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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21. 2023

남파랑 길 36일차

우주발사 전망대가 보이는 곳,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펜션 아저씨가 친절하고 순한 인상을 가진 분으로 저녁에 김치도 주고, 밥도 한 그릇 주어서 아침까지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이곳 다도해는 섬들이 바다와 어울려서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어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 남열 전망대”를 만드는 곳이다.

해안 길에 그런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해 뜨는 해안선과 바다에 비치는 그림자를 감상하면서 해안 산길을 걸어간다.


바다가 보이는 산길에는 진달래가 유난히도 붉게 피어 있는 길이다. 여기 진달래는 꽃잎이 겹으로 된 탐스러운 꽃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속의 임산도로를 걸으면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섬들과 바다를 감상한다.

섬 사이로 배 한 척이 물을 일으키면서 지나가는 모습도 풍경이다.


이런 좋은 길을 걸으면서 복잡한 마음보다는 주변에 보이는 것을 감상하면서 몸 상태에 맞게 그냥 걷는 것이다. 지나면서 보이는 것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고, 그것만 호기심으로 보면서 걷는 것이다. 다리에 힘이 있으면 조금 빨리 걷고, 힘들면 천천히 걸으면서 가는 세월과 같이 간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걸어서 다리가 피곤할 무렵이 되면, 막걸리 한 잔으로 피곤을 풀고 쉬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걷는 것이다.


아침 바다가 오늘은 맑고 고요하다. 날씨가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섬과 바다가 보이는 해안 길이 많이 보인다. 미세먼지까지 없는 맑은 날이 되어서 푸른 바다와 하늘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다.

이곳 고흥 영남면에서 가장 큰 마을인 사도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크기는 가장 크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면 소재지는 아니지만, 가장 큰 항구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뒤에는 삼각산이 있고 앞에는 만으로 된 바다여서 큰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곳이다.


사도 마을을 지나면 나오는 마을이 능정 마을이다. 사도 마을에서 능정 마을로 가는 해안선이 아름답다

해안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보면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이 있고

주변에 섬들이 여럿 있다. 아름다운 바다를 갖은 곳이다. 능정 마을을 넘어서면 보이는 섬 중에 새들이 사는 곳이 있다.

주변에 다른 섬도 있지만, 이곳에만 새들이 앉아있다. 이곳은 그렇게 크지 않은 작은 섬이지만 새들이 살기에 적합한 것 같다.


해창만 방조제가 길게 뻗어 있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길을 시작하기 전에 있는 작은 항구는 작은 섬들과 먼 산들이 조화롭게 자리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길게 뻗은 방조제를 막아서 만든 토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

이곳에 방조제를 막지 않았다면 여기도 무척 넓은 갯벌이었을 것이다. 이 방조제 안에는 아직도 넓은 저수지가 남아서 대단위 태양광 발전소를 만드는 중이다.

방조제를 걸어서 중간을 넘어서면, 해창만 간척 주공 기념탑이 나온다. 이곳이 67코스 마지막 지점이다. 이 탑 밑에는 사도 마을을 걸어올 때 마을에서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앞서간 아주머니들이 봄볕을 쬐고 있다. 복장으로 보아서는 어떤 일을 하러 왔는데, 지금은 쉬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시작한 길은 바닷길을 조금 걷다가 산길로 걸어가는 길이다.

그 길에서 하얀 민들레를 보았다.

하얀 민들레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데, 여기 고흥에서 본 것이다. 하얀 민들레가 토종 민들레이고, 노란 민들레는 외래종이라고 알려져 있다. 노란 민들레가 우성이라서 계속 번식해 가는데, 하얀 민들레는 계속 줄어서 지금은 귀한 민들레가 되었다. 고향 집 대문 옥상에 하얀 민들레를 심어 놓은 지 2년이 지났다. 그 대문 옥상에서 하얀 민들레가 펴 홀씨 되어 주변으로 날아가라는 동심으로 심은 것이다. 그 민들레가 핀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민들레가 필 무렵이면 외지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고향에는 민들레가 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올해 봄에는 이번 걷는 길을 마치고 돌아가면, 하얀 민들레가 피는 것을 보고 싶다.


산길에 들어서면서 이곳에서도 진달래가 만발해 있다. 이곳도 다른 곳보다 진달래가 많고 꽃도 진한다.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내가 올라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저 길을 올라올 때는 힘이 들어도 올라와서 보니까 긴 길을 온 것 같다.

때로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참 먼 길을 왔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보이는 것이 마늘밭 구석에 올라온 쪽파이다. 겨우내 땅속에 있다가 올라온 쪽파는 싱싱하고 진한 초록색이다.

이 쪽파로 파전을 해서 따뜻한 봄날에 양지바른 곳에서 정다운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쪽파를 보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래도 쪽파는 너무 싱싱해 보인다.


산 밑에 저수지 푸른 물에 낚싯대를 놓고 앉아있는 강태공이 보인다. 너무 한가롭고 여유가 있어 모습이다.

오늘이 한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인데, 이렇게 낚시를 하는 것은 실제로도 한가한 사람들일 것이다. 산 밑에 제법 큰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 이름이 남성마을이다.

큰 마을이기 때문에 가게가 있을 것 같아서 찾았는데,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가게이고 지금은 외출 중이라고 팻말이 붙어있다. 부녀회에서 운영한다는 가게가 있으면 그 마을에 다른 가게는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부녀회에서 가게를 운영하면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고 작은 마을은 가게가 거의 없다.


남성마을을 지나서 도로 길을 따라서 가면, 익금 마을이 나온다. 익금 마을은 앞바다에 떠 있는 삼각 섬이 신비해 보이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바다를 보고는 다시 시골길을 걸어간다. 시골길을 걸어가면 봉산 마을이 나오고 오늘 묵어갈 도화면 소재지가 나온다.

걷는 사람들이 도화면 소재지에 도착지로 정하는 것은 이 부근에는 이곳에만 숙소가 있기 때문이다. 숙소가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오늘 길은 처음에는 바다와 같이 걸어온 길이었지만, 오후에는 거의 시골길을 걸어왔다. 봄볕이 좋아서 농사 준비를 하는 것이 느껴지는 농촌 들녘이었다.

오늘은 생각 없이 걸어 보려고 했던 날이다. 내일도 또 생각 없이 걸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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