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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12. 2023

울산에서 배낭을 정리하다


아침에 선암호수 공원에 도착했다. 

날씨가 매섭게 추우니까 걷기 싫어졌다. 그래도 걸으려고 나왔으니까 출발은 했지만, 마음은 따뜻한 이불속에 있다가 점심때쯤에 나오고 싶은 날이다. 

시작부터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한참을 오르니까 바람결이 차지만 몸에는 땀이 나고 숨도 차면서 추위보다는 오르막 오르기가 더 힘이 들었다. 이 오르막을 올라서면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울산 시내 길이 나오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솔마루길”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오르막을 올라서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고 이런 산행길이 반복되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산길이 거의 등산 수준이었다. 수 없는 고개를 넘어서 솔마루 길이 끝나는 표지를 보고서 등산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여러 고개를 넘어 거의 10Km 정도를 등산했다. 전망대에서 본 태화강과 울산 시내가 날씨도 맑고 풍광은 좋았다.

해파랑길은 해와 푸른 바다를 보고 걷는 길인데,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는 등산길을 해파랑길에 포함시킨 것이다. 울산 도심 산길을 걸으면서 너무 많이 내려가도 불안했다. 많이 내려가면 그만큼 많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불안한 것도 흔치 않다. 워낙 고개가 많아서 온종일 등산하는 기분이다.

 

태화강 전망대에서 태화강을 따라 걷는 길은 직선이었다. 시원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쌀쌀하게 느끼는 날씨지만, 걷는 사람이 많았다. 

태화강 길은 길고 멀었다. 건너편을 걸으면서 한참을 가니까 대밭이 나왔다. 2Km 정도 될 것 같은데 십 리 대밭 길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끝없이 대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태화강 국가 정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중간에서 발이 너무 아파서 한참을 쉬었다. 이렇게 쉬어 주어야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산에서 걷을 때 압박받는 발의 부위와 평 길을 걸을 때 받은 부위가 확실 다른 것 같다. 산길에서는 발가락이 덜 아팠으나 평 길을 걸으니까 발가락에 압박이 간다.

 

태화강 중간에 롤러스케이트장에 아이들이 웃고 떠든다. 아이들이 또래들과 노는 것이 즐거워 보이고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한참 만에 다시 걸었다. 

단조로운 직선 길은 걸으면서, 생각한 것은 사는 것이 별로 흥미 없고 의미를 찾아도 특별한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지금까지 잘 살았다고 생각하고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조용히 지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내 자식들은 보통이라도 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혹시 남보다 불쌍하게 살까 봐 걱정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자식들은 남보다 못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집이 잡힌 발가락은 걷기가 불편했지만, 계속 걸었더니 어느 정도 아픈 것이 적응되었는지 아침에는 일어나면 걷는데 별지장이 없었다. 연일 영하의 기온으로 추위가 여전하다. 한낮에도 바람 끝이 차가운 영하의 길을 누가 가라면 안 갈 길이지만, 내가 원해서 가는 것이다.

 

방어진항이 나타나면서 오랜만에 바다를 만난 것이다. 방어진항은 방어가 많이 잡혀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고 슬도는 방어진으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섬이었는데,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오직 등대만 옛 슬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슬도를 지나서 해변 길을 계속 가면 대왕암이 나온다. 대왕암이 보이는 바닷길은 걷기도 좋고 풍광이 좋아 울산 해파랑길의 진수이다. 대왕암에서 일산 해변으로 가는 길은 테크 길도 있지만, 해안선을 따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최고는 바닷물과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 깊은 해안과 출렁다리가 있는 코스이다. 출렁다리를 내려다보는 해송은 100년 이상 되면서 일산 해변까지 이어지는 해송 길은 해파랑길 8코스의 백미이다.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메고 왔던 배낭은 무거웠다. 걷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배낭에 남기기로 했다. 여분의 속옷과 양말과 노트북 외에는 거의 정리했다. 앞으로 필요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거의 택배로 보냈는데, 무게가 가벼워졌다. 배낭 속에 만약을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던 물건처럼, 마음속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이 해파랑길에 놓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해파랑길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이다. 

 

오늘 아침에 출발하면서 갑자기 기억이 나는 것이 몇 년 전에 족저 근막염으로 아픈 적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반년 정도 아프다가 좋아져 지금은 아픈 줄 모르고 지내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걸으면 도질 것 같은 기분이다. 만일 그런 날이 오면 걷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신체는 한 곳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곤란이 생기는 것이다. 내 몸도 고장 날 나이가 멀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것이다.

걷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가 파도치는 바다를 촬영하는지 큰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연신 찍고 있다. 사진 촬영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아주머니 차림이 특이했다. 머리는 시골 농사하는 아주머니처럼 파머를 하고, 나이는 예순 정도로 보이고 옷차림은 주방에서 밥 하다가 나온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차림에도 사진에 내공이 있는 고수일 수도 있지만, 보통의 눈으로는 너무 어색했다. 그래도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하는 것이라, 바뀌어 생각하니까 멋있게 보였다. 저 아주머니처럼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아야 행복도 쉽게 얻는 것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두꺼운 장갑을 꼈으나 손이 시려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간다. 그래도 한참을 걸으니까 몸에 온기가 돌고 걸음걸이는 원활하다. 그렇지만 바람결이 얼굴에 스칠 때는 춥다는 것을 느낀다. 이 나이에 이렇게 추운 날 전쟁 난 것도 아닌데, 걷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지금 나를 찾아서 뭐에 쓸려고 하는 것도 회의적이고 지금 내 마음은 필요 없는 짓을 공연히 하는 것 같다. 

몸은 춥고 마음도 의욕이 없으니,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걸어간다. 습관적으로 걷고 머릿속에는 멍한 상태고 모든 것이 귀찮고 세상이 싫어진다. 사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래도 걸으면 덜 추우니까 걷는 것이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 날 그것도 바닷가를 걷는 나를 보면 남들의 눈에는 개고생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지금 개고생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해파랑길 8코스까지 130Km 걸어오면서 양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고생도 하고, 시작할 때 가지고 온 무거운 짐으로 어깨가 아팠던 것은 물건들을 택배로 보냈기 때문에 이제는 견딜 만하다. 앞으로 그렇게 필요치 않은 짐들을 가지고 힘들게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삶에서도 짐이 되는 것은 놓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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