 달고 빈집이 되어있다.

걸으면서 느낀 것은 마을에서 교회는 가장 큰 건물인 경우가 많았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 한 경우도 많았다. 지금 마을에는 빈집을 자주 볼 수 있고, 폐교는 흔하게 보인다. 그래도 교회는 반듯하게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이렇게 폐가가 된 교회를 보니까 예전에 산티아고를 걸을 때가 떠오른다. 그곳 스페인에서도 성당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마을마다 성당이 거의 있었다. 그런데 작은 마을의 성당은 거의 폐쇄되거나 문을 닫고 방치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큰 성당도 미사 드리는 교인도 나이 든 노인들이 많지 않았다. 성당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대다수였다. 인구 감소와 종교를 믿는 사람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앞으로 우리 농촌 교회도 그런 모습으로 갈 것 같다.


길가에 벚나무들이 이제 꽃이 피려고 꽃망울을 떠뜨리기 시작하는 곳이 자주 보이고,

오늘도 임산도로로 걷는 곳이 많다. 임산도로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걷는 곳이라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인데, 날씨가 흐려서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임산도로에서 내려간 마을이 용동마을이다. 바다 앞에는 소나무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는 아담한 작은 항구마을이다.

이 해안선을 따라가면 고흥만 방조제 공원이 나온다. 이 해안 도로는 길고 풍광이 좋아서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고흥만 방조제 공원에는 가게와 식당도 있어서 여기서 점심을 해결했다. 이렇게 점심시간에 식당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이 공원이 71코스 종점이다.


방조제 공원에서 식사와 휴식을 하고, 다기 걷는 길은 고흥만 방조제이다. 그 길이가 3킬로나 되는 길은 양쪽이 모두 바다이다.

비가 간간이 내리는 긴 바닷길을 홀로 걸어간다. 세상에 홀로된 기분이 들면서 영원한 내 편이었던,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은 이제 떠났다. 나도 지금처럼 혼자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긴 길을 걸어간다.

간간이 차들은 지나지만, 이 방조제를 건널 때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조제 시작하는 곳에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작은 것이 아담해서 모형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전투기는 요격기로 한국전쟁 때 공을 많이 세운 퇴역 전투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길고 지루한 길을 넘어오니까 고흥만 생태 식물원이 나온다. 무슨 식물원인지는 모르지만, 새봄에 자라고 있는 것은 있었다.


해안선 길을 따라가면 풍류해수욕장이 나온다. 해수욕장이 작고 관리가 되지 않아서 주변이 썰렁한 기분마저 들고,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횟집은 그냥 지나면서 보이는 것만 다섯 집이나 보이는데, 모두가 문을 닫은 것 같다.


풍류해수욕장을 지나서 고개를 넘으면서 만난 것이 목련 꽃이다.

아직은 꽃들이 달려 있어서 볼만하지만, 밑에 떨어진 꽃잎은 모련 꽃의 화려함 뒤에 아쉬움을 보는 듯하다. 모련 꽃은 필 때는 순백색의 우아하고 아름다워 봄을 화려하게 알리는 전령사이다. 그런 꽃이 십 일을 넘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목련 꽃에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은 꽃은 하늘을 보고 웃으면서 자기들이 최고라는 하는 듯하다.


고흥에는 역시 유자나무가 많고 유자 과수원도 많이 보인다.


농사 준비를 많이 한 곳은 벌써 논에 물을 댄 곳도 보이고, 논들을 곱게 갈아서 준비해 놓았다.

대전 마을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려서 우의를 입고 걸어간다. 우의를 입고 걸어가면 안에 입은 옷은 땀으로 젖는다. 비가 오후 늦게 온다고 해서 비가 오기 전에 걷기를 마치려고 부지런히 걸어왔지만, 비가 걷는 것보다 더 빨리 왔다.


비 내리는 대전 마을 앞 벚나무도 피기 시작하는 나무가 많이 보인다. 해남 땅끝마을 가지 전에 활짝 핀 벚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착한 대전해수욕장은 해변과 해변의 곰솔이 잘 조성된 곳으로 해수욕장을 한창 정비 중이다. 곰솔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해변을 청소 중이다.


오늘은 푸른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흐린 날이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어서 힘든 걷기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숙소가 걷기를 마치고 그곳에 있으면 좋은데, 여기는 숙소를 찾으러 버스 타고 고흥읍으로 가야 한다. 다시 내일 아침에 이곳에 다시 와야 하는데, 타고 갈 버스가 오래 기다려야 한다. 걸으면서 정류장은 휴식하는 장소이고 기다리는 장소이다.

내일은 아마도 걷고 나서 더 가까운 벌교로 가서 숙소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남파랑 길도 이제 열흘 정도 걸으면 마칠 것 같다. 겸손한 마음으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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