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Jun 03. 2023

눈과 다리로만 여행한다

아테네에서 로마로 입국할 때 영문 백신 접종 서류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다른 것도 필요하다고 해서 집으로 연락해서 어렵게 확인 코드를 받아서 갔는데, 입국 게이트에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입국 스탬프도 찍지 않고 그냥 통과하니까 불안했다. 이번에도 공항에서 숙소까지 예약한 택시 기사가 이번에도 없었다. 기다리니까 해결되었다. 


구글 지도로 지리를 눈으로 익혀서 관광지로 출발했다. 일단은 움직이는 동선의 중심을 한 곳으로 잡아야 한다. 로마는 베네치아 광장으로 정하고 그곳을 찾아서 출발했다. 길이 직선 길이라 베네치아 광장은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베네치아 광장은 로마의 배꼽이라 불릴 정도로 중심부에 위치하고 모든 도로가 이곳에 만난다. 광장의 크기에 압도당할 정도이고 광장이 높아서 어느 곳에서도 광장 꼭대기에 있는 청동마차가 잘 보였다. 앞에 있는 성당도 오래된 성당으로 규모가 크지만, 베네치아 광장 건축물에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한참을 구경해도 놀라워서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따라갔다. 가는 곳마다 모두가 유적지이지만 아직 복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기둥과 건물들이 산발적으로 서 있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것 같다.

멀리 보이는 것이 콜로세움이어서 오늘 길은 제대로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로마에 도착한 실감이 난다. 콜로세움에 도착해서 그 규모와 크기가 베네치아 광장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2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콜로세움은 로마의 상징인 거대한 건축으로서 전쟁 포로인 검투사와 맹수의 전투 경기가 벌어진 원형경기장이다. 티켓은 현장에서 판매하지 않고 인터넷에서만 구입할 수 있기에 원형 경기장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위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개선문 위에 조각된 4명 신들은 승리의 즐기는 듯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콜로세움 옆에는 포로 로마노 문이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가는 것 같아서 줄을 섰다. 여기도 줄은 섰지만, 사전에 콜로세움과 같이 인터넷 예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섰던 줄에서 돌아오면서 인터넷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제 구경도 제대로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말쑥하게 차려입고 단정하게 가방을 든 아주머니가 와서는 티켓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순간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10유로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는 봐야 한다는 생각에 오케이 했다. 


포로 로마노 문을 지나서 있는 것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이 언덕 위에는 오래된 건물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고 높은 곳에 있어 멀리서도 보이는 유적지이다.

여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또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뒤에 가서 줄을 섰다. 

이곳에 진실의 입이 있는 곳이었다. 

진실의 입은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새긴 원형 석판으로 입에 손을 넣고 거짓을 말하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는 석판이다.


다음날도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는 길을 중심 잡아서 판테온을 찾아서 걸어갔다. 걸으면서 로마 시내를 구경하는 것이다. 

판테온도 그 크기가 엄청났다.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꼭대기를 쳐다보니까 자연적으로 입이 열린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의 신전”이란 뜻으로 웅장한 돔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돔 건축의 백미라고 불리고 중앙에 둥근 원은 “커다란 눈”이라고 이름하고 천정을 통해서 자연채광을 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트레비 분수는 많은 관광객으로 분수가 안 보일 정도이다. 트레비 분수는 동전을 “하나를 던지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되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세 개를 던지면 결혼의 꿈이 이루어진다"라고 알려진 분수이다. 그래서 젊은 연인들이 많은 것 같다. 여기에 던진 동전 중에 한국 동전도 발견했다. 한국에서도 자주 보지 못하는 일원 짜리 동전 세 개였다.

다음으로 간 스페인 광장은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로 널리 알려진 광장으로 사람이 광장을 덮고 있다. 이곳에 꽃은 특이하게 영산홍과 백 철쭉이 심어져 있었다. 광장도 좋았지만, 그 옆에 있는 마리아 상이 하늘 높이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여행에서 입과 귀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발과 눈으로 하니까 경제적일 수도 있겠지만, 반쪽짜리 여행이라 할 수도 있다.

말을 알아듣거나 전할 수도 없으니까 입과 귀는 온종일 열려 있으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주로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발로 움직여서 원하는 곳으로 가는 여행이다. 그래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다리와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젊은이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여행자와 즐겁게 어울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지도로 위치를 파악하고 부지런히 걸어서 길을 찾아 구경하고 다니니까 하루에 걷는 거리가 엄청나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야 몸이 피곤해서 저녁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잘 자고, 아침이면 다시 걸어서 여행하고 있다. 


이제 전체적인 도시의 위치가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시내 구경을 하다가 숙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되는 새로운 길로 갔다. 한참을 가면 내가 생각하는 길이 나올 것이라 상상했지만 나오지 않아 계속 찾다가 다른 방향으로 간 것이다. 로마 길이 직선으로 되어 있어서 쉽다고 생각하다가 길을 잃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테르미니 터미널을 가자고 했다. 숙소가 터미널 근처이기에 그곳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택시가 곧바로 가지 않고 돌아서 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리면서 거스름돈을 주지 않고 못 알아듣는 말로 내리라는 것이다. 

택시가 길을 돌아와서 비양심이라 생각했는데, 거스름돈까지 안 주려고 하니까 성질이 폭발한 것이다. 벽력같이 거스름돈 달라고 한국말로 소리쳤다. 적당히 넘어가려던 택시 기사가 당황해서 거스름돈을 신속히 내주는 것이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동안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했고, 큰소리 한번 못했는데, 큰소리 지르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기차로 이탈리아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온, 피렌체 중앙역에는 비가 내린다. 

그래도 거리에는 여행객이 많아 보였다. 일단 숙소를 구글맵으로 찾아갔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구글맵과 다른 앱으로 여행에 적응해 가고 있다. 우산을 쓰고 피렌체에 오면 누구나 찾는다는 베기오 다리로 갔다. 비 오는 날도 베기오 다리는 복잡하다. 특별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 오랫동안 그대로 있어서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 베기오 다리에서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전을 지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인 두오모 성당이 나온다. 

피렌체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 우피치 미술관이다.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라고 하며 메디치라는 명문가에서 기증했다는 미술관이다. 이름 있는 예술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눈에 익은 조각들도 많이 보인다. 여기도 인터넷으로 예매도 하지만, 현장에서도 티켓을 팔아서 비 오는 아침에 일찍 가서 줄을 섰다. 


피렌체 중앙시장에도 가죽제품과 소고기를 두툼하게 통째로 구워주는 곳이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시장 안을 돌다가 보니까 한 가게에 그런 메뉴판이 보였다. 

그 메뉴판만 보고 별생각 없이 주문했더니 고기가 나왔다. 고기가 너무 컸고 두툼했는데 겉은 익은 것 같았지만, 칼로 잘라보니까 속은 핏물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옆 테이블에는 그런 고기도 맛있게 먹는데, 난 도저히 먹지 못할 것 같아 번역기로 많이 익혀 달라고 해 다시 더 익혀서 먹었다. 그래도 핏기는 있었지만, 맛은 있었다. 

그다음 날도 비가 왔지만, 미켈란젤로 언덕을 올랐다.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오모 성당과 조탑, 베키오 궁전과 베키오 다리도 보이는 전망이 최고인 장소였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는 날인데, 오던 비가 그치고 있으면서 날씨가 화창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기차여행을 쉽게 할 수 있게 발달된 것 같다. 다시 베네치아 산타 마리아 역으로 가서 베네치아에서 물의 도시를 며칠 여행하다가 밀라노행 기차를 탔다. 


밀라노 역에서 내렸는데, 역의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다. 

기차에서 내려 한참을 가도 입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크다. 놀랍도록 큰 기차역을 가진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의 최대 도시이며, 도심의 인구는 로마 다음으로 많은 도시이다. 주변의 인구를 더하면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이면서 경제 중심지이다. 

금융이나 주식시장, 대기업 본사 그리고 공장들이 모두 밀라노에 있기에, 밀라노 사람들이 로마를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밀라노 중앙역 광장에 나오니까 역 광장도 너무 넓다. 이 중앙역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나 그리스의 궁정처럼 최대로 만들려고 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버리고 그 당시는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도 끝나고 스위스로 도망하다가 잡혀서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를 다시 중앙역을 만들면서 쫓겨난 사람들이 칼로 난도질하고 옷을 모두 벗겨서 중앙역 광장에 높이 매달아 놓고 저주했다고 한다. 같이 도망가던 무솔리니의 애인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원주민들에서 한이 맺힌 밀라노 중앙역이 지금은 유럽 최대의 역으로 밀라노 주민들은 엄청난 편리함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테네에서 외로움이 찾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