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May 14. 2023

대게의 고향은 어디인가?


해파랑길 영덕 길은 7번 국도와 함께 가는 길이다. 가다가 산으로도 가고 때로는 바닷가로 가지만 7번 국도를 많이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 영덕 길을 블루로드 길이라고 부른다. 

장사해수욕장을 지날 때 특별한 기념관이 보인다. 바다에 뜬 배처럼 만든 기념관인데,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다. 육이오 사변 당시에 인천 상륙작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동해안 장사에서 양동 작전으로 이 문산호 배를 이곳에 상륙시킨 것이다. 대부분이 학도병이었고 상륙하면서 막대한 사망자와 부상자를 내면서 상륙에는 성공한 작전이었다고 한다. 이때 군복이 없어서 일부는 학생복을 입고 상륙했다고 한다. 전쟁의 비극으로 꽃다운 청춘들이 아까운 희생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강구항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영덕대게로 가 만들어져 있다. 해파랑길은 그 영덕대게의 해변도로를 가지 않고 산으로 만들어져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가는 등산로인 것이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까 멀리 바다가 보이는 산길이다. 산길이 숨이 차기도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해송 사잇길임으로 산과 바다가 함께하는 길이고, 특히 여름에는 햇볕을 막아주고 해풍이 불어오면 걷기가 이보다 더 좋은 길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산길로 해파랑길을 만든 이유가 보이는 것 같다. 한 시간을 걸어도 산길이다. 이제는 바다도 보이지 않고 거의 등산 수준이다. 이 코스는 일차적으로 고불봉으로 가는 코스이다. 곧 나타날 것 같은 고불봉이 8Km 이상 걸어가니까 나왔다. 고불봉에서 바라본 동해의 먼바다는 넓고 끝없는 푸른 바다이고 가슴까지 후련한 곳이다. 

 

다시 한 시간 이상 걸으니까 풍력발전기들이 많이 보이고, 기념관들이 많이 보이는 도로 길을 걸어가니까 영덕 해맞이 공원에 도착한다. 해맞이 공원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해안 길이 나온다. 처음부터 바다와 같이 걷는 해안선 길이다. 바다와 이렇게 가까이 걷는 구간도 많지 않지만, 도로와 차가 보이지 않는 해파랑길이라 더 좋았다. 큰 바위와 작은 자갈도 있고 오랜 세월에 둥글어진 보통 몽돌도 있지만, 축구공보다 더 큰 몽돌도 많은 해변길이다. 오보 마을을 지나서 다시 해안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해안 길은 파도 소리와 동해안의 푸르고 맑은 바다가 바로 옆에 있는 길이다. 

 

영덕의 경정 2리는 대게잡이 원조 마을이라고 선전하는 곳이다. 이 마을은 선장들이 직접 대게를 잡아서 본인 식당에서 대게를 쪄서 팔기 때문에 부근 대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강구항에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온다. 그래서 이곳에 식당들은 단골이 많다고 한다.

 

"영덕대게로"를 따라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바다 풍경을 보면 아름다운 해안 도로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 해안선을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선보다 더 아름답다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다. 이 길이 이곳 사람들이 블루로드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도로 밑에는 환상적인 해안 길이 영덕의 해파랑길이다. 

축산항에 이르는 해안 길 마지막은 바닷가에 서 있는 큰 기암괴석과 해송이 그늘을 만들어서 멋진 코스이다. 축산항 죽도산의 하얀 등대는 이 주변을 모두 조망할 수 있고, 멋있게 잘 만들어져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지만 올라가 보면 더 좋은 곳이다. 

 

대진항에 도착해서 조금 더 가면 도해단을 나온다.

항일운동을 했던 의병장이 이곳에서 바다로 들어가 순국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이다. 

이 의병장과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있다. 같은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의병장이 태어난 집은 지금은 지방문화재로 등재되어 관리되고 있지만, 원래 그 집은 우리 집이었다. 의병장 소유였던 집은 시간이 지나, 우리 조상이 주인이 되면서 100여 년 뒤에 그 집에서 나고 자란 집이었다. 

 

비가 내린다. 가랑비가 내리는 길을 그냥 맞으면서 걷는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서 우산은 준비했지만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서 택배로 같이 보낸 것이다.

비를 맞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이는 것 같고, 마음속에서도 한없는 허무가 밀려온다.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혼자가 된 기분을 알 것 같다.

이 길은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길이고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지금처럼 남의 시선도 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의미 있게 살려고 고민하면서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작은 것을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다. 

 

영덕 구간을 지나니까 방파제나 가로등에 영덕 대게를 상징하는 표시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도로에 울진 대게로 표시되어 있다. 영덕을 지나서 울진으로 들어온 것이다. 

 

울진 황금 대게 공원에서는 대게는 울진이 원조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전에 시작할 때의 해안 도로는 “영덕 대게로”였지만 지금의 해안 도로는 ‘울진 대게로 “이다. 

이처럼 영덕과 울진이 오래전부터 대게는 자기들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대게로 유명한 곳은 영덕 강구항이지만, 실제로 많이 잡히는 곳은 울진이라고 한다. 울진의 주장은 대게가 많이 나는 왕돌잠이란 바다는 울진 바다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실상 대게를 가장 많이 잡는 곳은 포항 구룡포항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대게잡이 대형 선박이 이곳에서 출항하기 때문이다.

영덕과 울진의 대게 원조 다툼이 걷는 나그네의 눈에도 보이는 것 같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나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걷는 것은 아니라 내 처지를 바로 알고 앞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기 위해 걷는 길이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의 자존감을 찾으려고 이 길을 걷는 것이다.

또 걸으면서 편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그 속에서 행복도 오고 보람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나이 들어서 체력은 떨어지고 소극적으로 변하겠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걷는 것이다. 

 

해안선 길을 따라 걷다가 멀리 잘생긴 바위가 보인다. 아마도 이름 있는 바위일 거라는 느낌이 와 가보니 “촛대바위”이다. 수십 년 전에 이 해안 도로를 만들 때 사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겨우 살아남아서 지금은 꼭대기에 소나무가 촛불처럼 보여서 촛대바위라고 하고 있다. 

촛대바위에서 2Km 정도 더 가면 망양정 해맞이 공원이 나온다. 이곳 망양정은 바다가 보이고 울진이 내려다보이는 곳, 좋은 시설을 많이 만들어 사람들을 찾게 하고 있다. 

이 망양정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이는 해맞이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지만, 원래 기성면 망양리에 위치하던 것을 조선 후기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보통 아침에 걷기를 시작하면서 걷기 싫고, 걷는 것이 힘들다는 마음부터 든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면,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인생은 고해다”라는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아침이면 세상 모든 일이 좋게 보이지 않고, 마음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그냥 한참을 걷다가 보면 마음의 느낌이 서서히 바뀐다. 그래도 의미 있게 살아야 할 것 같고, 나 자신을 위해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까지 생각하게 된다. 

걷는 것은 분명 긍정적으로 마음이 변하는 효과가 있다. 걸으면 좋은 아이디어와 마음의 안정과 육체적인 건강에 도움 된다는 말은 걸어보니까 느낀다.

 

울진 북면 석포항을 지나면 나곡해수욕장이 나온다. 

나곡해수욕장에서 고포까지 해파랑길은 옛 7번 국도를 따라 나 있다. 고포마을은 울진과 삼척의 경계선에 있는 마을이다. 이 고포마을의 고포 미역은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이름 있는 미역이다. 

울진의 고포마을은 나곡 6리이고, 삼척의 고포마을은 원천 2리이다. 고포마을은 마을 중간이 경북과 강원의 경계인 것이다. 바로 앞집에 전화해도 지역 번호가 다르고, 앞에 사는 형님 집도 지역이 다른 곳이다. 

 

해파랑길에서 대게를 많이 잡는 고장을 걸으면 서로 대게는 자기들 것이라고 한다. 

자기 고장의 대게라는 것을 홍보하는 방법도 다르고, 자기 것이라고 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지나는 과객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고, 같은 값에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 곳에 마음은 가지만, 대게의 고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걷고 나서 만나는 막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