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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01. 2023

용기만으로 출발하는 세계여행

동해안을 걷고 온 다음에 시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추운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시절에 아직 코로나는 극성이지만,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 길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유럽이 먼저 개방되었다. 용기를 내어서 일단 떠날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의 버킷리스트가 세계 일주일 것이다. 그것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누구나 세계여행을 생각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떠나는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출발한 것은 무모할 정도로 용기를 낸 것이다. 

 

그래서 머리는 희고 숫도 많이 빠진 시절에 고향 집 대문 앞에 섰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이다.

계절에 맞은 복장을 하고 작은 배낭도 메었다. 아직은 걸을 수 있는 나이이고, 걸을 수 있는 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여행은 가슴이 뛸 때 가는 것이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가슴은 그렇게 뛰지 않고 다리는 아직 후들거리지 않으니까 여행의 적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갈만한 때라고 여기고 싶다. 지금 떠나는 여행은 의식적으로 가슴이 뛴다고 생각하면서 가려는 마음이다. 

 

실제로 떠나면서 처음 가는 나라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큰 즐거움이나 기쁨보다는 고생할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편안한 집에 있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집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다리에 힘이 남아 있을 때,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을 하려고 떠나는 것이다. 일단 여행은 떠나야 시작된다는 말만 믿고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이 들었다는 것과 낯선 곳이 불안했지만,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겁먹을 나이는 아니다. 늙어 보이니까 사람들이 큰 관심을 안 가질 것 같으니까 능력껏 다녀 보려는 생각이다. 또 무엇을 간절히 얻어야 하고 느낄 필요도 없고, 좋은 느낌이 오면 좋고 안 와도 그만인 시절이다. 그냥 가 보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다. 

 

계획을 세밀히 세우고 떠나기 전에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준비를 잘해보려고 하다가 힘들어서 포기했다. 그렇게 신경 써 가면서 준비하는 것이 귀찮고 쉽지 않아 그냥 부딪쳐 해결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세련된 여행도 필요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연륜으로 민폐만 끼치지 않고 여행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날 해결할 일은 그날 해결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을 하니까 준비할 것이 별로 없었다.

일단은 배낭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택했다. 큰 것을 메고 다니면 어깨도 아프고 걷는 것도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허리를 매는 끈은 조잡하지만 직접 만들어 달았다. 배낭이 비교적 작았지만, 무게를 어깨와 허리에 분산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차는 복대도 준비했다. 중요한 것을 넣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나도 머리는 희고 늙었지만, 소매치기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 여권과 중요한 것을 넣고 다닐 예정이다. 

배낭 속에는 속옷 한 벌과 반바지와 반소매 난방 하나를 넣고, 스포츠 타월 하나와 작은 우산 하나가 전부이다. 그러고는 노트북과 마우스, 충전기 2개와 평소에 먹는 약을 넣었다.

그런데 평소에 먹는 약이 제법 되고, 그 약을 소지하여야 하는 이유를 영문으로 처방전과 사유서를 작성해서 지참했다. 

 

일단 가고 싶었던 튀르키예의 편도 항공권과 숙소도 예약했다. 항공권은 미루다가 일주일 전에 예매했고 숙소는 불과 떠나기 이틀 전에 예약했다. 

영어는 학교 다닐 때 배운 것 외에 따로 배운 적이 없고 외국인과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영어 단어만 알고 있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일단 가 보는 것이다. 

누가 급하면 한국말로 해도 외국인이 알아듣는다는 농담은 들었지만, 그래도 불안하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예상되는 것은 손발이 동원되고 짧은 영어 단어가 소통 수단이 될 것 같다. 대화할 때 엉뚱한 단어를 말했다고 부끄럽거나 주눅이 들 나이는 지났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려는 것이다. 다만 기억력이 약해져서 문제일 것이다.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더 늙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살았다면 이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이다. 

이 기회에 내가 있는 그대로 나를 보면서 스스로 낯선 곳에서 생존해 가는 나를 즐기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보며 내 삶과 비교도 하고, 처음 보는 경치나 인류가 살아온 자취도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싶은 생각이다.

오롯이 낯선 곳에서 나 자신을 위해서 열중하는 모습과 낯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구경하고 싶은 것이었다.

 

여행의 자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것이다. 

이제는 나라에서도 나를 찾을 일이 없는 나이이다. 민방위가 끝난 지도 오래되었고, 직장을 마친 것도 일 년이 넘었다. 전쟁이 나도 징집이나 필요한 대상이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말썽만 없으면 나라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외국에 있으나 여기 있으나 관계없는 것이다. 

늘 꿈꾸어 왔던 “시니어 노마드"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늙은 유목민처럼 가벼운 짐으로 이곳저곳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떠돌아다니다가 힘들면 쉬어서 가고, 어디도 정을 붙이지 않고 이방인으로 살다가 다리에 힘이 빠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곳이다. 이렇게 출발은 내 나름의 멋있는 명분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집도 버리고 돌아올 곳이 없도록 만들어 놓고 떠나야 진정한 “시니어 노마드"이지만, 여행이 맞지 않거나 싫어지면 돌아올 곳을 남겨 놓은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여행자의 용기는 부족하지만, 여행이 내 체질이나 취미에 맞도록 애써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 곳에 머물면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역마살도 꿈꿔 본다.

 

일단 여행을 떠나면 매일 새로운 마음과 호기심으로 시작해 보려는 마음이다. 약간 유아적인 마음과 자세를 가지면서, 행동은 지금까지 살아온 연륜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름한 배낭과 세련 안 된 복장은 세상 사람의 관심을 끌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동양의 늙은이로 보이고 싶다. 여행하면서 멀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배낭에 물건을 넣고, 곧 출발할 것이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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