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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03. 2023

돌아온 고향은 바람 부는 날




선바위가 멀리서 보인다.

내가 살던 고향이 조금만 더 가면 나온다. 

선바위가 서 있는 뒤편의 절벽과 앞쪽 남이포의 깎은 듯한 바위는 멀리서 보면 마치 석문처럼 보인다. 거대한 석문을 지나면 그 안쪽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다. 이 선바위를 지나면 변하지 않은 풍광이 고향을 단번에 되살리고, 마음을 이곳에 살던 때로 돌아가게 한다. 


익숙한 길을 따라 지나면서 낯익은 집들과 나무들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고향 동네의 집들이 보일 때면, 마을 어귀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추운 날에도 썰매를 매고 지나갈 것 같고, 무거운 나뭇짐을 진 어른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연상된다. 

아직도 옛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 때 고향마을에 다다른다. 마을 앞다리를 건너면 고향 마을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고 조용한 마을이 되어 있다. 생각 속에 친구들도, 나뭇짐도 없는 바람에 낙엽만 날아다니는 한적한 고향이 되어 있다. 


그래도 한 곳에는 눈이 간다.

다리 건너서 보이는 첫 번째 집 대문 앞이다. 그곳에는 누가 서 있어야 할 장소이고, 있을 것 같은 곳이다. 엄마가 늘 자식들이 올 때면 기다리던 곳이다. 명절 때에 엄마를 처음 보는 곳은 대문 앞이다. 엄마가 자식들을 빨리 보고 싶어서 대문 밖으로 나와 기다리던 곳이다. 

그곳에 엄마는 없었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아무도 보이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다. 그곳에는 빈집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춥고 바람까지 불어서 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까 마을이 더 추워 보인다.


먹고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서 먼 곳에 살았었다.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도 있지만, 마음 편한 곳은 고향인 것 같아 돌아갈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열심히 살았던 삶의 현장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하던 일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욕심을 내는 것도 힘에 부치고 다져온 기반도 물러나야 할 때이니까 편히 쉴 곳을 찾아서 돌아온 것이다. 낯선 곳에서 부지런히 살기도 했었고, 결실의 환한 미소와 가슴 아픈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무난하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쉬면서 조용한 마무리를 하려고 고향에 온 것이 속마음이다. 낯선 곳에 살면서 마음속에 늘 생각하던 고향은 편안하고 포근한 곳이고 한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 바람 부는 겨울에 돌아온 고향은 조용한 곳이지만, 아직은 포근한 느낌은 없다. 


대문을 지나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바람은 막아주지만, 춥기는 방이 더 추운 느낌이다. 보일러를 올려놓고 거실에 앉아 있으니까 조용한 방에는 그리운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할아버지가 나와서 오랜만에 본 손자의 흰머리를 보고 놀라실 것 같고, 대천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이 하도 많아서 말 대신 내 손을 잡아주실 것 같다. 

엄마는 늘 그랬듯이 “밥 먹었나” 물으시면서 부엌으로 들어가실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은 조용한 빈방이다. 


추운 겨울에 돌아온 고향은 바깥은 찬 바람이 불어 손발이 시리고, 방안은 금방 보일러를 올려놓았지만, 그동안 비워 놓았던 집이 냉골이라 바닥은 아직 따뜻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바닥에 이불을 깔아서 온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방은 찬 바람을 막아주니까 바깥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한참을 기다려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추운 바닥을 만지면서 갑자기 생각난 것이 아궁이에 활활 타는 장작이다. 

옛날에 차가운 방에 장작을 한 아름 가득하게 넣으면서 그 타는 불을 보면서 아궁이 앞에 앉아 있으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온몸이 풀렸다. 그렇게 아궁이 앞에서 활활 타는 불을 쬐다가 어느 정도 지나 아궁이 불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오면, 아랫목은 벌써 따뜻해 올라오고 한참을 지나면 방안이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면서 뜨끈한 방이 되던 것이 기억에 떠오른다. 

지금이라도 아궁이가 있으면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주워 모아 불을 넣으면 방이 따뜻해질 것 같아 그 옛날 아궁이가 그립다. 그런 아궁이 방 아랫목에서 엉덩이를 녹이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날도 어제 같은데, 머리로 기억하는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방에 있다가 답답하고 추워서 밖으로 나오지만, 바람 부는 밖은 더 추운 곳이다. 쓸쓸한 겨울날 오후에 열어 놓은 대문 사이로 혼자 사는 앞집 할머니가 보인다. 

앞집 할머니도 겨울이라 방에서만 있다가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비어 있던 앞집에 옛날 살던 청년이 돌아온 것을 보고 반가워 인사하러 대문 앞으로 온 것이다. 

대문 앞에서 마당으로 들어오지 않고, 주름진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넌다. 

“왔니 겨” 하고는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이제 흰머리가 많은 것이 늙어 간다고 말을 한다. 앞집 할머니가 내게 말하는 흰머리는 내 마음에는 “언제까지 젊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너도 늙어 가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시 찬 바람을 피해서 앞집 할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마을에는 정적이 흐른다.

골목에는 지나가는 사람은 없고 바람만 지나다니면서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바로 앞에 보이는 앞산을 올려다보면서 옛날에 나무하러 다니던 일들이 기억이 나면서 함께 지게 지고 내려오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올려다보이는 앞산은 예전에 내려오는 길들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숲이 우거져 길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눈이 가는 가장 먼 곳에서부터 길이 있던 장소를 따라 눈으로 길을 찾으면서 내려와 본다. 잘 올려 다 보이던 두들 배기에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보이지 않고, 소나무 밑으로 난 길은 그때는 확실히 선명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을 다 내려오면 계곡으로 길이 들어가는데, 지금 계곡은 완전히 숲으로 덮여서 길이 없어진 것 같다.


뒤에 보이는 삼각산은 아직 그대로인데, 나무들이 수 십 년이 지나서 제법 자랐을 것 같은데 그 옛날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고, 해 뜨는 남산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주위의 산들은 옛날처럼 멀리서 보아도 겨울바람에 소나무들이 움직이고 있다. 

돌아온 고향은 찬 바람 부는 계절이지만, 고향의 정취를 아직 살아 있다. 마을의 집들도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집이 있는 터는 흔적이 남았거나 그대로 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만 보이지 않는다. 


돌아온 고향은 막연하게 반겨줄 사람이나 어른들이 계실 것 같은 착각도 하고 싶었고, 마음껏 소리치고 싶기도 한 곳이었다. 그래서 쉴 곳을 찾아서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애틋한 사연이나 눈물겨운 인생 삶을 살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늙은 동물들이 자기가 난 곳을 찾는 것처럼 나이 들어서 다시 익숙한 곳에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고향은 평범한 사람이 조용하게 살려고 돌아온 것이다.

이곳은 포근하고 따뜻한 기억만 연상되는 곳이지만, 지금은 바람만 불고 다니는 이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은 예전 고향으로 돌아가 있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정다운 이야기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봄날이 되면 다시 예전의 고향처럼 포근한 느낌이 되리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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