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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Apr 07. 2023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끝없이 펼쳐진 밀밭 길을 나이 든 부부가 천천히 걸어간다.

그 길은 옛날 이발소 벽에 걸린 풍경화처럼 길이 끝없이 뻗어가다가 마지막에 살짝 굽은 저녁놀이 물들어가는 길이다. 밀이 누렇게 익은 들판은 지평선과 맞닿은 붉어가는 하늘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길이다.

이 길은 노부부가 같이 걷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이다.

그렇게 빠르지도 않지만, 쉬지도 않으면서 노부부는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이 순례길을 걸어간다. 살아온 날을 회상하면서 열심히 살았다고 뜻으로 만족한 미소 띤 얼굴로 다음 알베르게를 찾아 걸어가고 있다.

바쁠 것도 없이 얼굴은 평온한 표정으로 ......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그려보았던 나이 든 모습이었다.


주위를 의식하면서 열심히 살아오는 동안 약육강식의 동물적인 이치를 깨달을 즈음에 주위의 관심도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욕심이나 주변 시선도 무디어져 갈 무렵에는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도 알아진다. 이제 아직 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야 하는 때라는 것도 안다.

경로당에 모여 앉은 어른들도 기억 속에는 아직 청년이지만, 벌써 불편한 걸음걸이에 세월의 빠름을 보았고, 영원한 내 편이었던 어른들이 없는 고향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생각게 한다. 다시 찾은 고향 집에서 허공을 향해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나이 들면 주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이 없어지면, 가까운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 마지막 버킷리스트였다. 바쁠 것도 없이 옛이야기하면서 처음 보는 세상을 어린아이의 같은 호기심으로 구경하면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 예쁜 바램을 갖고 살아왔었다.

이제는 살아온 것을 내려놓을 마음의 준비도 되었고, 실제로 마음속에 있는 열정도 식었다. 사람이나 일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도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볼 시간이다.

그렇게 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주위 환경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관심도 받지 못하고, 혼자일 때가 많아지고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많아진다.

알던 친구도 자기 일들이 바빠서 멀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알고 싶은 마음이나 기회도 줄어든다. 친했던 사람들도 이젠 자주 만나지 않고, 생각도 거의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간다. 전화기 속에 있는 이름조차 연락하지도 않지만, 뭐 하는지 궁금한 마음도 옅어져 간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 이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되었다.

가족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지만, 황혼의 산티아고 길을 꿈꾸던 아내는 혼자 바빠서 자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식들은 내가 살아온 세상의 살벌한 이치를 경험하고 있는 듯, 그들 머릿속에는 옆에 있으면 늘 그 자리에 있는 장식품이고, 보이지 않으면 예전처럼 일하러 간 사람이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은 마지막에 혼자라는 생각이 맞아 들어간다. 관심을 못 받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 가지만, 아직 외로움에는 덜 익숙하다. 황혼의 외로움이 짙어져 가면서 서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매일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는 희망을 갖는다. 부질없는 것을 알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는 살아온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렇다.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고 그리고 언젠가는 잊히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오기 전에 그래도 주위에 내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생각해 본다.

미소를 띤 얼굴이 떠오른다.

온갖 좋은 말과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까지 미소 띤 얼굴을 보이는 것이다. 마치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희망을 갖도록 착각할 수 있는 말없이 미소를 띠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을 그렇게 험악하게 살지도 않았다. 그래도 희망이 있고 아쉬움이 있는 세상이었기에 미소 띤 얼굴이 생각났고, 잊힐 기억 속에 미소를 남기고 싶은 것이다.


저녁이 다가오는 시절에는 혼자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고 그것에 익숙해야 한다

외로움 넘어 고독을 벗 삼아 살아가야 한다는 듣기 좋고 폼 나는 말을 생각해 보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도 같이 가야 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느껴지고, 주위와 멀어지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다. 만나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지내지만, 외로움을 잊기에 도움이 될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의도적으로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혼자가 되듯이 혼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음은 예전에 비해 쓸쓸하지만, 그래도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를 생각하면서 미소 띤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멀지 않아 찾아올 몸의 한계도 받아들이면서 같이 가야 한다. 그때도 미소 띤 얼굴은 변치 말고 말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황혼의 저녁 무렵에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저녁놀을 꿈꾸지는 않지만, 내 마음의 저녁놀을 붉게 물들이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저녁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잊힐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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