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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01. 2023

눈치로 도착한 이스탄불

항공권을 구입하고 티켓으로 교환하려면 구입한 항공사를 찾아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인천공항에 있는 해당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갔을 정도로 항공기 탑승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티켓을 주는 곳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서 있는 줄은 두 줄인데 한 줄은 길고, 다른 줄은 한적하게 몇 사람이 없었다. 왜 사람들이 짧은 줄에 서 있지 않고 긴 줄에서 기다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긴 줄에 섰다가 다시 짧은 줄로 바꿔 섰다. 짧은 줄에서 기다리니까 앞에 있던 사람들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아직 한차례도 스탬프가 찍히지 않은 여권과 항공권 서류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여직원은 비즈니스이냐고 물었다. 비즈니스석이 아니고 이코노믹이라고 하니까 옆에 길게 서 있는 곳에 가서 줄을 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을 구분해서 출국 수속을 한다는 것을 모르고, 짧은 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맨 뒤에서 시작해서 한참을 기다려서 출국 수속이 끝나고 티켓을 받았다.

 

공항에서 대기하면서 부족한 서류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국 수속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서류 중에 PCR 검사를 72시간 이내에 받은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오직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영문 서류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는 지인에게 전화하니까 대체로 백신 접종 서류와 PCR을 동시에 원하는 국가가 많다는 것이다. 

튀르키예까지 항공기는 타고 가지만, 입국이 안 되면 낭패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경을 쓰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여행하고 싶어서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해도 기본적으로 할 것은 해야 하는 것이다.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그래도 다시 출국 수속을 하는 직원에게 물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도 만일 PCR이 입국 필수조건이면 튀르키예 가서 어떻게든지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지, 다시 돌아가 PCR를 받고 증명서를 갖고 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직원은 튀르키예는 입국이 완화되어서 백신 접종 서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크게 안도하면서 준비할 것을 해야 일이 덜 피곤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내식은 두 번 나왔는데, 배달하는 여승무원과 말이 통하지 않아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못 알아들으니까 같은 것을 두 번이나 먹었다. 그래도 커피와 주스를 중에서 선택하는 것은 커피라는 말이 귀에 들어와서 커피 대신에 주스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중간 기착지인 도하에 도착했다. 도하에서 바뀌어 탈 항공기는 정해졌지만, 탑승 게이트가 티켓에 명시되어 않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게이트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게이트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케이트를 쉽게 찾았는데 잘못 본 것이다. D21B를 D218로 본 것이다. D 게이트를 찾아가니까 218이란 곳은 없었다. 그래서 안내 코너에 말없이 티켓을 보여 주니까 D21B로 적어 주었다. 여기서도 말이 안 통하지 않았지만, 티켓을 보여주면 안내하는 곳에서 알아서 알려주고 있었다. 출발 게이트를 확인하고서야 공항 안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모두가 중동 사람들이다. 간혹 서양인이 눈에 들어오기는 해도 동양인 나 혼자뿐이다. 

공항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이나 생김새를 구경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 있었다.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이방인이 되어 특별한 애로나 걱정 없는 지금이 좋은 시간인 것 같고 이런 마음이 여행 중에 계속되기를 바랐다.

 

다시 탑승한 항공기는 같은 카타르 항공으로 목적지인 이스탄불 공항까지는 4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이다. 옆에 중동 사람이 앉았는데 무슨 말을 걸어왔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기내식이 한번 나오는데 같은 항공사여서 종류가 같았다. 여기서는 같은 것을 시키지 않고 다른 것으로 먹었다. 말이 통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기내식 표장 색깔이 다른 것을 시키니까 다른 메뉴였다.

이스탄불에 내려서 입국 심사를 까다롭게 볼 줄 알았는데,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코로나 백신 증명서도 제출했지만 보지도 않았다. 마치 돌려보내면 관광 수입만 준다는 생각뿐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항에서 먼저 버스를 찾아갔다. 탁심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탁심으로 가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 들었다.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도 있는 것 같다.

버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그냥 “탁심”이라는 물어보니까 손가락으로 버스를 가리켜 주었다. 올라가면서 기사에게 한 번 더 “탁심”이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탁심” 두 번 외치고 버스에 올랐다. 

 

탁심 광장에 내려서 지상철을 타려고 지하를 찾았다. 

친절하게 보이는 사람에게 튀르키예 돈을 주고 손짓으로 티켓을 기계에서 뽑아 달라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다섯 사람이나 물어서 티켓을 뽑을 수 있었다.

일단 지상철을 타니까 가고자 하는 곳을 알 것 같았다. 술탄 아흐메트이라는 영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 내려서 숙소를 찾는데, 낯선 곳이고 간판을 전혀 볼 수가 없고 말도 한마디도 못 알아들으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택시를 잡아서 주소를 보여 주니까 한참을 바라보더니 못 간다고 했다. “원 킬로”라는 말은 알아들었는데 너무 가까워서 안 간다는 뜻이다. 가깝지만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그냥 걸어가라고 방향만 알려 주었다. 기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서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또 그곳에 착하게 생긴 사람을 찾아 물었다. 몇 사람이 모른다고 하다가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다. 

 

가리키는 곳은 가까이 있는 작은 골목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서 같다. 간판이 영어로 쓰여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숙소 이름인 “산타 소피아”를 말하니까 가리키는 손가락이 내 바로 뒤의 건물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산타 소피아”라는 글자가 쓰여있었지만, 사람이 주눅이 드니까 그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도착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고 그냥 숙소에서 쉬고 싶었다. 

이스탄불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하는데, 내가 있는 숙소는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술탄 아흐메트 광장 부근이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상당히 일찍 나왔는데 관광객들이 붐비고 술탄 아흐메트 광장은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는 아직 춥다는 느낌이 들었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머리가 흰 동양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있다. 

 

일단 어제 타고 온 지상철을 이용해서 갈라타 다리로 갔다. TV에서 본 대로 다리 위에 낚시하는 사람은 많았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거의 나이가 든 튀르키예 사람인 것 같다. 한참을 지켜보니까 고기가 제법 잘 잡히고 있었다. 다리를 두 번 정도 왔다 갔다 했는데, 무엇을 찾기 위해서다. 

고등어를 넣은 케밥을 먹고 싶었던 것인데, 그런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갈라타 다리 양쪽 어느 쪽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고등어 케밥을 꼭 먹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스탄불의 앞바다를 투어 하는 유람선을 탔다. 가격은 저렴하고 상당한 시간을 타면서 바다에서 아스 탄불 주요 건물이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유람선에서 멀리 보이는 산속에 잘 지어진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잘 사는 사람은 어디 가도 있는 것 같다. 더 좋은 집은 바닷가에 있는 큰 저택으로 바로 앞에 요트가 정박되어 있고 영화에서 봤던 상류층이 상상되는 곳도 있었다. 

이스탄불을 옛날 사원도 많고 성이나 건축물 구조가 그렇게 높지도 않으면서 잘 꾸며져 있다. 멀리 보이는 신시가지는 높은 빌딩이 보인다.

 

투어를 마치고 배에서 내리니까 고등어 냄새가 났다.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서 고등어 케밥을 팔고 있었는데 유람선을 타기 전에 없었던 것은 점심때가 되지 않아서 영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등어 케밥은 주로 노인들이나 관광객이 찾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먹어 보니까 비린내는 심하지 않았지만, 빵이 딱딱하고 그렇게 맛이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케밥을 먹고 가지 않으면 후회될 것 같았는데 먹어서 다행이다. 

 

다음에는 갈라타 탑으로 올라갔다. 길에 있는 안내판을 읽을 줄 모르니까 별다른 방법이 없고 높이 보이는 탑 쪽으로 걸어가니까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이 있었다. 아마도 갈라타 탑으로 가는 것이라 추측하고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니까 줄이 탑을 한 바퀴 돌고도 또 길게 서 있다. 나도 줄을 섰다. 여행은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한참을 서 있어 보니까 사람들의 손에는 티켓이 들려 있었다. 입장권을 파는 곳이 다른 곳에 있었다. 다시 입장권을 구입해서 처음부터 줄을 다시 섰다. 여기서도 기다리면서 낯선 사람들이 표정이나 모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갈라타 탑에 올라가 보니까 갈라타 다리가 바로 밑으로 보이고, 이스탄불이 모두 보이는데 큰 도시였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바다 사이에 둔 16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였다. 

 

아침에 너무 일찍 나와서 문을 열지 않아 기다리다가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입장료를 받지 않았고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하기아 소피아”는 비잔틴 제국에서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오스만제국에 정복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성당이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성당을 상징하는 모자이크에 회칠을 해서 개조했지만, 그 회가 떨어져 나가면서 성당 흔적도 보이면서 성당과 이슬람 사원이 섞인 묘한 성당이다.

그 규모가 너무 웅장하고 커서 천장이 너무 높아 고개를 끝까지 젖혀 올려 다 보였다.

이곳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고, 가장 중앙에 있는 앞 장소는 남자들만 들어가 있었다. 

신기해서 계속 지켜보았지만, 남자만 들어오고 히잡을 쓴 여자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유심히 살펴보니까 성당 안 좌측에 약간 컴컴한 곳에 여자들만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보였다.

이슬람 교리는 남녀 구분이 확실한 것 같았다.

 

탁심 넓은 광장에 따뜻한 햇볕을 즐기는 젊은이들 옆에 앉아서 오랫동안 같이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했다. 여행하면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는 구경이었다.

젊은 사람이 많이 다니고 특히 여자들은 모두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미인들이고, 탁심 광장에 개들이 무척 많았다. 개들이 광장에서 다니지 않으면 누워서 지내는데, 젊은 여자들이 귀여워하면서 먹을 것도 주는 것 같았다. 개들이 무서울 정도로 큰 개들이어서 동양인들은 경계하면서 지나가지만, 여기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탁심 광장에서 유일하게 동상이 서 있다. 오늘의 튀르키예를 만든 탁심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한 사람만 조각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탁심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의 군상을 조각한 동상이다. 튀르키예는 이슬람 문화이므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기 때문에 동상이 없다고 한다. 유일하게 탁심의 동상이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같이 조각되어 있었다.

 

탁심 조각상에서 시작되는 탁심 거리는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서울의 명동거리가 연상될 정도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코로나 시국이라서 여행을 오지 못한 것이다. 

그 탁심 거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인데, 주는척하다가 안 주고 약을 올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구경했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케밥 가게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고 있었다. 이스탄불에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술을 파는 곳이 별로 없는 듯했다.

슈퍼나 작은 가게에도 술은 취급하지 않고 술을 볼 수 있는 곳은 식당이다. 그런 식당도 많지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이 나라는 술을 거의 먹지 않으니까 술에 취한 노숙자나 취객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술을 먹고 싶지만 먹기 힘든 나라이다. 치안은 어떤지 모르지만, 취객은 전혀 없어서 공연히 소리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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