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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12. 2023

해파랑길을 걷다

인생 2 막을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났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고 세월만 간 것 같은 기분이다. 코로나로 다니기 힘든 시간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먼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가족 간에 갈등이 있어 힘든 시기이다. 

그래서 다시 어디라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그 순례길을 걸으면서 여러 생각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길이 열리지 않아서 그곳에 갈 수는 없다. 걸을 수 있는 다른 곳을 생각하다가 동해안에 산티아고 순례길과 거리가 비슷한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만난 길이 동해안 해파랑길이다. 


그래서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진정한 나의 모습이 무엇일까도 생각하고, 내가 바라는 것이 무거운 것이면 내려놓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떠나기로 마음을 정하고 떠날 시간도 정했다. 급하게 정해진 것이지만 실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산티아고 길은 세계 많은 사람들이 삶을 돌아보고 싶을 때 찾아가는 길이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받기 위해 가는 길이라면, 내가 걸어갈 해파랑길도 나를 찾아서 떠나는 길이다. 

출발하면서 여러 생각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현재 중심을 못 잡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에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살아가고 싶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답이 있으면 찾고 싶은 심정에서 떠나는 것이다. 


집을 떠나기 전의 마음을 편지로 적었다. 그러고 떠나면서 그 편지를 전하고 싶은 동생들에게 문자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껐다. 

휴대폰을 끈 것은 진심으로 나를 돌아보는데, 현재의 모든 것과 끊어야 더 깊이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는 마음으로 집을 떠나왔다. 그동안 타고 다니던 차도 집 떠나면서 타고 나와서 처분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대중교통은 사람 속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동할 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오래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간 동안 정류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루하다는 생각보다 모두가 부지런히 살고 있고,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보이고 진지한 삶 들이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목적지 부산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옛날에 살았던 도시이니까 별로 낯설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오늘 밤을 지낼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미리 준비한 핸드폰 앱으로 숙소를 예약했지만 되지 않는다. 아직 앱을 사용하는 방법이 미숙한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여행을 떠나온 입장에서는 누가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드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래서 주변을 지나가는 핸드폰 앱을 잘 알 것 같은 젊은이를 찾았다. 내게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던 것을 젊은이가 아주 쉽게 하는 것을 보고 세대 차이를 느낀다. 


집을 떠날 때 핸드폰을 끈 상태로 지내다가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서 다시 켠 것이다. 숙소 예약이 끝나고 나니까, 내가 아침에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글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나의 숙명이었지만, 그래도 형제들에게는 어떤 느낌이라도 있었을 것 같아 그에 대한 반응이 있을 줄 기대했는데 없었다. 아무도 부재중 전화한 사람이나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남을 의식하고 살았고, 그것이 동생들에게는 공감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평생을 내 나름은 애쓰고 살았지만, 지금은 초라해진 나의 모습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옛날에 어렵게 살아온 것은 그렇게 동정이나 감동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도 거의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그래도 같이 살아온 형제들은 자기들의 삶과 밀접했으니까 동정이나 나와 같은 감정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나만의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강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그런 척하면서 살아온 아주 평범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그것은 동생들의 반응에 대한 나의 마음에서 느끼는 감정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라는 마음이 드니까, 이번 여행을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고뇌하는 심각한 마음보다 기분전환으로 즐거운 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아갈 확실한 기준을 정하는 것으로 바뀐다. 

너무 진지하게 살면 남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별것 아닌 삶을 심각하게 사는 것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잠시 동안 여러 생각이 교차되고, 이번 긴 길을 걸으면서 심각하게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하게 정리하고 쉽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체력을 잘 안배해서 무리하지 않고 걷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또 걸으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심으로 돌아가는 가벼운 길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그때 여동생 한 사람이 문자를 했다. 공감한다는 내용이다. 그 문자 하나에 다시 진지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평범하고 보통 사람이니까 마음도 자주 바뀌는 것이다. 

다시 이 여행이 나를 돌아보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처음 생각한 데로 먼 길을 홀로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때론 과거를 다시 상기하면서 진정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몸도 힘든 여정이지만, 마음도 같이 고뇌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 밤이 지나면 오륙도 선착장에서 해파랑길 770킬로를 시작할 것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해파랑길을 시작하는 아침에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도착하니까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다는 무척 푸르게 보였고, 불어오는 해풍도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해맞이 표지석 입구에서 먼바다를 보며 무사히 완주하기를 다짐하면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답답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가벼운 삶을 살고 싶었다. 

처음부터 계단이었다. 계단과 오르막이 많은 길이라는 것은 예상하지만, 이 길이 어떤 길일지 쉽게 예상되지 않는다. 해파랑길 770Km는 어떤 길인지 아직 안갯속이다. 

시작은 했지만 어떻게 끝이 날지 나도 확신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만, 끝까지 가야 나를 돌아본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중간에 그만두면 나를 돌아보다가 그만둔 것과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륙도의 산길이 끝나갈 무렵에 오른쪽 발가락이 아파지는 느낌이 왔다. 불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 신호가 온 것이다. 일단 중간에서 발가락에 맞는 밴드를 붙였다. 혹시나 밴드를 붙이면 좋아질까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 먼 길을 가면 아픈 발가락은 꼭 아플 것이고 그리고 단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산길이 끝나가고 있었다. 오르막도 있었지만 그래도 빨리 왔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보았다. 한 시간에 겨우 3Km를 온 것이다. 생각한 것과 같이 만만한 해파랑길이 아닌 것이다. 


해파랑길 표시를 스티커로 붙여 놓은 곳도 있었지만, 분홍색 리본으로 가로등이나 나무에 달아 놓아서 길을 찾도록 하고 있다. 분홍색 리본을 따라서 해파랑길 부산 길을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서 송정 해수욕장에까지 계속 걸었다.

첫날 벌써 다섯 시간을 걸어가니까 발가락은 벌써 아팠지만, 참고 걸어온 길이다. 발가락 다음으로 배낭을 멘 어깨가 아파지는 것이다. 배낭 무게가 무거운 것이다. 

배낭 속에는 내 마음속과 같이 별 필요 없는 물건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와서 버릴 수도 없고 무겁지만 매고 같이 가는 것이다.

걷는 모습은 힘이 없고 몸은 풀린 상태에서 그냥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몸과 같이 마음도 지칠 것 같다.

이렇게 몸이 힘들어지니까 내 속이 보이는 것 같다. 말로만 인간적으로 살겠다고 했지, 실제는 욕심도 많았다. 성격도 급했고, 그렇게 급하게 살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별로 없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보니까 송정해수욕장도 끝나가고 있었다. 오늘 첫날 걷기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추위에도 물속에는 젊은이들이 서핑을 하고 있었다. 즐겁게 노는 모습과 서핑을 잘 되면 환호하는 웃음 속에 청춘이 보였다. 너무나 부러웠고 나는 젊어서 저렇게 즐겁게 살지 못했고, 남보다 잘 살려고 늘 정색하면서 살았던 것이 생각나니까 후회스럽다. 다시 살라면 저 젊은이들처럼 즐겁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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