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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11. 2023

현재를 살자

어제는 알베르게를 찾는다고 레온 시내에서 많이 걸었다.

바로 옆에 있는 알베르게를 돌고 돌아서 찾아온 것이다. 많이 걸어서 피곤해 쉽게 잠이 들고 아침에도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까 평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일어나기 전에 언 듯 생각나는 건 순례길이 끝나면 어디로 여행 가야 하는 염려이다. 그 순간에 그런 걱정을 왜 하는지 하는 생각과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떠오른다. 그동안 걸으면서 현재를 살자는 것이 조금 훈련된 것 같기도 하다.


“현재를 즐겨라”것은 어렵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라는 것으로 정리하고 싶다. 

현재 슬픈 일은 슬퍼해야 하고, 힘든 일은 온 힘을 다해서 하는 일에 애를 써야 한다. 물론 기쁜 일이나 즐길 일이 있으면 즐기면 되지만, 오직 현재 일어나는 일에 열심히 하는 것이다.

현재를 즐기는 차원은 보통 사람의 차원이 아니고 인생을 깨달은 고수의 차원이다. 


아침에 레온 시내를 나오는데 아직 가로등이 있는 시내를 걸었다. 시내는 생각보다는 훨씬 커서 한참을 걸어도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걷는다.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었다. 큰 도시 순례길 표시는 잘 찾지도 못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잃어버리기 쉽다. 이번에도 이른 아침에 청소하는 아저씨들에게 “까미노”를 몇 번이나 물어보고 걸었다. 


레온을 지나서 두 번째 만난 마을은 지금 축제가 한창이다. 

축제 이름은 모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즐기는 것 같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갖가지 축제 복장을 하고서 즐기고 있다. 축제 구경을 하다가 보니까 기분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같이 들어가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고, 사실 내가 여기서 춤을 춘다고 해서 누가 흉볼 사람도 없고 여기 사람들은 이방인이 같이 춤을 추니까 더 신이 날 것이다. 여행하면서 가끔 점잖은 사람이 춤추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배낭을 멘 몇 사람들이 춤추는 축제장에 들어가 같이 춤을 추고 있다. 나이 든 중년의 순례객 들인데 배낭에는 브라질 국기가 붙어 있다. 오랫동안 가던 길을 잃은 것처럼 열심히 즐기더니, 노래 연주가 끝나자 환호를 하고서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축제장에서 다른 곳도 구경하다가 전통 축제 복장을 한 이곳 여인들과 사진을 두 번이나 찍었다. 이쁘다고 엄지로 표시하니까 흔쾌히 포즈를 취해 주었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목적과 모습이 여러 가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옛 믿음의 성인들이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이 길을 걷던 옛 순례객들을 생각하면서 성지순례와 본인들의 믿음을 돌아보는 순례객이 많을 것 같고, 또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나머지 남은 인생을 정리하려고 걷는 노인분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아픔을 가지고 이 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고 전환의 기회를 만들려고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순례길을 즐기기 위해서 걷는 사람들은 걷는 것과 주변의 환경과 알베르게에서 보내는 것이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좋은 트레킹 코스를 오직 걷기 위해서 오는 순례객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냥 유명한 길이니까 걷고서 인증서를 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길을 걷기 위해서 걷지만, 잊고 싶은 것도 있고 새로운 무엇을 찾기 위해서 걸으니까 복합적인 것 같다.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여러 가지 겹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다시 걷기 시작한 순례길은 오르막이 나오면서 정상 부근에는 어김없이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 있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니까 큰 도시가 보인다. 이곳은 “아스토르가” 라는 도시로 멀리 산도 보이고 넓은 벌판을 가진 살기 좋은 곳인 것 같다. 

도시 입구에 순례객이 물을 마시는 조형물이 인상 깊게 만들어져 있다. 조형물을 지나서 도시의 중심이 되는 성당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먼 거리이다. 


도심의 성당으로 가는 중에 가족 순례객을 만났다.

짐을 가득 실은 변형된 유모차에는 어린 딸이 타고 있고, 그 유모차는 아빠가 끌고, 엄마는 큰 배낭을 메고 두 남자아이를 데리고 걷는 가족 순례 행렬이다. 

가족 순례객들의 표정에는 한없는 즐거움과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순례에 나선 부부의 용기가 대단하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갖는 것이다. 이 가족처럼 움직이고 행동해야 무엇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스트르가 시내에 들어가면서 성당에 오르는 오르막길을 아빠는 힘들게 수례를 밀고 있고, 엄마는 수례 속에 아기에게 신경을 쓴다. 옆에 두 아들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스토르가 대성당은 두 개의 종탑으로 만들어져 있고 규모가 제법 큰 성당이다. 이 정도의 규모이면 큰 성당에 속하지만, 워낙 큰 성당을 봐서 그런지 놀라지는 않았다. 

다시 도시를 지나서 나오는 순례길에서 멀리 걸어가는 가족 순례객이 다시 보인다. 이번에는 유모차에 타고 있던 딸아이도 같이 걷고 있다. 아빠는 힘들어 보이고 엄마는 온 신경을 쓰면서 걷는 길이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가는 순례길은 느리지만, 행복해 보인다. 


간소 마을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쉬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구름이 산에 걸려서 먼 산이 구름 뒤에 보이는 풍경을 연출하고 오늘은 처음부터 계속 오르막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 보이면서 목장에서 소들이 이제 풀을 뜯으러 나오는 중이었다. 소 중에 우두머리 격인 소가 지나가는 이방인을 경계하듯이 혼자서 계속 주시하고 있는 장면이 목격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도로 중앙에 십자가가 맞이하고 있다. 십자가 마을을 지나서 다시 산길을 간다.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서 가는 것이 오늘 순례길의 포인트일 것 같다. 산길이면서 오르막이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순례객들은 기분 좋게 걸어간다. 

아침에는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순례객들은 서로 만나면 “부엔 까미노”를 크게 외친다. 서로 기분 좋은 오늘 순례길을 걷자는 의미일 것이다. 

산길을 한 시간 이상 걸어왔을 즈음에 거의 산 정상에 다다랐다. 멀리 보이는 정상에는 십자가 높이 서 있다.

그곳에 순례객들이 모여서 사진도 찍고 그 주변에 돌에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적어서 두고 오는 곳이었다. 나도 돌에 “현재를 살자”라고 써 돌무더기에 두고 왔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멀리 산이 보이고 산속에 구름이 갇혀 있기도 하고, 구름 위에 산이 보이기도 한다. 

위에서 아래를 보는 경치가 수려하고 아침의 맑은 기운과 같이 너무도 좋은 경관이다. 산 위에 또 다른 목장에는 어미 소와 송아지가 나란히 풀을 뜯고, 어미 소의 젖을 먹은 송아지도 있어서 아침 목장의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다. 

또 다른 정상을 향해 가다가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이곳의 풍경은 첫날 피레내 산맥을 넘어올 때를 연상시킬 정도로 먼 산들의 완만한 곡선이 아름답다. 

그 크고 수련한 먼 산들 사이에 홀로 떨어져 있는 마을이 보인다. 그 산속에 길이나 도로가 보이지 않고, 토지도 보이지 않지만, 산속에 집들은 여러 채 있다. 무슨 사연을 가진 마을인 것 같다. 


도로를 따라서 돌아서 내려간 첫 번째 마을이 모리나세카이다. 

이곳에 있는 슈퍼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오늘의 목적지인 폰페라다로 걷는다. 폰페라다는 멀리 산길을 걸을 때부터 보이던 도시이었다. 모리나세카 마을에서도 고개를 넘으니까 성당이 보이면서 도시가 보였지만, 곧바로 가지 않고 옆 마을로 돌아서 순례길이 나 있다. 이곳 여러 마을을 구경하면서 폰페라다 시내로 들어갔다. 오래된 성과 성당이 있고, 시내 중간에 강이 흐르는 큰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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