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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12. 2023

가보지 못한 길

걷고, 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걷는다

멋진 가로수길을 지나 다시 산길과 들길로 순례길은 이어진다. 이곳 순례길의 특징은 그렇게 많던 밀밭이 보이지 않고, 거의 포도밭이다. 작은 산을 온통 포도밭으로 만든 곳이 있을 정도로 끝없이 포도밭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본 마을 집들은 대개 한 곳에 모여 있었지만, 여기는 따로 떨어진 독립가옥이 자주 보인다. 그 독립가옥이 농가 주택인 경우도 있지만, 큰 저택도 눈에 들어온다. 


빌라프란카 마을 다리를 건너서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리 위 순례객 조각상이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멀리서도 높게 보이는 산속으로 들어가서 오르막은 나오고 고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고개는 나오지 않고 계곡으로 난 도로를 따라 순례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 순례길은 높은 산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서 계곡의 마을이 있고 그곳에 성당이 있었다. 이 계곡길은 옛 순례자들이 걷던 길일 것이다. 이 계곡을 통과해야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난다. 계속 따라오는 것이 힘 좋은 젊은이인 줄 알았는데 백발의 노인이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힘차게 앞을 지나간다. 헤밍웨이처럼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뒤에서 따라가면서 본 걷는 모습은 정말 바른 자세로 걷고 있다. 발은 거의 11자를 유지하고 발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다. 걸음걸이가 흐트러지지 않고 정확하고 일정하다. 걷는 것이 리듬을 타는 듯이 걷기 때문에 힘도 덜 드는 것 같다. 걸음이 정확하니까 속도도 빠르다. 계속 갈수록 거리는 벌어진다. 한참을 걷다가 보니까 노인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은 정도로 멀리 걸어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곡도 끝나가면서 멀리 산 정상이 보이는데, 그 산을 넘어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6시간을 걸었지만, 아직도 계곡길을 걷고 있고, 이제 계곡이 끝나고 산을 넘어야 하는 곳까지 왔다. 여기서부터 힘이 드는 구간이었다. 이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입에서 힘이 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르막길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표시가 난다. 그렇게 빨리 걷던 노인들도 걸음이 느려진다. 지나치는 순례객 중에 남미 노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힘든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합창을 하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힘이 든다고 인상 쓰는 것보다 낫지만, 아마도 힘이 들어서 힘든 것을 그냥 잊으려고 부르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 노래로 치면 “고향의 봄”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두 분의 표정으로 봐서는 오랜 친구가 순례길을 같이 온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앞서가는 순례객을 따라서 걷는다.

순례 행렬은 일정한 사이를 두고 목장으로 가는 소들처럼 길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짚고 가는 스틱도 일정한 리듬을 타는 음악처럼 들린다.

순례길에서 걸음이 빠른 순례객들이 앞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렬에서 처지지 않도록 모두가 최선으로 걷는다. 


다시 혼자 올라가는 순례길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 순례길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생각에 잠긴다. 일단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길은 고독한 길이고 인내해야 하는 길이다.

말없이 내실 있는 시간과 늘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그 길을 가자면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야 하고 늘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러 생각 속에 어떤 길을 선택하고 마음을 정리한다.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남을 세월을 내 멋에 사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타인의 간섭이나 관심 밖에 있는 진정한 자유인 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한다.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오르막이 심한 곳을 걷고 있다. 오르막으로 가는 길이 힘들어지니까 순례객들은 걸음이 느려진다. 조금 전에 추월해서 앞서가던 흰 수염의 노인도 멀리 힘들게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오르막에는 그 노인도 느려지면서 자주 쉬기 때문에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거의 나란히 걸어간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서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가니까 노인이 뒤 쳐져서 따라온다. 


이제까지 도로와 순례길이 같은 길이었다가 도로 길과 순례길이 나누어진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도 순례길과 만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느 길이 더 쉽고 좋은 길인지 아무도 모른다.

순례길은 계곡 쪽으로 가는데, 계곡이 깊어서 오르막이 심할 것 같기도 하고, 도로 길은 약한 오르막이지만 거리가 더 길 것 같다. 

어느 길로 갈까 망설이다가 도로 길로 가기로 선택했다. 


노인도 뒤에서 갈림길에 도착 중이고, 나는 벌써 도로 길을 십여 미터 올라가는 중이다. 

뒤에서 노인이 소리친다. “그 길이 아니다”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택한 길을 올라간다.

돌아보니까 노인도 망설이는 듯하더니 순례 표시가 있는 길을 간다.

처음에는 한참을 올라가도 도로 길은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다. 그러던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오르막이 되면서 힘들어진다. 지치고 힘들어 도로에 앉아서 쉬었다. 

이 길 선택이 옳았는지 생각과 후회도 하면서 노인이 간 길이 더 쉬운 길인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한참을 쉬니까 친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힘들어하면서 올라온다. 이 두 분도 나처럼 도로 길이 쉬울 것으로 판단하고 선택한 것일 것이다. 

한 친구는 힘들어서 도롯가에 쉬려고 주저앉았고, 다른 친구는 힘이 남았는지 친구를 남겨두고 혼자서 걸어 올라가고 있다. 

고갯길은 친구도 도울 수 없고 혼자 가야 하는 길이지만, 친구와 같이 쉬지 않고 혼자만 올라가는 것이다. 친구 사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가서 고개에서 만날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보지 못한 길이 더 좋았을 것 같고, 내가 살아온 길이 힘든 길이었다는 마음도 든다. 인생에서 가보지 못한 길에 미련이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 힘들게 걸을 때, 계곡 건너서 고개 마을이 보인다. 그 마을에 가지 않고 다른 길이 있어서 고개를 넘었으면 했지만, 그 마을로 길은 가고 있다. 


오르막은 긴 길이었다. 

두 친구 중에 뒤처진 친구는 아직도 저 아래에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앞서간 친구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고개 마을인 “라구나”에 도착하니까 마을 입구 바에서 사람들이 많다. 힘든 오르막 고개를 올라와서 한잔 하는 중이다. 

노인도 한편에 앉아서 큰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쉬고 있었다. 언제 도착했는지는 노인만 알뿐이다. 나를 보고 미소를 보낸다. 나도 따라서 웃는다.


노인의 길이 더 좋은 길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길은 힘든 길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선택하지 않아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그 길이 더 쉬운 길인지 어려운 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선택은 내가 한 것이고, 이미 지나온 길이 되었다. 


“라구나” 마을이 정상으로 생각했는데, 한참을 쉬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니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마지막 가장 높은 곳에는 성당 종탑이 자리하고 있다. 종탑을 보러 가기 전에 목에 꽃을 건 특이한 여인상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힘들게 올라오는 순례객들을 반기는 모습이다. 

이곳에서도 아래 보이는 경치는 맑은 하늘과 먼 산도 보이는 전망 좋은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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