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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12. 2023

해파랑길에서 보낸 설날

아침에 떠오르는 햇볕을 받은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어울려서 멋진 모습이다. 용궁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담한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용궁사에서 방생의 길로 나와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바다와 맞닿아서 파도가 손에 잡힐 듯하면서 파도의 하얀 거품 물결이 쉴 새 없이 들락인다. 해변의 바위들도 치는 파도와 조화롭게 보인다. 

 

아침에는 아직 지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파도 소리만 들리고 그런 파도를 보고서 걷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모친의 얼굴이다.

오늘이 모친과 함께 매년 보냈던 섣달그믐날이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돌면서 가슴이 시리도록 그립고 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이유는 모르지만 슬프고 서럽고 아쉬운 생각이 많아지고, 오늘처럼 그믐날이나 특별한 날은 더욱 그렇다. 

모친은 섣달그믐날이 되면 자식들이 언제나 올까 대문 밖에서 기다리셨다. 이날이 되면 자식들은 거의 모친을 뵈러 고향 집에 갔었다. 그믐날에 자식들을 만날 때 그렇게 환하게 웃던 모친의 모습이 떠오르자 이제는 눈물이 흐른다. 홀로 걷는 이 길은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껏 눈물을 흘린다.

모친은 섣달그믐이 다가오면 며칠 전에 가마솥에 손두부를 해 놓으셨고, 순두부를 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눌리지 않은 순두부까지 냉장고에 보관하시던 모친이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거의 준비해 놓고, 자식들이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날이 섣달그믐인 오늘이다.

아침부터 자식들을 기다리면서 오는 길만 바라보던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신다. 

오늘이 섣달그믐날인데 모친은 안 계시고, 나는 객지에서 나를 돌아본다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모친이 이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갈 곳 없이 사람처럼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갈 곳은 없어졌지만, 오는 사람을 기다려야 할 나이이지만 이렇게 홀로 걷고 있다. 

 

봉대산을 지나니까 작은 어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범한 어촌이지만 해파랑길의 리본을 따라 큰 기대 없이 가다 보니까 눈에 번쩍 띄는 성당이 보였다. 바닷가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성당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바닷가 위에 등대와 성당의 뾰족한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위치가 너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성당인지 알아보려고 가보니 갤러리라고 쓰여 있고, 예전에 영화의 성당 세트였다고 했다. 바닷가 좋은 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일광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마지막에 있는 집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한참을 지나서 식당에는 사람도 없었다. 좁은 테이블보다 다소 넓은 곳을 택해서 앉았다. 

주문하니까 "혼자냐"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 주인이 넓은 곳에 앉지 말고 좁은 일 인석에 옮겨 앉으라고 했다. 혼자 오는 사람은 홀대하는 것 같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 인석으로 얌전히 옮겼다. 주인의 말에 싫은 표정이라도 지으면 점심을 못 먹을 것 같이 주눅이 들었다. 실제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 손님은 오지 않았다. 

 

바다와 같이 걸으니까 지루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다리가 무거워지고 발이 아파 힘들었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 아직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때 그만두는 것이 체면을 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특별히 할 일도, 아무것도 안 해도 간섭할 사람도 없고,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지금 걷는 모습이 지금 나의 처지와 같은 모양새이다. 

섣달그믐날 객지에서 모친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히 걷는 것이다. 사는 것은 대체로 슬픈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설날 아침이다.

일출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새해 아침이면 일출을 보러 동해안에 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을 변한다. 묵는 숙소 앞이 임랑해수욕장이고 해변이다.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제법 나와 있었다. 구름이 낀 것 같았지만 일출은 볼 수 있는 날씨이다. 벌써 해가 떠오른 쪽은 붉은빛이 진해지고 있었다. 곧이어 해가 수평선 위로 올라왔다. 

한 해가 밝은 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들의 안녕과 해파랑길을 완주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그리고 올해는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새해 첫날이 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에는 잊고 살거나 잘 기억하지 않았던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났다.

특히 같이 지내던 가족들은 더더욱 그렇다.

모친도 오늘 아침처럼 보고 싶을 때는 없었다. 그리움이 사무친다는 말이 이때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먼저 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보고 싶지만 그래도 세월이 지나서 덜 하고, 모친은 불과 작년까지 계셨으니까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다.

나이 들어가면서 명절 때 혼자 사는 노인들이 외로워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울산시로 들어서니까 해파랑길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었다. 몇 미터 가서 어떻게 하라고 정확히 표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그동안 부산 구간에서 혼란스럽게 했던 “갈맷길”이란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신리항은 바다가 보이는 해안 길이다. 

새해 첫날이어서 사람들이 거의 정장 차림으로 세배 다니는 모습이다. 집마다 어른과 아이들이 서로 웃고 떠들면서 손에는 음식이나 선물을 들고 부지런히 마을을 다니고 있는 모습이다. 

새해 아침 일찍 출발해서 아침을 못 먹어 음식점을 찾았지만, 문을 연 곳이 없을 것 같아 체념하고 걸었다.

그런데 신리항을 조금 지나서 해변가 경계석 위에 과일을 올려놓았다. 사과, 감, 한라봉 한 개씩 올려놓은 것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자세히 보니까 제사에 쓴 과일이 아니었다. 과일 상태로 보아 새해 아침에 지나는 과객을 위해서 보시하기 위해 내놓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새해 아침에 용왕님께 드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일단 그중에서 사과 하나만 가져갔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있게 두었다. 이렇게 보시한 사람에게 복 많이 받으라고 기원은 잊지 않았다.

 

간절곶 가는 길은 테크길로 만들어져 있고, 간절곶은 해돋이 명소답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오늘 아침에 해돋이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 같다. 이곳은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며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간절곶은 포르투갈의 서쪽 끝인 대서양 해넘이를 상징하는 카보다호카를 본으로 만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간절곶 옆에 있는 “소망 우체통”은 그 크기가 엄청나고 “간절곶” 이란 말과 소망은 서로 통하는 말인 것 같다.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을 지나면 회야강을 따라서 해파랑길이 만들어져 있다. 강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직선 길이 나왔고, 그 길을 걷는 사람도 혼자뿐이었다. 

바람이 불고 추워서 털모자를 쓰고 방한 마스크와 털목도리까지 하고서 아무도 없는 들판을 큰 배낭을 메고 가는 것이 눈에 띄는 모습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혼자서 걷는 모습은 순례자가 고독한 길을 걷는다고 스스로 느낄 정도로 조용한 길이다. 끝없는 직선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이 세상에 혼자만 있고 또 혼자된 기분이다. 이런 고독하게 홀로 가는 길이 해파랑길을 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가면서 왜 이렇게 세상을 치열하게 살았고 아직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생각을 한다.

 

살면서 아래와 비교하면 잘 살아온 것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많지만, 꼭 위로만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안 되고, 미래에 상황이 변하면 위만 보고 산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비교하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면 즉시 다른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비교하는 습성이 무의식 중에 나오더라도 생각을 바꾸는 것은 내 의지대로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비교를 계속하는 것은 내 마음에 집착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집착하면서 살았던 때가 많았다. 

 

날씨가 더 추워지고 바람이 많이 불어 건물이 햇볕을 가려 응달인 곳을 지날 때 바람 끝이 더 차가웠다.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서 다리도 아프지만, 물집 잡힌 발가락이 아파서 쉬어 갈 곳을 찾았다. 

마침 버스정류소가 투명 유리로 바람이 안 들어오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 정류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서 배낭을 벗고 간이 의자에 앉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간이 의자가 따뜻한 것이다. 정류소 안 의자에 스팀이나 전기 장치를 해서 따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류소에는 바람은 안 들어오고 의자는 따뜻해서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걷다가 이런 곳에 잠시 앉아서 쉬는 것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낀다. 한동안 정류소 따뜻한 의자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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