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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Apr 06. 2023

추억의 오일장 날


노인은 아침나절을 보내고 10시가 넘어서 마을 앞 시내버스 정류소로 나왔다.

오늘은 읍내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지만, 마을에서 가는 버스가 이 시간에 오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마을이 제법 큰 곳이라 노인 외에 벌써 할머니 두 분이 정류소에 나와 기다리고 계신다. 버스가 제시간에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찍 오는 날도 있어서 노인들은 대체로 일찍 나와서 기다린다.

그래도 살아오면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서 보통 반 시간 전에는 나온다. 먼저 나온 할머니들과 어디 가는지 인사를 나눈다. 할머니 한 분은 읍내 오일장에 가지만, 한 분은 서울에 사는 아들 집에 간다고 한다. 서울 가는 할머니에게 인사가 오간다. 이제 가면 언제 오는 지도 물어보고, 뭐 하러 가는지도 물어본다. 서울 가는 할머니는 아들이 어디 살고, 무엇 일이 생겨서 보러 간다고 대답을 한다.


오늘은 버스가 제시간에 멀리서 오는 것이 보인다. 이야기하던 노인들은 누군가 “버스 온다"라는 말에 일어나서 정류장 밖으로 나간다. 버스가 서니까 가장 나이가 많아서 잘 걷지 못하는 노인부터 차에 오른다.

먼저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버스 계단에 발을 올려놓고 힘들게 올라가서 자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앉는다. 다음은 노인이 그래도 아직 버스에 힘 있게 올라서 할머니 뒷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마지막 할머니가 올라와 자리에 완전히 앉을 때까지 버스는 움직이지 않는다.

버스 기사는 노인들이 넘어지는 것을 가장 신경 쓰는 것이다. 노인들이 완전히 앉지 않고, 차가 움직이면 노인들은 쉽게 넘어지기 때문이다.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하여 다음 마을로 달려간다. 이때도 노인들은 손잡이를 손으로 꼭 잡고 앉아 계신다. 멀리 다음 마을의 정류장이 보인다. 벌써 이 마을에서도 노인들이 나와 계신 것이 보인다.

버스는 서고 두 노인이 타는데, 두 분은 부부인 것 것 같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버스에 오른다. 먼저 타고 있는 노인들은 일어서서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안타까운 눈으로 자리에 앉을 때까지 지켜본다. 다음에 타는 할아버지는 유모차를 먼저 차에 올리면서 버스에 오른다. 유모차가 의자에 부딪쳐서 잘 들어가지 않아 여러 번 흔들어서 간신히 통로에 자리를 잡고 할아버지도 그 옆자리에 앉는다.

버스 기사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말없이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시골의 시내버스는 유모차와 같이 타는 것이 익숙한 모습인 것 같다.

유모차를 옮기면서도 먼저 탄 노인과 아는 사이인지 “장에 가냐” 묻고는 자기도 장에 간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버스는 다시 가기 시작하고 유모차는 통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는 통로에 있는 유모차가 신경 쓰였는지 할아버지에게 유모차를 뒤로 갖다 놓으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들을 할아버지는 더 움직이는 것이 귀찮은지 사람이 더 타면, 어떻게 하겠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할머니는 더는 말을 않지만,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할아버지는 움직이는 버스에서 움직이기 힘이 들고 귀찮아서 그냥 유모차를 놓아두기 바라는 것이다.

그래도 버스가 달리니까 노인들은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지 서로 말을 건넌다. 그 말 중에는 몸에 아픈 곳이 없는지 물어본다. 노인들은 보기에도 병색이 있어 보이지만, 노인들은 만나면 일상적인 인사말이 건강이다.


이웃면 소재지가 가까워진 선바위에서 한 노인이 정류장에 앉아 있다. 이 노인은 정류장 밖으로 나오지 않고 버스가 와서 설 때까지 정류소 안에 있다가 겨우 걸어서 나온다.

이 노인이 버스에 올라오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 버스에 올라오는 동안 문 바로 옆에 있던 노인이 뒤로 가고 이 노인이 그 자리에 앉는다. 노인들은 이 골짜기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서로 아는 사이라 인사를 한다. 나중에 탄 노인은 몸이 아파서 힘들다는 한탄을 하면서 면 소재지에 있는 경로당에 간다고 한다. 집에서 온종일 있어도 사람 구경 못하니까 이렇게 시내버스를 타고 경로당에 간다는 것이다.

경로당에서 놀고는 막차로 다시 집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버스는 면 소재지 경로당 앞을 지나면서 정류소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경로당 바로 앞에 버스가 선다. 경로당 가는 노인을 위해서 버스가 선 것이다. 노인은 다시 천천히 내려서 경로당으로 한발 한발 겨우 걸어간다. 그러면서도 버스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노인들과 마무리 인사를 건넌다. 경로당으로 가는 노인을 보면서 버스는 소재지 정류소에 섰다. 서울 가는 할머니가 내리고 타는 사람도 없이 다시 읍으로 버스는 달린다.


버스는 읍내 오일장에 갈 때까지 여러 정류소를 지났지만, 사람은 타지 않았다. 큰 시내버스가 넷 사람이 타고 온 것이다. 시골 버스는 자리가 없어서 못 타는 경우도 없지만, 열 명 넘게 타는 경우도 많지 않다. 시골 사람들을 위해서 군에서 지원을 받아서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네 노인들이 도착해서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느릿느릿 걸어서 오일장을 걸어 올라간다.

예전에 양쪽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비좁게 자리하고 있던 곳이 이제는 몇 사람만 자리하고 있다. 장사하는 사람은 주변 오일장이 서는 곳에서 늘 보이는 사람들이다. 물건도 생선과 채소가 대부분이고, 인근 마트나 점포에 있는 물건들이다. 오늘은 시골에서 기른 것이나 채취한 것을 가져오는 할머니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상설 점포 앞에 있는 할머니들도 집에서 가져온 채소인 것 같지만, 장마다 어디서 구입해서 오는 장사하는 할머니들이다.


노인은 읍내 오일장터를 버스에서 내려 시작되는 곳에서 끝까지 가면서 장마다 보는 것이지만,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구경을 한다. 노인은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 며칠을 빼고는 거의 오일장에 거르지 오는 장돌뱅이다. 노인은 농사일로 힘들어진 몸과 마음을 오일장에 다녀가면 풀린다고 한다. 장날에 기분을 풀고 다시 의욕을 갖고 일하면서 다음 장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읍내 오일장 가는 것이 노인은 가장 좋아하는 습관이 된 것이다.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오일장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지금도 노인은 오일장에 오는 것이 낙이고 즐거움이다. 노인은 아직도 오일장이 오면 옛 생각도 나고, 사람 사는 맛을 느끼는 것 같다.


오일장터에서 다음으로 가는 곳은 읍내 다방이다. 그 다방은 오일장마다 노인이 와서 젊은 마담 언니와 인사하고 농담하는 곳이다. 마담 언니는 노인이 오면 옆에 붙어 앉아서 비싼 쌍화차를 시켜서 같이 마시면서 애교를 떨어준다. 그런 것이 노인에게는 무척 기다렸고 받고 싶은 대접이다. 쌍화차 값이 들어도 읍내 다방 언니의 화장품 냄새가 노인에게는 향기롭고 좋은 것이다.


다방에 앉아 있으면 수년 전이 생각난다.

그때는 다방에 온 것이 아니라 인근 “추억 식당”에 같은 마을에 사는 노인과 인근 마을에 사는 노인 네 명이 오일장 날에 모이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오일장 날 네 사람이 모이면, 오만 원씩 모아서 오전부터 추억 식당에서 한잔하는 날이다. 이날이 되면 추억의 주인아주머니는 노인들을 오기를 기다렸다가 손도 잡아주고 애교를 떨었다. 노인들은 그 맛에 장날이 되면 읍내 “추억 식당”에서 한잔하러 와서 기분을 푸는 것이다. 노인 사총사는 추억 식당 아주머니 손도 잡아보기도 하고 인근 다방에 커피를 시켜서 아가씨들이 따르는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때 농사일을 하지 않은 젊은 여자들의 고운 손을 잡아보는 것이 좋아서 돈이 아까운 줄 몰랐다. 그렇게 오일장 날은 젊은 여자 분냄새 맞는 날이었다.

노인 사총사는 젊은 다방 아가씨 손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경쟁도 했다. 때로는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호기로운 노인은 젊은 다방 아가씨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가슴이라도 만지면 지갑을 열어서 거금을 주어야 했다. 그러면 다른 노인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다음 장날까지 만나면 이야기 거리였다.


그러던 사총사 중에서 한 사람이 먼저 세상 떠나고, 그 뒤로도 몇 년은 만났었다. 시간이 가면서 술을 몸 생각해서 줄이고 멀리하더니, 나머지 두 사람도 이제는 요양원으로 가고 노인 사총사의 오일장 나들이도 옛말이 되었다.

혼자 남은 노인도 이제는 술을 먹으면 뒷날이 힘들고, 또 할머니의 성화 때문에 술을 끊은 상태이다. 그래도 그렇게 한평생 오던 오일장을 이제는 볼일이 있으나 없으나 습관적으로 가는 것이다.


혼자서 오면서 “추억 식당”에는 못 가고, 다방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가끔 오일장을 구경하면서 걸어가면 추억 식당 아주머니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추억의 아주머니도 옛날 애교는 찾을 수 없고 할머니가 되어 가고 있다.


다방에서 나와 다시 읍내 오일장을 지나 정류소로 걸어간다.

아직은 해가 넘어가려면 멀었는데, 벌써 오일장은 파장 분위기이다. 그렇게 많지 않은 장사들도 몇 곳은 보따리 싸서 떠났고, 물건을 정리하는 곳도 많이 보인다. 아직도 남아 있는 할머니들은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떨이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외친다. 파장 때는 오일장에 장사하는 사람이 장 보러 온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옛날처럼 오일장 날 파장이 가까워지면 술 취해서 걷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장사들도 많이 떠나서 쓸쓸한 느낌만 드는 읍내 오일장이 되었다. 노인은 장터를 천천히 걸어오면서 옛날 여기는 영해에서 온 젓갈 할머니가 마지막 떨이를 외치던 곳이고, 여기는 문어 파는 할머니가 마지막이라고 헐값에 가져가라고 하던 곳이다. 지금은 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아마도 그 할머니들도 다른 세상으로 떠난 지 오래일 것 같다. 조용한 오일장터를 지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 온 평생 같이 산 할머니가 혼자서 장 구경을 하고 온 노인에게 심술이라도 불릴까 염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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