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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04. 2023

희망이 있을 때가 좋은 날이다


어떤 이는 사는 것을 2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생의 전반부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면서 그들을 의식하면서 살았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으니까 2 막은 나를 위해서 살고 싶었다.

젊은 시절은 애쓰고 열심히 일하면서 보냈다면, 나이 들어서는 여유를 갖고 조용히 살면서 오직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먼저 바쁘게 살던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으로 돌아가 아늑하고 편안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힘들게 살아오면서 늘 마음속에 따뜻한 봄날처럼 포근한 느낌이었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서 자리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의미가 있고 편안함이 있는 삶을 살 곳으로 선택한 고향에서 나를 위한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곳은 2막의 베이스캠프이고 마지막 정착지인 것이다.


여기서 살면서 평소에 희망이었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 여행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일주를 꿈꾸었다.

느리게 가면서 천천히 구경하면서 여유를 갖고 다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보려는 것보다 널리 알려진 곳을 찾아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니기가 힘에 부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농사하면서 그곳에 나오는 수확물을 이웃과도 나누고 지인들에게도 주면서 그렇게 인생 2 막을 살고 싶었다. 이런 것을 꿈꾸면서 추운 겨울에 시골로 돌아와 따뜻한 봄날을 기다렸다.

봄날은 왔다.

이제 떠나야 시기이지만, 2막의 꿈은 희망 사항이 되고 있다. 작년에 시작한 코로나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답답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여러 해 코로나가 물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찾아온 전염병이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물러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코로나는 모든 것을 멈추게 했고, 여행도 떠나지 못하게 한다. 봄날이 다 지니고 여름이 오는데도 코로나가 물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끝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가는 항공기가 다닐 때만 기다리면서 지냈다. 긴 시간 동안 코로나로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 인생 2막 계획은 희망 사항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희망에 부풀었던 봄날은 갔다.


시골에 있으면서 무료한 날들을 보내기 위해 처음으로 직접 농사일을 시작했다.

농사할 농기구가 별로 없어서 이웃에 전화로 무엇을 해 달라는 부탁하는 것이 농사짓는 주요 방법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 내가 직접 농사를 하니까 주위에서는 농사꾼으로 취급해 준다.

간간이 몸으로 하는 농사일이 힘이 들 때는 올해 처음 시작했지만, 다음 해는 하지 않을 생각이 들 정도로 낮 선 일이었다. 농사일은 늘 하던 일이 아니라 몸에 익지 않고 내가 생각한 인생 2 막은 이렇게 처음부터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시간과 날씨 따라 신기하게 자라는 농작물이 대견하고 자연의 이치가 경이롭다는 것은 느낀다.


코로나가 어디 가는 것을 못 가게 하니까 무료한 시간은 읍내의 백수들과 어울리는 일이 빈번했다. 농사일 중에 가장하기 쉬운 벼농사를 하니까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고, 남는 시간은 혼자 있는 것보다 읍내로 가서 어울려 술 먹는 날이 많아진다.

읍내에서 백수라는 말을 들으면서 일은 않고 술만 먹으면서 보내지만, 그 사람들도 살아가는 철학이 있고 인생의 애환이 있었다. 백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법은 다양하고 각자 자신들만의 삶이 있어서 모두가 자기의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읍내에서 매일 술을 먹는데,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수 십 년 동안 변함없이 술만 먹고 지내는 백수 한 분이 있다. 하는 일은 술을 먹는 일이 전부이고 겨울이면 따뜻한 술집을 찾고, 여름이면 에어컨이 있는 술집을 찾아다니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는다. 그 사람도 본명이 있지만, “노상술”이라고 부른다. 노상 술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름 대신 불러온 “노상술”이가 이제는 원래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 사람의 인생관은 술을 마시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다. 자기와 같은 나이에 시골에서 농사하는 사람은 허리가 굽고 아픈 곳이 많은데, 본인은 술만 먹고 다녀도 아직 그런 곳이 없다고 자랑을 한다.

이분은 영리하게도 아침이면 운동을 몇 시간을 해서 술독을 빼고서 다시 술을 시작하는 것이다. 오직 술을 먹기 위해서 아침이면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다. 하는 일은 아침 운동과 그다음은 술 마시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살아도 영세민으로 나라에서 돈을 주니까 살아가는 데는 애로가 없다.


희망에 부풀었던 인생 2 막은 코로나로 시골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날이 많아지고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골목에는 마스크 낀 노인들이 간간이 운동을 나오지만, 낯선 사람이 보이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심할 때는 늙은 부모님을 보러 고향 집에도 오지 못하고 전달할 물건이 있으면 동네 앞 정류장에 놓고 가면서 전화로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던 시골에서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져 더 적막한 마을이 되어 갔다.

노인들은 마스크를 꼭 끼고 다니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그 마스크가 일회용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은 쓰고 다니는 것 같다. 마스크에 때가 묻은 것이 보일 정도로 쓰고 다니고, 간혹 시내버스를 타면 버스 기사는 마스크를 똑바로 쓰지 않은 노인들을 큰소리로 훈계까지 한다. 물론 버스 기사 본인이 감염되지 않으려고 그런 것이다. 아직도 코로나는 매일 활개를 치는 것으로 뉴스는 나오고 모든 질서가 코로나가 좌우하는 듯하다.


시골에서 살다가 보니까 매일 코로나가 어느 동네에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코로나가 생기면 그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시골에서 소문이 원래 빨리 퍼지기도 하지만, 부풀려지는 경우도 많다. 가까운 마을에 코로나 환자가 생기면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떻게 감염되었는지는 물론이고 신상까지 상세하게 소문이 퍼진다. 이런 소문이 나면 집 밖으로 노인들은 더 나오지 않고 간혹 타던 시내버스도 노인들이 없어서 빈 버스만 다닌다고 한다. 시골 작은 교회는 코로나가 생기고부터는 주일이면 잘 나오던 할머니들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들은 늘 하는 말로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지만, 코로나는 겁을 내는 것 같다.


꿈에 부풀었던 인생 2 막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던 것이 희망으로 되어 가는 것 같다. 아는 사람들만 만나서 소일하면서 보내니까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이다. 농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그것에 집중할 수 있어서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못하다.

아침이 오면 따뜻한 봄날에는 동네 한 바퀴를 돌고서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햇볕을 쬐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되더니, 여름이 되니까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보통 일상이 되었다.

시골에서 힘없어서 농사를 못하는 노인처럼, 온종일 무료한 시간을 여기저기서 보내는 독거노인이 된 것 같다.


지금쯤은 남미의 고대 문명을 구경하면서 여행하는 희망은 마음속에 간직한 꿈이 되었고, 현실은 시골에서 그런 날만 상상하면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인생 2막의 아름다운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린다. 그 희망이 있는 한 아직 이곳은 희망의 베이스캠프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인생 2막의 희망과 지금은 코로나가 곧 끝나기를 바라는 희망이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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