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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06. 2023

무소유길을 걷다

오래된 사찰들은 주변 환경에 중심이 되는 곳이나 풍광이 좋은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찰을 세울 시기에는 불교가 대중의 지지와 절대적인 종교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기반으로 좋은 위치에서 큰 건축물도 세울 수 있었을 것 같다.

각 지역에 가면 대표적인 관광지가 사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심되는 곳에 있는 대웅전과 사찰에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사천왕상을 구경하는 것이 흥미가 있었지만, 그런 좋은 사찰도 자주 보니까 처음보다는 감흥이 줄어든다. 

순천을 여행하면서 송광사가 유명한 관광지이니까 그곳으로 향했지만, 그렇게 마음속에 감흥보다는 늘 보던 사찰을 보러 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다른 느낌이다. 송광사에 딸린 불일암이 보고 싶었던 곳이다. 


법정 스님이 사셨던 불일암을 늘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이렇게 여행 중에 갈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너무 좋아서 가슴까지 설레는 것을 느낀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오고 싶은 곳이어서 늘 마음속에 자리했던 곳이어서 가고 있는 지금도 빨리 보고 싶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로 잘 알려졌지만, 무소유가 궁핍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 맑은 가난을 강조하면서 꼭 필요한 것만 갖고, 필요 없는 것은 갖지 않거나 나누어 주라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자기 이름으로 된 출판물은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하고 진정으로 무소유 상태에서 떠난 것이다. 


길상사는 성북동에서 자리한 사찰이다. 법정 스님이 길상사 회주가 되기까지 세인들의 관심을 받은 사찰이기에 더 유명해진 절이다. 대원각의 원주인이 법정 스님에게 기부할 뜻을 전했으나 처음에는 거절하고, 십여 년이 지난 뒤에 법정 스님이 주창한 “맑고 향기롭게”살기 운동을 위해서 승낙했다고 한다.

길상사는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여러 번 가본 곳이다. 법정 스님이 회주로 있던 길상사에서 스님이 계셨다는 곳은 길상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암자였다. 작은 암자에는 아직도 스님이 쓰시던 의자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스님이 계셨다는 길상사는 도심의 한 가운데이지만, 암자는 길상사에서 소박하고 단출한 암자이다. 이곳 암자에서도 길상사에 올 때만 잠시 기거하셨고, 대부분이 사람이 없는 산속 오두막에서 지냈다고 한다. 

암자에서 내려오다가 입구 근처 담 밑에 작은 화단이 있었다. 암자 앞 조금 큰 화단에 비해서 적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화단이었다. 무심코 나오다가 보니까 담 밑의 화단에 스님의 유골이 묻혔다는 표시가 있었다. 

마지막에 묻힌 곳도 어떤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작은 화단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감동을 오는 장면이었다. 스님의 유골이 묻힌 곳도 화단이어서 사전에 알고 왔거나 아니면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곳이어서 너무나 의외였다. 그렇게 담 밑 화단 구석에 묻힌 스님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스님의 유골은 길상사의 화단에도 있지만, 평소에 오래 머물러 계셨던 송광사 불일암에도 있다고 했다. 두 곳을 나누어 묻힌 것이다. 길상사에 작은 화단을 보고서 불일암에 가서 유골이 묻힌 곳을 늘 보고 싶었다.


순천의 송광사는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조계산을 품고 있는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신라 말에 창건했으며 처음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였다고 한다. 

송광사의 전경도 좋았지만, 송광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불일암에 갈 생각만 가득했다. 고려 때 자정 국사가 창건한 송광사의 자정암을 새로 보수해서 법정 스님이 불일암이라 명명하고 집필을 하던 곳이다. 불일암에 가는 길은 송광사에서 30분 정도 걸어서 갔다. 가는 길의 이름이 “무소유길”이다. 


법정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무소유의 길이라 지은 것은 의미 있는 것 같다. 

무소유 길은 적당한 오르막이었다. 그렇게 힘들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기에 오르면서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걸어가는 되는 길이다. 마치 동네 뒷산처럼 무소유 길은 편안하고 힘들지 않았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편백나무숲이었다가 다음은 일반 소나무나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다가 그러고는 다시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마지막 불일암에 올라가는 길은 대나무 숲으로 가꾸어져 있었다. 


중간에 스님이 쓰신 책 중에서 좋은 글귀를 적어 놓아서 읽고 생각하는 게기도 만들어 주었다. 전부 네 번의 글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명상에 대한 글귀이고, 두 번째는 무소유에 대한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놓았다. 세 번째는 행복의 개념에 관해서 적어 놓았는데 공감이 갔다. 마지막으로는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그렇게 좋은 생각을 가지고 가다가 보니까 힘든 줄 모르고 불일암 입구에 도착했다. 


불일암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고 조용한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길상사에서 본 투박한 의자가 보였다. 그 위에는 스님의 작은 사진도 걸려 있었다. 불일암도 길상사와 똑같이 단출하게 의자와 사진이 있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곳을 본 기분은 내가 마음속에 갖고 있던 그런 마음과 같았다. 


불일암 마루에 앉아서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스님이 묻힌 곳을 찾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좋은 위치나 잘 보이는 곳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고, 스님이 묻혀 있는 곳은 불일암 바로 앞 후박나무 아래 모셔져 있었다. 팻말이 없으면 찾기가 힘들 것 같다. 이 후박나무는 스님이 평소에 좋아하고 사랑했던 나무라고 한다.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사신 분이 죽어서도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후박나무 아래에 계신 것이다. 후박나무와 스님이 묻힌 곳을 오랫동안 보다가 아래를 바라보았다. 스님이 이곳에 계신 것 같다. 아직도 이 불일암에서 스님은 밑을 보고 계시는 것 같다. 그것도 평소와 같이 말없이 밑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불일암에서 내려오는 길은 번뇌를 내려놓는 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님은 무소유를 주장하시고 어떤 직함도 갖지도 않았다. 돌아가시면서까지 “비구 법정”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냥 “중 법정”이라는 뜻으로 사시다가 가신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서 내가 가진 욕심을 하나라도 내려놓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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