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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15. 2023

추워도 시작한 길은 걷는다

해파랑길은 강원도 삼척에서 고성까지의 “낭만가도”를 걷고 있다. 

아침 햇살은 산 중턱에서 내려오는 이른 아침 시간에 해안선을 따라 걸어갔다. 일직선 도로의 오르막을 걸을 때는 지루하기도 하고 은근히 힘이 든다. 어떤 오르막길은 숨이 찰 정도로 급한 곳도 있다. 도로 길도 오르막이 있었고 그만큼 내려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임원항에 도착해서 항구에는 들어가지 않고 좌측 임원 천을 따라 난 길을 한 시간 이상 걸었다. 검봉산자연휴양림 1Km 전 삼거리에서 우측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앞을 보니 제법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간간이 집들도 있었고 차도 다닐 수 있는 임산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초행길이지만 짐작으로 산을 넘어야 바다가 나올 것 같았다. 그 산을 넘으려 생각하니까 오늘도 만만찮은 산길과 바닷길일 것 같다. 

 

30코스가 시작하는 펜션이 많은 용화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도 있고 해변은 반달 모양으로 작지만, 모래가 곱다고 한다. 또 이렇게 펜션이 많은 것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 것 같다. 

이 구간은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면서 동해 바다를 감상하면서 갈 수 있는 구간이지만,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불고 추운 날이어서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이 없다. 

 

황영조 마을인 아담한 초곡항을 지날 무렵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장갑도 끼고도 손이 시려서 장갑 낀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한동안 걸었다.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것을 보니까 지독한 한파이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여기까지 500여 Km를 걸어오면서 두 번째 만나는 한파이다. 구정이 며칠 지나고 그렇게 춥더니, 보름이 지나서도 이렇게 추운 것은 내가 해파랑길을 걸으니까 고생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여기서 그만두고 집에 가라는 뜻인지...

이런 추위에 아직 이불속에 있어도 간섭받지 않을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18일째 걷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 무엇이 절박해서 걷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가보려고 걷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무엇 때문에 걷는지 명확한 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한심스러운 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지나는 길에 있는 개들을 짖게 하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니다. 

 

해변 길을 걷다가 보면 개들을 많이 만난다. 빈 창고를 지키거나 집에서 기르는 개다.

보통 개들을 긴 줄로 묶어 놓은 것이 많은데, 묶여 있는 개는 무지하게 짖고 달려든다. 달려들지만 묶여 있으니까 위험하지는 않다. 그런 개중에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이 가장 사납게 짖는다. 반면에 묶여 있지 않고 풀어놓은 개들도 있다. 이런 개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짓지 않고 오히려 따라다닌다. 순하게 길들려 진 것이다. 그런데 작은 개가 따라오면 무섭지 않지만, 큰 개가 따라오면 긴장된다.

간혹 묶여 있는 개가 짖지 않고 순하게 쳐다보다가 바로 앞에 오면 갑자기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가 지나는 여행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궁촌항에서 한 코스 더 가서 오늘 걷기를 마치려고 했으나 너무 추워서 여기서 쉬기로 했다.

궁촌항에는 민박이라고 쓴 집이 많았다. 그 대신 펜션이나 다른 숙박 시설은 없었다. 오늘은 민박집에서 묵을 생각을 하고 마을 입구부터 민박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숙박 여부를 물었다. 대부분이 손님을 받지 않았다. 코로나 핑계도 있지만, 지금은 비수기라서 손님이 거의 없어 준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찾는 여름 해수욕 철이 되어야 다시 민박을 할 것 같다.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지금은 추워서 걷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민박집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양지 볕에 쉬고 있는 할머니 옆에 앉았다.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어서 더 걷기가 싫었다. 여러 이야기하다가 민박집을 찾는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아는 곳에 전화하더니 한 곳을 잡아 주었다. 

 

다음날 궁촌의 아침은 몹시 추웠다.

얼굴에 눈만 보이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감싸 추위를 대비했지만, 손과 귀가 시렸다. 너무 추워서 춥다는 생각에 마음이 집중된다. 그래도 한참을 걸으면 추위가 갈 것이라는 기대로 열심히 걸었는데, 이제는 발끝도 시려온다. 오늘 추위가 대단한 것이다.

출발 때는 표시를 잘 따라갔지만 한참을 가다 보니까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더 가면 있을 것 같아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길을 잘 못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파랑길 표시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은 것이다. 표시가 안 보이면 의심해야 했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곳까지 왔다. 앱으로 확인해 보니까 7번 국도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을 공양왕릉 방향의 도로로 온 것이다. 앱에는 대진항 삼거리에서 다시 해안 쪽 도로를 가면 부남교에 해파랑길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길을 잃어버리니까 당황도 들고 오직 다시 길을 찾는데 정신이 쏠리니까 바람이 불고 추워도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진항 삼거리에 오기 전에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돌아갈 생각도 했으나 3대가 지나갔는데 모두 세워주지 않았다. 

이렇게 큰 상황이 생기니까 오직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되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길을 잃어버리고 걷는 거리가 정상적으로 가는 것보다 더 많이 걸었다. 

열심히 해파랑길 표시를 찾아서 걷다가 보니까 멀리 다리에 해파랑길 표시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너무 반가운 표시였다.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아서 걸어가니까, 이제야 춥고 다리도 아픈 것 같고 피곤을 느낀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걸으면 시간이 가면서 아픈 것이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아프다가 그 물집이 해결되니까, 배낭을 멘 어깨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약간 좋아지니까, 발바닥이 아파 고생을 했다. 발바닥도 관리에 신경을 쓰니까 아픈 것이 덜해지는 것 같은데, 이제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 다음에는 어디가 아플지 궁금하다.

덕산 해수욕장에서 맹방 해수욕장을 건너는 덕봉대교에서 바닷바람이 절정이다. 다리를 건널 때 몸이 나라 갈 것 같이 바람이 불었고, 멀리 보이는 덕봉산도 파도가 높게 치는 것이 보인다. 맹방 해수욕장을 걸을 때는 너무 추웠다.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이 영하라서 걷기가 힘들었다. 끝이 안 보이는 해수욕장을 걸어가다가 너무 추워서 해수욕장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삼척으로 들어오면서 오십천 번개시장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시장을 지날 때 점심시간일 때가 거의 없었다. 시장 안에는 밥집이라고 쓰고 다른 상호가 없는 식당을 들어갔다. 노부부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일단을 들어가면서 한 사람인데 식사가 되냐고 물어보니까, 된다고 해서 가정식 백반을 시켰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이나 반찬은 모두가 시골밥상이었다. 더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밥을 다 먹어 가니까 밥과 반찬을 더 주는 것이다. 정 많은 할머니 눈에는 내가 밥도 안 먹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따뜻한 마음을 보았다.

 

삼척항을 구경하면서 가다가 보면 ’정라항안길‘이라는 언덕길을 올라간다. 언덕길은 가파르고 힘이 들지만 올라가니까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일품이다. 삼척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맹방해수욕장, 한재, 덕봉산까지 보인다.

삼척 해안 길을 걷는 동안에는 집채만 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에 정신이 나가서 한참을 구경하기도 하지만, 파도가 해변 길에 넘쳐 들어오면 놀라 테크 길 위로 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 바닷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별로 대수롭잖다는 얼굴이다.

 

추암 부근에서 유숙하고, 다음날 유명한 촛대바위에서 동해의 일출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이른 시간에 나갔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가장 잘 보이는 장소는 먼저 온 사람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다소 먼 곳에 자리를 잡고서 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구름이 있어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해가 떠올랐다. 그냥 떠오르는 해를 보니까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기원해야 할 것 같아 나머지 걷는 기간에 무사하게 완주하기를 빌고,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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