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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04. 2023

아직도 사람이 넘치는 오일장

담양이 가까워지니까 대나무가 많은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나무가 많이 보인다. 특히 가로수를 대나무로 한 것이 이색적이다. 대나무가 아직 이른 봄이라서 푸른빛보다는 낙엽 색깔을 띤 것이 많이 보인다. 담양 오일장은 담양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을 따라서 강변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참을 걸어야 끝이 나왔다. 


담양 오일장에도 다른 장과 같이 해산물이나 농산물이 나왔지만, 해산물보다는 육지에서 나오는 채소나 과일이 많았다. 특히 햇양파가 오늘 장에는 많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죽세공 제품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살 생각도 있어 부지런히 찾아보았지만, 겨우 한 곳밖에 보지 못했다. 종류도 대바구니 몇 가지뿐이고, 멀리 바다 건너서 온 것 같다. 


그래도 담양 오일장에서 계절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재배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올라온 것 같은 부추이다. 이때쯤에 자연적으로 처음 올라온 부추는 사위만 준다는 말이 있다. 겨우내 갖은 추위와 기다림으로 봄이 되어 올라온 부추는 남자에게 좋다는 말이 있다. 이곳은 남쪽이니까 지금쯤은 양지바른 곳에서 부추가 나올 때가 되었다. 이번 담양장에는 부추가 많이 나왔지만, 할머니가 가져온 부추 중에서 두 곳 정도 자연산 부추인 것처럼 보인다. 나머지는 생긴 것이나 크기가 하우스 부추이다. 담양 오일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은 대체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은 특징이 있었다. 말도 순하게 하고 마치 팔아도 그만이고, 안 팔아도 그만이란 마음인 듯 얼굴에 여유가 보인다. 


조선 중기의 민간 정원 중에서 소쇄원은 3대 정원으로 꼽는다. 소쇄원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만든 정원으로 아름다웠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작은 공간을 잘 이용해서 조성되어 있었다.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원은 지금도 잘 보존되고 이곳을 찾는 이도 끊이지 않는다. 뒤편은 산이 막아주어서 아늑한 느낌을 주고 앞의 깊은 계곡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있다. 

소쇄원은 들어가는 입구의 양쪽 대나무는 잘 정돈되어, 그 대나무가 바람 불면 서로 잎을 부딪치는 소리는 길고 일정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조용하다가 바람이 불면 바람 소리와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끄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쇄원은 계곡의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계곡물을 그대로 흘러 보내지 않고 다시 작은 연못을 만들고 있었다. 이 정원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지는 것 같다. 


소쇄원을 나와서 식영정은 담양의 가사문학관 부근에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다. 가사문학관을 지나면서 작은 언덕 위에 풍광이 좋아 보이는 곳에 정자가 있다. 이곳이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식영정이다. 식영정을 보듬고 있는 산이 성산이기에 식영정은 송강의 성산별곡의 모태이면서 당대 많은 시인들이 이곳을 찾아서 시를 짓던 곳이다. 지금도 풍광이 인공으로 만든 서면 광주호 저수지가 눈 아래 보이는 것이 좋다. 그 옛날 송강 정철이 거닐던 곳은 수몰이 되어 아쉽지만 바로 앞에 펼쳐진 인공 호수는 너무 아름답다. 식영정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가사를 쓴다면 저절로 글이 나올 것 같은 곳이었다. 

식영정 바로 옆에 있는 소나무는 지금까지 본 소나무 중에 최고였다. 식영정 소나무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식영정 소나무가 오래 그 자태를 유지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가사 문학의 고향인 담양을 나와서 화순 오일장 날 화순장을 찾았다. 

광주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화순장은 활기가 넘쳤다. 잘 정비된 화순 고인돌 전통시장에는 오일장 보러 오는 사람으로 넘쳤고, 큰 사거리에서 전통시장으로 가는 사잇길이 상당한 거리였는데도 그곳에도 시장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몸을 맞대고 지나갈 정도였다.

화순 오일장에서는 시골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나물이나 물건이 많았다. 그런 할머니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도 하지만 시장 곳곳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봄나물이나 채소들도 모두가 시골에서 직접 해온 것처럼 보인다. 화순의 할머니들은 물건을 사라고 외치고 분주하게 흥정도 하고 있다. 구수한 사투리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오일장터이다. 

화순장은 물건이 넘칠 정도로 해산물이나 농산물이 많았고, 다른 시장에 잘 보지 못한 싹이 난 생강이 많았다. 생강에 싹이 난 것이 시장에 많이 나온 것을 보니까 생강을 심을 때인 것 같다. 돼지감자인 뚱딴지도 나와 있었다.


화순 장터에 유난히도 줄이 긴 가게가 있었다. 가게의 주인아주머니는 혼자서 정신없이 장사하는데 젊은 아주머니였다.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지난주에도 줄이 길어서 못 샀는데, 이번 주에는 꼭 사겠다고 하면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젓갈을 파는 가게인데 시어머니가 오랫동안 장사하다가 거동이 불편해서 집에 있고, 대신 며느리가 장사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시어머니 젓갈 맛을 못 잊어서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좋은 가게는 대를 이어서 잘 되는 것을 보았다. 좋은 재료를 쓰고 즉석에서 젓갈을 만들어 주는 것이 비법이라고 했다. 


화순 오일장터를 구경하다가 이상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호객행위이기도 하고, 무슨 선전을 하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고추장을 담을 검은 비닐봉지를 같이 나누어 준다. 그 검은 비닐봉지에 순창고추장을 공짜로 나누어 주면 담으라는 것이다. 고추장 외에도 다섯 가지를 더 나누어 주니까 줄을 서라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 차 안에서 확성기로 농민회에서 나와서 나눠 준다고 선전을 하니까 큰 선심을 쓰는 분위기였다. 여행 중이라 고추장이 필요하고 또 농민회에서 나누어 준다고 하니까 줄을 섰다. 

줄을 선 사람들은 시장 한편 천막으로 안내되었다. 작은 천막에는 20명 정도가 테이블 주변에 둘러서서 공짜 물건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순창 농민회와 연관이 있는 척하더니, 나중에는 인삼의 고장 금산 농민회에서 왔다는 것이다. 고추장 선전도 하고, 비누 선전도 하고, 얼굴에 쓰는 팩 선전도 하고, 옥 주걱 선전도 하고, 헛개나무 선전도 하면서 온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30분 정도 선전을 듣고 나니까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계속 기다렸다. 그러면서 비누, 옥 주걱, 헛개 나뭇조각들을 감질나게 나누어 주면서 노인들을 계속 못 가게 잡아두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홍삼을 선전하는 것이다. 만병통치의 홍삼 진액을 만들었는데 선전할 방법이 없어서 직접 나왔다는 것이다. 그 선전을 위해서 홍삼을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공짜로 줄 수는 없으니까 세분만 주겠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흙 마늘 고추장과 다른 고추장은 줄 듯 말 듯하면서 애간장을 태운다. 만일에 여기 모인 노인들은 고추장만 주면 받아서 갈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고추장은 주지 않고 계속 홍삼 선전을 하고 있었다. 

공짜로 줄 세 사람을 추천하는 방법도 마치 오늘 행운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 같다. 힘들게 당첨된 세 사람들을 구석으로 데려가서 홍삼만 주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사인을 받은 것이다. 한 통은 공짜로 주지만 한 통은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이 홍삼은 한 통만 먹어도 효과가 있지만 두 통을 먹어야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하면서 한 통은 강매하는 것이다. 그렇게 선전하는 분은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을 잘했다. 그렇게 입으로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면서 눈으로는 어느 노인이 잘 속을까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다. 벌써 안 속을 것 같은 사람은 추천에서 당연히 제외된다. 원가는 고추장을 제외하고는 2천 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고추장은 끝내주지 않았다. 그 홍삼도 아마 가장 싼 것일 것이다.


화순 8경 중에 마지막 8경은 세량지 저수지이다. 미국 CNN이 2012년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세량지를 보러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인터넷에 좋은 곳이라 해서 기대를 하고 올라가 보니까 시골의 작은 저수지였다. 

세량지 저수지 둑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쑥을 캐고 있었다. 쑥을 캐는 것이 잘 어울리는 평범한 저수지이다. 느낌은 제각각이어서 소박한 시골의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볼 만하지만, 멀리서 찾아와서 볼 정도의 경치는 아니다. 표지판에 있는 사진은 너무 잘 찍은 것이다. 세량지는 풍광보다는 지금은 따뜻한 봄볕이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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