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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05. 2023

봄날을 생각하면서


창밖에 바람 부는 소리가 듣기만 해도 한기가 느낀다. 

방 안으로 들어올 때 부는 바람 끝이 차가운 눈발같이 살을 스친다. 방안은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아늑한 느낌이다. 그래도 방안은 아직 보일러를 넣지 않아 따뜻한 온기는 없다. 올해 들어 처음 찾아온 한파라 체감은 더 춥다. 내가 사는 시골은 도시보다 몇 도 낮은 곳이다. 이제부터 추워지면 긴 겨울이 오래 계속될 것 같은 시기이다.

올해는 집에 외풍이 너무 심해서 내부 거실과 방에 단열공사를 해서 덜 추울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긴 겨울을 준비했지만, 그래도 추운 겨울날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봄은 아직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지자체에서 환갑이 지난 사람들에게 의료비 지원이 있어서 그것으로 앞으로 다가올 인생 겨울을 대비해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 

평소에 잊고 있던 병이 발견되었다. 십여 년 전에 발견되었지만, 진행되지 않거나 현상 유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좋은 쪽으로 내 병을 믿다가 잊고 지낸 것이다. 그래도 잊고 지낸 세월이 너무 길었다. 이제 알아차렸을 때는 믿고 싶은 대로 되지 않고, 그동안 병을 심하게 키우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의 좋지 않은 진단은 마음이 무겁고 겨울 추위처럼 몸에 한기를 느끼게 한다. 의욕 없이 여기까지도 잘 살았다고 마감하고 싶은 기분이다. 의사의 처분에 따르겠지만, 부정적인 마음이 앞선다. 

 

계절도 겨울이 와서 한파가 찾아왔지만, 인생에서도 겨울을 만난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은 겹쳐서 오는지 이제 가족들도 모두 자기 이념에 따라서 각자도생 하면서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여기서도 잘 될 것이라는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우세하다. 이번에는 여러 경우의 수가 생각나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과 봄날을 기다리는 생각이 엉켜있다.

겨울을 만나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아가지만, 봄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드니까 봄날이 더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날들이 떠오른다.

걷고 싶은 곳을 걸으면서 혼자서 여러 생각으로 여러 날을 보낸 일이나 사전 지식 없이 낯선 타국으로 용감하게 여행 다니던 일이 먼저 생각난다. 그때는 외롭고 길 찾기에 바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다. 해파랑길은 외롭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무작정 걸었던 길이었지만, 그때부터 걷는 것이 나에게 많은 위로를 준 것 같다. 그 길을 가장 추운 설 무렵에 걸으면서 눈물도 흘리고 괴로워하면서 세상살이가 무섭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는 그렇게 무서운 세상을 조심해서 살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그리고 떠난 유럽여행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았지만, 늘 외로움이 같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용감하면서도 호기심이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산티아고 길은 유럽여행에서 외롭고 답답함을 달래려고 시작한 것이다. 그 여행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대화보다 걷기였기에 그곳을 찾아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많이 고뇌하고 나를 돌아본 시간이지만 그래도 지루하고 긴 걷기였다고 그때는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이 다시 히말라야 트레킹도 다녀오고, 또 다른 여러 길도 여러 몇 달을 걸었다. 

유럽도 다시 가게 되었을 때는 여행의 묘미를 조금을 느낀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이 즐거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나의 봄날이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날씨는 추웠지만, 강릉의 바다를 지날 때 멀리 지평선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마음의 희열을 느꼈고, 튀르키에의 안딸리아의 해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해변 모래밭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편안함과 산티아고의 길에서 끝없이 밀밭을 보면서 걸을 때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했었다.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고 걷던 길, 유럽의 유명한 3대 미봉에 올라간 일들은 아직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여행으로 나의 봄날이었다. 

우리는 늘 좋은 날이나 행복한 봄날일 때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지나면 알아차린다. 기억하고 싶은 봄날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뿐만 아니라 더 오랜 과거에도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봄날이 내게 왔다가 간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날을 봄날이라고 여기고 다시 그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인생에서 50대 이전에는 본인이 하고자 한 일을 했으면 성공이고, 60대에는 자식이 잘 되면 성공이라고 한다. 그리고 70대 이후는 자신이 건강하면 성공했다고 이야기한다. 

모두를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마음은 그중에 하나라도 그것에 유사하면 족한 줄 알고 잘 살았다고 자위하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어쩌면 내려놓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 같다. 

아직은 열심히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으니까 봄날을 기다려 볼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봄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우선 그냥 여기까지 열심히 살았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봄이 오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만족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야 마음의 안정을 얻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바라는 마음도 없지만, 누구를 걱정할 여력도 없다.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지 않는다면 아쉬움도 그리움도 가벼운 일이고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부터는 인간관계는 여기까지 정리하고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제 더 편안함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편안함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의 삶을 보거나 비교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주목하는 것도, 주목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용히 하다가 마치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도 봄날이 올 것이라 여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은 버릴 수 없다. 나도 평범한 인간이니까 그 마음이 나의 본성일 것이다. 

봄날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격려와 용기를 주면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는 지인이 있다. 

일상적으로 나에게 스스로 격려하고 희망의 언어를 반복해서 몸이 그렇게 바라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라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상에서 별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즉 자기 최면으로 봄날을 기다리고 염원하라는 것이다. 

“내 몸아 그동안 신경 쓰지 않고 살아서 미안하다. 용서해라. 앞으로는 열심히 보살피면서 살아갈게, 그리니 우리 다시 용감하게 잘 살아 보자” 이런 식으로 몸에 긍정적인 에너지 넣어서 희망의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본심이다.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오리라는 마음도 갖고 있다. 그래도 믿고 싶은 대로 살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나의 삶이었다. 

지금까지는 믿고 싶은 대로 살았다면, 다가올 일은 내가 알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고, 그렇지만 희망은 갖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희망도 많이 생각하지 말고 최소한으로 잡아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어진 그것을 의미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더 바라는 것 없이 그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많이 가지던 조금 덜 가지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봄날 #희망 #건강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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