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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24. 2023

다시 돌아가는 집

집으로 돌아오는 들녘은 멀지 않아 아지랑이가 보일 것 같다.

추운 세밑에 떠나서 봄이 오는 것이 보일 것 같은 날에 돌아오면서 마음속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을 때 지나가는 차에게 태워 달라고 간절히 손을 흔들었지만 외면하는 인심에 실망도 했고, 배고파 보였던지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밥 한 그릇 더 주던 작은 항구의 밥집 할머니 마음에 감동하면서 걸었던 길이다. 발걸음이 천근 같은 날도 있었고, 왜 걷는지 자신에게 묻기도 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을 힘들었지만, 이제 마치고 처음에 왔던 곳으로 가고 있다. 처음에 왔던 곳도 제자리가 아니고 잠시 머무는 자리일 수도 있다.


해파랑길은 내가 가고 싶었던 산티아고의 길은 아니지만 걷고 나니까 잘 왔다는 마음이 든다. 걷는 의미는 같은 것이고 이제 가보지 않은 산티아고 길보다 다녀온 해파랑길이 더 좋은 길인 것이다. 산티아고 길은 내가 살아보지 않은 길이라면 해파랑길은 내가 살아온 나의 길인 것이다. 

길은 동해 해변의 절경을 지나는 세련된 길도 있었지만, 아직 거친 야생의 길이 나왔고 때로는 산을 오르기도 했지만, 푸른 바다와 맑은 공기를 숨 쉬면서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설날 신리 해변 마을을 지날 때 세배 다니는 정장 차림의 가족들이 보일 때, 가족과 형제들이 보고 싶었고, 돌아가신 모친을 생각나면서 어른들에게 세배하던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려고 멀리 바다를 보고 걷기도 했다.

날이 추워지고 너무 오랫동안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더 걸을 힘도 없어 궁촌 마을에서 쉴 곳을 찾는데, 민박집이라고 많이 쓰여 있어서 별 걱정 없이 가까운 민박집부터 하룻밤 묵어가자고 부탁을 했지만, 겨울이라 민박을 안 한다 했어도 이렇게 민박집이 많으니까 한 곳은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모든 집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다리를 끌고 다녔지만 잘 곳을 구하지 못해서, 해변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는 할머니 옆에 다리가 아파 쉬면서 “민박집을 구한다"라고 하니까 그 할머니가 민박하는 곳을 구해 주기도 했다.


고래불 해변에서 아침부터 비가 오는데 못 걸을 정도는 아니고 내리는 가랑비를 맞으면서 걸을 때 몸에 한기를 느끼며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아 한없이 슬펐던 기억이 나고, 우산이나 우비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그 비를 끝까지 맞고 걸었다. 

추운 겨울에 급하게 떠난 해파랑길은 걷는 것보다 추워서 더 힘들었고, 아픈 곳이 나올까 걱정되는 출발이었다. 끝까지 걸어가겠다는 마음보다는 걷지 못할 경우까지 가서 다음을 기약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시작하니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일도 없고, 내게 관심 갖는 사람도 없어서 끝까지 걸어간 것이다.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서 오후에 걷기를 마치면 먼저 숙소를 정하고 다음은 저녁을 먹었다. 그때 마시는 그 지방 막걸리는 그날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부산에서는 “생탁”이 좋았고, 울산은 “태화루”가 있었고, 경주는 “경주법주 쌀 막걸리”가 맛이 있었다. 포항은 “영일만 친구”가 있고, 영덕의 “정 막걸리”와 울진의 “미소 막걸리”도 먹어 보았다. 삼척은 동해의 “지장수 막걸리”가 있었고, 강릉은 “사임당 강릉 막걸리”가 있어서 걷는 동안에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벗 같았다.


배낭을 메고 다닌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장시간 걸으니까 무겁고 힘들었다. 배낭이 무거워지니까 걷는 것도 힘들었고 어깨가 아파 5일 만에 울산에서 필요한 물건을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만 남겼지만, 배낭 자체가 무거워 어깨는 계속 아팠다. 아픈 곳이 걸으면 교대로 나타나지만 계속 걸으면 적응이 되었다. 


걸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지만, 걷는 길에 따라서 생각이 멈추기도 하고 다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진 굴곡이 없는 길을 걸을 때 발바닥이 아프지만 여러 생각을 하면서 걸었고, 숨이 차는 산 오르막은 갈 때는 다리 아프다는 생각과 숨이 차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오직 언제 오르막이 끝날 것인가에 관심이 간다. 


해변의 자갈길은 발을 잘못 놓으면 다칠 수도 있고 발을 놓을 곳을 살피기 때문에 수월한 길이 아니다. 바다 위의 언덕길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갖고 걸을 수 있지만, 밑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곳이다. 모랫길은 은근히 힘이 들어서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나간 뒤 물이 다져 놓은 곳으로 걸어야 쉽다는 것도 터득했다. 논 밭둑길도 걷기는 쉽지만 지루한 길이고, 차와 같이 걷는 도로 길은 달리는 차 소리와 아스팔트 걷는 것이 발바닥이 아팠다. 무엇보다도 모든 길을 가면서 해파랑길의 표식을 찾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걸어보니까 세상을 사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지만, 사람이 사는 것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성공 여부도 큰 의미 없고, 사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생각했다. 그래도 보람이나 행복은 부지런히 살아야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살면서 성질대로 하거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면 그다음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았다. 살아가면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노련하게 사는 것이다. 걸으면서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편하게 하고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는 것을 느꼈고, 다정하고 친절하면 그것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가족들도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걷는 중에 명절도 있었고 서로 안부 인사하는 시기였지만, 나를 찾는 전화가 거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존재감이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길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일과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관심을 기대하면 본인만 아쉬움을 남는다.

걷는 중간에 몹시 추워진다는 예보가 나오는 날 문자가 한 통 왔다. 여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추워져서 걱정이고, 따뜻한 곳에서 보내라"라는 문자였다. 그 문자를 보고 감동이 왔고, 세상에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작은 걱정과 배려도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고 그 사람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중간에 ”노란 손수건‘이 생각나면서 마지막 도착지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감동 스토리도 생각해 봤다. 그렇게 기다릴 사람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기대를 하면서 걷는 순간은 행복했다. 우리가 사는 것은 감동이 있는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다. 나머지 삶을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가면 좋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해파랑길 770Km 걷기를 마쳤다.

몸은 움직여야 무엇이라도 남는 것이 있었다. 원래 인생은 대단하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일생을 사는 것이다. 

옛사람들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일생이지만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그 의미 찾는 것이 힘들고, 찾아도 그렇게 살기 힘든 것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려고 애쓰면서 사는 것이다.

해파랑길은 많은 생각을 하면서 혼자 걸어온 길이다. 

우연히 시작한 길이지만 끝나고 나니까 잘 걸었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이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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