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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22. 2023

남파랑 길 37일차

도화면에서는 출발할 때는 금방이라도 비가 오려는 듯이 잔뜩 흐린 하늘이다.

일기예보에는 저녁에 남해안에 비가 약간 온다고 했기에 우의를 입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하늘에 구름이 너무 심상치 않아 일기 예보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오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면 소재지를 벗어나 농로를 따라갔다.

그 거리가 한참을 가도 어느 산으로 올라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농로 길에 멀리 보이는 당간지주가 있다.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이곳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흥 신호리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를 지나서 제법 큰 신호 저수지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산으로 올라간다. 길은 임산도로이다. 잘 만들어진 임산도로이지만 오르막을 오르는 등산길이다.

힘이 들 무렵에 사방댐을 만난다. 이 산길은 천등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사방댐의 규모로 보아 산이 깊은 것 같다.


임산도로를 계속 올라가다가 올해 처음으로 벚꽃을 보았다. 임산도로에서 본 벚꽃은 산벚나무이다.

보통은 왕벚나무의 꽃이 보기가 좋고 먼저 피는데, 이곳에서 산벚꽃이 핀 것을 올해 들어서 처음 보았다. 이제 멀지 않아서 벚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천등산에 철쭉 나무 군락지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천등산에 진달래가 피어서 군락을 만들고 있다.

천등산에 올라서 내가 올라온 산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다시 천등산을 내려가면서 멀리 바다와 저수지가 보이지만, 날씨가 흐려서 전망이 좋지 않다.

날씨 좋은 날에는 천등산에서 본 남해가 볼만하다고 한다. 중간에는 삼나무 군락지도 만나고 내려가면서 산길에 홀로 서 있는 동백나무가 보인다. 동백나무가 산 중턱에 홀로 서 있는 것이 동백나무들에게 왕따 당해서 산중에 홀로 있는 듯하다.


산 아래 첫 번째 만난 마을은 천등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만난 꽃이 명자꽃이다.

오늘은 이 봄에 처음 피는 꽃을 두 번이나 만났다.


바다가 보이는 도로 길을 가다가 “정든 내 고향 백석 마을”이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이곳 지방은 마을의 표지석을 개인이 기증하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마을 표지석의 뒷면이나 앞면에 보면 기증자의 이름이 적혀 있고, 때로는 “어머니의 칠순 기념” 이런 식으로 내용까지 적어 놓은 것이 있다.

또 기억되는 것은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집이 많다. 보통 두세 마리를 키우고, 지나가면 한 마리가 짖으면 따라서 합창을 한다.

백석마을이 남파랑 길 69코스의 종점이면서 다시 시작하는 곳이다.


백석 마을의 고개 도로 길을 넘어서면, 바다가 나오고

오마 방조제가 있다. 오마 방조제의 간척 사업은 고흥군에 3개의 방조제를 막은 사업이다.


첫 번째 방조제를 지나면 넓은 농토와 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간척으로 만든 농토도 넓지만 방조제 둑으로 막혀서 저수지가 된 곳도 큰 호수처럼 보인다.


두 번째 방조제 옆에는 “오마 간척 한센인 추모 고원”이 위치하고 있다.

오마 간척 사업은 원래 소록도 한센인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보사부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센인이 간척 사업에 여러 해 참여해서 바다를 막았다. 그러던 중에 소관 부처가 이관되었고, 간척 사업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때 이곳 주민들이 한센인의 이주를 반대해서 한센인들은 철수했다고 한다.

한센인이 이 땅에서 살아보려고 이 땅 만드는데 참여했지만, 그러나 이 땅에 살아보지 못한 한이 담긴 추모공원이다.


마지막 방조제는 매동 마을을 지나면 나오고, 녹동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매동 마을을 내려가기 전에 산 밑에 개인 추모공원이 보인다.

이곳에는 석제와 시멘트로 추모공원을 조성한 곳이 흔하게 볼 수 있다. 조상들을 모시는 방법이 흙으로 분봉을 만들고 석제를 보강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에는 흙으로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동봉 방파제에는 물이 빠져서 갯벌이 드러나 보인다. 갯벌 너머는 멀리 한센인이 사는 소록도 건너가는 소록대교도 보인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해산물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갯벌 멀리 바닷가를 자세히 보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멀리 물 빠진 섬에도 사람이 보인다.

마지막 방파제를 지나서 녹동으로 들어오면 녹동 항구가 나온다. 잘 정비되고 쉴 곳도 많고, 먹을 곳도 많은 곳이다.


며칠 전에는 걷기가 너무 싫어서 그만 걷고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힘들어서 쉬고 싶은 것이 아니라, 걷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걷다가 보면 내가 왜 걷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그러다가 의미 없는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걷기 싫은 것이다. 그때 그런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면, 그만두고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는다.

다행히 마음을 비우고, 그냥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걸으니까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걷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서 걷는 것이다. 걸어가면서 처음 보는 것이 반갑고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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