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 냄새나는 순례길
순례길에서 자주 보는 것이 아침놀이다.
해뜨기 전에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게 하는 아름다운 아침놀을 보면서 숙소를 나선다. 높은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나와서 아래를 보고 걷는 길은 구름도 발아래로 보이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조심스러운 순례길이다.
첫 번째 마을 성당이 보인다. 이 마을 성당은 문이 잠겨져 있다. 주변에 민가도 몇 집 되지 않고 그중에서 빈집도 보인다. 아마도 신자가 없어서 성당을 닫은 것 같다.
이곳은 경사가 심하고 높은 곳이라서 밀이나 작물보다는 목장을 하는 마을처럼 보인다. 다시 한참을 올라가니까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바가 나온다. 이곳에는 벌써 순례객이 간식을 먹으면서 쉬고 있다.
다음은 황톳길이 나오더니 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마을이고, 성당도 집들도 제법 많은 마을이다. 이 마을을 지나 산 위의 직선 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 길은 순례길도 되지만 소들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주변에 경사진 목초지는 거의 목장이다. 그 목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소들도 순례길을 가는 것이다.
이 순례길을 지날 때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소들이 소똥을 길에 싸 놓았기 때문에 밟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소똥이 물똥이다. 아마 소가 독초를 먹었거나 다른 이유로 설사를 만나 물똥을 싼 것이다. 그 물똥 위에 금파리가 수없이 앉아서 알을 까는 중이다. 소똥 냄새와 금파리가 많아서 불쾌하지만 가야 하는 순례길이다.
실수로 소똥에 미끄러지는 날에는 오늘 순례길은 마감하고 가까운 알베르게에 가서 뒤처리나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이 길이 순례길인데 소가 다니는지, 소가 다니는 길을 순례길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순례길은 다시 내리막으로 가고 있다.
이곳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은 목축을 많이 하는 곳이라서 소똥 냄새가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덜 나는 시기이고 어떤 때는 소똥 밭을 걷는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은 순례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며칠째 소똥 냄새를 맡으면서 걷고 있다.
이곳에 초지와 옥수수밭이 많은 것은 거의 소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재배하는 것이고, 이곳 사람들이나 산티아고 순례객들은 소똥 냄새가 나는 것을 당연시하는 듯하다.
멀리 산 밑으로 구름이 앉아 있다. 구름이 아래로 보이는 높은 곳에 순례길이 있어서, 운해라는 말이 생각나는 곳이다. 순례길은 계속 내리막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이곳도 높은 곳이라 거의 목장이 자리하면서 어느 길이나 소똥이 있고 마른 것도 있고 금방 싸고 간 것도 있다. 또 계속 소똥 냄새가 나니까 코가 마비되어 나중에는 냄새가 덜 심하다.
힘들게 올라가니까 오르막에는 두 사람이 쉬고 있었다.
두 분의 나이 차이도 있고 서로 말하는 분위기가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느낌이 온다. 그래서 젊은이에게 "할아버지이냐"라고 물었다. 예상대로 조손 간이었다.
이들은 순례길을 같이 걸으면서 알베르게를 출발해서 손자는 계속 걷고, 할아버지는 절반 정도는 택시를 타고 와서 손자와 같이 걷는다고 한다.
이들과 한참을 같이 걸어가니까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하면서 주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무슨 말인지 열심히 해주는 것 같다. 살아온 인생을 들려주는 느낌이다.
다시 도로를 따라 난 길을 가다가 멀리 보이는 도시가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보여 오늘 묵을 갈 “사리아” 인 것 같다.
그렇게 보여도 아직 갈 길은 한참이다. 숲길을 지나면서 목장도 나오고 다시 도로를 따라서 계속 순례길은 이어진다. “사리아”가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소똥 냄새가 난다.
“사리아”에 도착해서는 늘 하듯이 성당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간다. 그런데 이 도시는 온통 알베르게이다. 이 도시를 알베르게 도시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뿐만 아니라 이름 있는 길이 여기서 만난다고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여기서부터 출발하면 100Km 이상 걸었기 때문에, 순례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도시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아침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앞서가는 노인의 헤드 랜턴을 따라서 간다.
멀리 돌집이 보이면서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다. 보통날이면 이맘때 벌써 날이 밝았을 것 같은데, 오늘은 구름이 가려서 아직도 밝지 않다. 그래도 순례객들은 열심히 걷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에 밭들은 초지를 조성한 것 같고, 목장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것도 보이다. 이곳 순례길은 거의 풀밭이어서 다른 작물은 보이지 않고 풀과 간간이 소들만 보인다.
마을을 지나서 오래된 나무가 있는 밭에도 소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사리아”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소똥 냄새가 나더니 들판을 지날 때도 냄새가 났지만, 마을을 지날 때는 심하게 난다. 순례길에 소똥이 늘 있는 것이고,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지 않아서 냄새가 더 나는 것 같다. 오늘도 소똥 때문에 발밑을 신경 쓰면서 걷는다.
오늘 순례길은 은근히 오르막이 나오더니 다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 길이다. 길이 걷기에 피곤한 길이며 이런 식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짜증 나는 길이다.
지금 순례길의 분위기가 “날씨는 흐리고 소똥 냄새가 계속 나면서 은근히 힘들게 하는 오르막”이 순례객들에게 세상 사는 것이 힘들고, 소똥 냄새처럼 싫은 일들이 많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가리비를 새긴 표지석이 나오는데, 산티아고가 106.858Km 남았다는 표시가 보인다. 얼마 가지 않으면 100Km 표지석이 나올 것 같다.
계속되는 오르막길과 목장의 소똥 냄새가 나지만 순례객들은 말없이 걷고 있다.
이런 산지에 목장이 아니면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위치이면서 다른 작물을 할 수 없으니까 이곳 사람들도 먹고살기 위해서 목축을 하는 것이다.
순례객들은 스페인의 두메산골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순례길이 계속되니까 지루했던 밀밭 순례길이 그리워진다. 기분도 날씨처럼 흐리고 성당이 있는 마을 바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다시 걷다가 보니까 100Km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는 순례객들은 거의 걸음을 멈추고 서로 사진을 찍어 준다.
지금까지 700Km를 걸어온 것이다. 오늘 순례길이 끝나면 산티아고 성당까지는 이제 4일이 남았다. 거의 끝부분에 왔는데 아직 무슨 느낌이 오는 것은 없다. 다리는 그렇게 아프지 않지만,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물집이 생겨서 없어지고 오른쪽 어깨가 배낭 무게로 계속 아프다. 어깨는 그래도 견딜만해서 배낭을 메고 걷는 데는 지장이 없다. 사실 배낭만 없다면 걷기가 수월하고 더 잘 걸을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배낭을 구간별로 택배로 보내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야 이 순례길은 모양새도 나고, 힘든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배낭을 메고 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
별로 상쾌하지 않은 길을 가면서 클로버가 눈에 들어온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어디 가나 자주 찾는 네 잎클로버를 찾아본다. 이 먼 산티아고 순례길에 와서도 네 잎클로버를 찾으려는 생각은 평소 습관일 수도 있다.
네 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 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행운을 찾아서 걷기보다는 행복을 찾아서 걷는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런데 산티아고 길에서도 기어이 네 잎클로버를 두 개는 찾았다. 찾은 클로버를 그냥 두고 다시 걷는다. 흔한 세 잎의 클로버처럼 행복을 찾아서 걷기 때문이다.
그 돌담길 끝에 있는 작은 집은 돌벽과 돌 지붕으로 돌로 지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계속 내려가면서 목장 초지는 계속되고 목장의 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한가로운 목장 풍경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냄새가 그런 마음을 들지 않게 하고 있다.
들판 초지의 돌담이 멋있는 길을 걸어가면서 멀리 보이는 곳이 오늘 일박할 “포르토마린”인 것 같다.
“포르토마린”이 건너 보이는 곳에 자유의 종이 달려 있다. 그 종을 지나가면서 내가 한번치고 지나가니까, 뒤에 오는 사람들도 따라서 모두 종을 치고 지나간다. 오랫동안 종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린다.
건너는 다리는 너무 높아서 걸어가면서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고, 마을 입구에 예수님 상이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마을에 도착해 보니 넓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