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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03. 2023

마드리드에서 맞은 생일

어느 도시를 가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드리드의 이른 아침 큰 건물 밑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노숙자가 자고 있다.

노숙자는 바닥에 메테레스를 깔고 노숙하고 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메테레스를 사용하는 것은 노숙도 진화된 것 같다. 앞으로도 규제의 범위 내에서 노숙자도 최대한 편안하게 노숙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마드리드는 너무 넓은 도시이다. 처음 느낀 건 마드리드 하늘이 무척 넓게 보이고 주위에 산이 보이지 않고 끝없는 평지인 것 같다.

이 도시에는 바쁘게 걷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의 표정에서 하루에 바쁜 아침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한가한 오후처럼 느리게 사는 것 같다.

어쩌면 게으르게 보일 정도로 한가하게 길거리에 놓인 카페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나 감탄이 나오는 유적지를 보면서 즐거움과 신기한 것이 많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눈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새로운 것이지만, 새롭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신경이 쓰였고, 많은 시간을 길 찾기 하는데 보냈다. 

그래도 매일 새로운 것을 보니까 시간은 그렇게 빨리 가지 않는 것 같다. 오랜 시간 길 찾기에 집중하다 보니까 서너 달은 지난 것 같은데, 달력의 시간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서 마드리드에 도착하는 날이 생일날이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맞은 생일은 또 한 살을 더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별 느낌이 없다. 

낯선 곳에서 미역국을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카톡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와 미역국 못 먹어서 아쉬워하는 내용이 많이 왔다. 

어릴 때 늘 미역국을 끓여 주시던 엄마가 생각났지만, 지금은 끓여 주지도 못하고, 끓여 드릴 수도 없다.

 

스페인에는 예전에 은퇴 전에 직장 다닐 때 인연이 있는 지인이 유학을 와 있던 곳이다. 이번 무리하게 떠나온 여행을 튀르키예나 그리스에서 전화해 많은 도움을 받은 지인이다.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이곳 마드리드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아마도 혼자 하는 여행이 어려워서 아는 사람과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이곳으로 찾아왔을 것 같다. 

 

정한 숙소에 가기 전에 마드리드 지인 집에 들러서 잊지 못할 대접을 받았다. 생일날 저녁에 이곳 스페인 소고기를 듬뿍 넣은 육개장을 먹은 것이다. 한 달 만에 먹어보는 먹는 한식이었고, 맛을 제대로 낸 육개장이었다. 여행지에서 맞은 생일날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여행은 예측하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좋은 쪽으로 예측 못 한 일이다. 그 육개장은 지인 모친이 나를 위해서 끊인 것이다. 물론 내 생일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외국 여행에서 매꼼 한 것이 그리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준비했다고 했다.

어떤 생일상보다 맛나고 잊지 못할 생일 저녁상이었다. 

세상에 작은 인연을 이렇게 좋은 만남이 될 수도 있고, 세상에 따뜻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았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 나와 거리 카페에서 맥주 한 잔 시켜 놓고, 한없이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지인들과 담소하면서 보낸다. 점심은 늦은 오후에 먹고는 한숨 잠자거나 한가하게 보내다가 다시 저녁에 나와서 다시 또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이곳은 저녁 8시가 넘어도 해가 있는 도시이다. 그러니 해가 넘어가는 저녁 10시경부터 다시 식사도 하고 여유와 한가롭게 늦은 밤까지 보내는 것이다. 하루를 두 번 사용하는 것 같고 시간을 길게 사용하는 느낌이다. 

이 도시는 나무가 우거진 도심을 산책하다가 보면 햇볕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많고, 간간이 길거리 카페가 있는 곳에서 어김없이 한가한 노인들이 맥주 한 잔이나 와인 한 잔 놓고 한가로이 담소하고 있다. 이곳은 이렇게 아침부터 온종일 술을 즐긴다고 한다. 그래도 취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스페인의 전통춤인 플라밍고를 보러 갔다. 여행하면서 이런 새로운 문화와 접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이런 공연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약간의 설렘을 느낀다. 이런 새로운 것을 본다는 생각에 공연이 시작되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집중되는 마음이 내가 여행을 하면서 평소에 느끼고자 했던 것이었다. 

여행하면서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환경에 마음이 빼앗기는 그런 동심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플라밍고는 스페인의 독특한 민속춤으로 15세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들어온 집시의 춤과 노래가 전통적인 춤과 어울려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플라밍고는 집시들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면서 애환이 담은 슬픈 노래가 주를 이루지만 이것을 정열적으로 노래하고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도 화려한 발놀림과 손뼉 속에서도 어떤 애환을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느꼈고 춤추는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다. 

 

공연을 마치고 나온 거리는 인산인해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낮에 여유와 한가하게 본 도시가 너무 다르게 변해 있었다. 가게에는 사람이 앉을자리는 보이지 않았고 거리에 앉을 만한 공간은 사람들이 앉아 있어서, 서 있을 공간만 있는 것 같은 그런 거리였다.

도심에 있는 시장에 가도 사람이 앉을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고, 마드리드의 큰 광장에도 사람이 넘치고 있었다. 여행객도 많았고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는 것 같았다.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하러 중심가로 갔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으로 16~17세 스페인 황금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는 곳이다.

이 미술관은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었다. 느낌이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림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인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니까 오히려 그림들이 진품처럼 보였다. 

그래도 옷 입은 마하 그림과 옷 벗은 마하 그림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감시하는 직원의 눈을 피하기 어려워서 포기했다. 

 

저녁에 작은 음악회가 끝나고 조명이 화려한 마드리드의 왕궁을 보러 갔다.

야간에 구경 나온 것도 처음이다.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코로나 시국에도 이곳에는 여행객이 많이 온 것 같다. 옆에 붙어 있는 알무데나 대성당도 야간조명이 너무 아름답다. 

 

이번 마드리드는 공연도 보았고, 미술관도 가고, 음악회에서 노래도 듣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도 많이 들러보니까 마드리드에서 일주일 살기를 한 것 같다.

여기 마드리드는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지인의 안내로 가까운 산에 등산도 했다. 처음에 나무도 보이지 않고 돌만 있는 민둥산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보니까 우리나라의 춘양목에 해당하는 적송의 아름드리 군락지가 있었다.

그 적송은 곧게 자라는 것이 춘양목과 유사했다. 일단은 등산한 곳에 호수가 있고 공기는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는 청정지역이었다. 

 

몇 나라 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돌로 만든 건축물이나 성당들이 비슷한 느낌이고, 새로운 여행지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눈으로 찾아다니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신경 덜 쓰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동해안 해파랑길을 걷고 와서 유럽에서 트레킹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걷는 것이라는 생각과 순례길을 걷는 동안은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시간 내서 오는 사람도 많은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스페인이고 그곳으로 가서 걸으면 되는 것이다. 그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스페인은 순례길에 필요한 용품이 다 있었다. 침낭은 가장 가벼운 것으로 구입했고, 나머지 필요한 물건을 준비했다. 어떤 블로그를 보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필요한 준비물은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라고 하니까 최대한 줄일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입고 있는 옷과 노트북과 그에 딸린 충전기 외에는 모두 버릴 생각이다. 그렇게 마드리드에서 산티아고 길을 걸어갈 준비를 마쳤다.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 전날, 마드리드에서 동네 구경 나와 벤치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면서 벤치 주변에 있는 네 잎클로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네 잎클로버가 행운을 갖져다 줄 것 같아 소중히 수첩에 간직했다. 

이번 여행이 잘 끝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이 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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