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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Apr 02. 2023

남파랑 길 47일차(마지막 날)

길을 걸으면서 꾸준히 걸어온 길을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를 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도 오늘 남파랑 길을 마지막을 걷고서 글을 올린다.

길을 떠날 때는 떠날 수 있을 때가 좋은 날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걸으면서는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좋았고,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오늘도 걷는 것이다.


아침에 완도 대교 밑에 있는 원동마을 버스 정류소에서 출발한다.

건너편 해남 남창 마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땅끝이라 쓴 이정표를 따라서 간다. 농로 길을 가면서 다른 곳보다 더 진한 퇴비 냄새가 나는 들판이다. 이곳에서는 벌써 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89코스는 미황사로 가는 길이다.

지나는 들에는 밀이 제법 자란 곳도 있고 마늘밭은 멀지 않아 캘 것 같다.

농로가 끝나니까 임산도로가 시작된다. 임산도로를 따라가는 산길에는 진달래가 피어 있는 정겨운 고향마을 산길 같은 곳이다.

계속 임산도로를 올라가다가 멀리 낮 선 것이 보인다. 산중에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는 높은 고개 위에는 보통 십자가를 세운 곳이 많았다. 여기서 십자가가 서 있을 줄을 예상치 못했다. 신기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가니까 이정표였다.


긴 임산도로를 걸으면서 앞으로 잘 사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부지런히 살아야 보람도 있고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의미와 가치 있는 삶도 부지런히 살아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부지런히 살면 마지막도 편하게 마무리될 것 같다.

다음은 친절하게 살아야 한다. 걸으면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더 고귀한 가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친절함은 소중하고 포근한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내가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은 부정하지 않지만, 마지막은 늘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 사는 만족과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처럼 보인 이정표를 지나면 임산도로가 끝나고 미황사로 가는 산길이다. 이 길을 달마고도 길이 시작된 것이다.

미황사로 가는 달마 고도는 숲길이지만, 오르막이 거의 없는 걷기 좋은 산길이다.

미황사에 도착했다. 미황사는 신라 시대 때 창건한 사찰로 천년고찰이다. 달마산 아래 서해를 바라보면 낙조가 남도제일경으로 알려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미황사는 지금 대웅전을 보수 중이라 출입할 수는 없었다. 천왕문 뒤에는 달마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황사가 89코스 종점이다.


미황사를 지나도 산길은 달마 고도이다. 이 길이 남파랑 길의 마지막 코스이고 땅끝마을로 가는 길이다.

달마 고도 길은 산길을 오르막이 심하지 않게 자연을 그대로 만든 길이다. 나무숲을 지나서 바위들이 모여있는 곳도 가로질러서 길을 만들었고 위로 보이는 산에는 진달래가 곱게 핀 산이다.

달마 고도 길은 걷기 좋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숲길이다.

이런 길은 아무리 걸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은 길이고, 남도 명품 길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길이다.


삼나무 숲길도 있고 걷기 편안한 산길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지만, 달마 고도가 끝나고 땅끝으로 가는 길은 또 산길이다.

땅끝까지 9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고 산길이 계속된다. 야산의 등을 따라서 걷는 길이지만 긴 코스이다.

힘든 산길을 가면서 오르막길이 없기를 바랐지만, 오르막이 있었다. 오르막을 오를 때마다 너무 힘이 들었지만, 이것이 마지막 오르막이기를 바라면서 걸었다. 그런 오르막이 다섯 번이나 나오고 그중에서 세 번은 상당히 높은 오르막이었다.

힘든 산길을 몇 시간 걸어오니까 멀리 바닷가 마을이 보인다. 땅끝마을인 것 같아서 좋아했는데,

산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니 바닷가 산 위에 기념탑이 보이는 진짜 땅끝마을이 보인다.

내려간 길은 임산도로와 만나는 곳이었다. 당연히 임산도로로 길이 만들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진달래가 핀 산으로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여기서는 임산도로로 길을 만들어서 땅끝까지 편하게 갈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남파랑 천오백 킬로나 되는 길을 걸어왔으니, 마지막이 보이는 곳에서는 그동안 힘들었던 것도 생각하면서 감회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순한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시 오르막으로 올려보낸다. 만든 사람이 걷는 사람의 심정을 알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리본을 따라서 진달래가 보이는 산으로 올라간다. 이 오르막 고개를 넘으니까 다시 임산도로가 나온다. 여기서는 임산도로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앞에 보이는 산으로 길이 올라간다.

그다음 땅끝 전망대가 있는 산으로 다시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야 했다. 그 계단은 급하고 길었다.

그곳을 힘들게 올라갔는데, 다시 땅끝 탑까지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다. 무려 수백 미터 계단이다.


마지막 코스에서 만나 분이 말하길, 땅끝의 마지막 길은 대충 생각 없이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오르막으로 올리고, 그리고 내리고 해서 지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파랑 길 전체를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이라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걸었다.


땅끝 탑에 도착했다.

남파랑 길 1470Km를 걸어와서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이다. 긴 여정이었지만 길이 있어서 걸어온 것이다. 마지막 종점은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땅끝 탑은 서 있다. 그곳에서 한참이나 바다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긴 길이지만 끝에 온 것이다. 언제나 끝이 있듯이 힘들었던 것이나 즐거웠던 것도 모두 같이 끝이 난 것이다.


돌아오면서 땅끝 해변에 그동안 신고 온 신발을 두고 왔다. 긴 시간을 같이 남파랑 길을 걸어온 신발이면서 제주도 올레길도 함께한 산발이다. 이제 낡아서 벤드까지 붙여서 신고 온 신발이었다. 땅끝에 신던 신발을 두면서 마음속에 있는 미련과 아쉬움을 함께 두고 떠나는 것이다. 대서양의 땅끝에 두고 온 신발처럼 이번에도 신발을 벗어 놓았다. 같이 걸어온 정과 아쉬움도 있지만, 돌아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남파랑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개들을 짖게 하기도 했지만, 이 길에는 다른 곳보다 개들이 많았다. 높은 곳으로 올리면 바다가 보인다는 명분으로 산으로 길을 만들었고, 직선으로 가도 되는 길을 마을 안으로 돌릴 때는 짜증도 났지만, 그래도 남해의 푸른 바다와 같이 걸어온 길이다.

남해 해안에 남파랑 길이라는 멋진 길이 있어서 걸었고, 걸어온 길마다 가는 방향을 알려준 이정표는 반가운 손가락이었다.

이 길 위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인정은 힘들었던 여정도 예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떠날 때는 떠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떠날 마음이 나면 또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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