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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04. 2023

노인들의 자가용 경운기



간밤에 이슬 맞고 마당에 서 있는 경운기 운전 손잡이를 잡고서 시동 버튼을 누른다. 

경운기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면서 시동이 걸리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당에서 골목으로 경운기를 이동시키려고 후진 기어를 넣는다. 후진하는 경운기 올라탄 황 노인은 능숙하면서 아주 느리게 뒤쪽으로 이동한다. 경운기가 뒤로 가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서 뒤를 보면서 골목길로 잘 돌려지도록 운전하기에 고개가 아프다. 천천히 뒤로 간 경운기는 이제 골목길에서 밭으로 가야 할 방향으로 자리 잡았고, 다시 앞으로 가는 기어를 넣고서 할머니가 집에서 나오기를 기다린다. 


경운기 소리도 요란하지만, 더 큰 소리로 할머니를 빨리 나오라고 황 노인은 소리친다. 할머니는 아직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도 황 노인은 시동을 건 경운기에 타고서 묵묵히 기다린다. 집안 정리하고 한참 뒤에 나온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밭에 가는 신발부터 찾아 신고, 마실 물과 자루를 들고 수건을 쓰고 오면서 나온다. 그래도 늦었다고 역정 낼까 봐 황 노인의 눈치를 보면서 온다.

할머니는 경운기에 들고 온 물건부터 넣고 두 손으로 경운기 뒤 칸에 올라서 경운기를 꼭 잡는다. 그때 서야 황 노인은 출발 기어를 넣고 밭으로 출발한다. 


경운기를 타고 밭에 도착하면 밭 가장자리에 경운기를 세워 두고 두 노부부는 일을 시작한다. 평생 하던 일이라 익숙하다. 점심때가 되면 다시 노부부는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다시 오후에도 타고 나오는 것도 경운기이다. 일 철에는 두 노인들은 늘 경운기와 같이 다니는 것 같다. 


이런 경운기가 지난해는 가을걷이를 하다가 황 노인이 콩을 실으러 굴곡진 밭에서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 순간 경사가 심한 곳에서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운전하는 사람은 떨어졌지만, 경운기 시동은 그대로 걸린 상태에서 방향을 잃고 계속 가는 것이다. 황 노인이 일어나기 전에 경운기는 계속 움직여 경운기 밑에 깔리게 되었다. 할머니도 경운기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손으로 밀어 보았지만 움직이는 경운기를 세우지 못했다. 경운기는 굴곡진 밭에 누워있는 노인의 가슴 위를 지나갔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겨우 옆으로 굴러서 짐칸이 지나는 것은 면한 것이다. 몸이 둔해지니까 노인은 누워서 경운기 앞바퀴가 가슴을 넘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어떻게 하지 못했다. 

황 노인은 갈비뼈가 몇 개가 부러져 병원에 가을부터 겨우내 입원해 있었다. 농사철 내내 그렇게 노인들의 발이 되는 경운기가 때로는 무서운 흉기로 변해서 다치게도 하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갈비뼈 치료를 하려고 몇 달을 누워있다가 퇴원해서 황 노인은 다치게 한 그 경운기를 다시 볼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떨어져 팔아 치웠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다시 밭에 가기 위해서는 새 경운기를 샀다. 

새 경운기는 사고 나지 않고 잘 굴러가라고 북어를 사서 실로 경운기에 매달고, 막걸리를 한잔 따르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두 노인은 정성으로 고사를 지냈다. 이렇게 경운기 없이는 일하러 가기 힘드니까 차 운전 못하는 농부 노인들에게는 필수품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멀리 있는 밭은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어 경운기를 타고 가야 하니까 미워도 노인들에게는 경운가 발이고 차인 것이다. 


오늘도 조용한 아침나절에 경운기가 탈탈거리리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오는 소리에 방향은 아직 잘 모르지만, 소리는 가까워지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다. 조금 더 지나 소리가 더 선명해지니까 아래쪽에서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마을에서 제일 연로한 노인인 기영 씨가 모는 경운기일 것 같다. 멀지 않아 지나가는 경운기는 기 양노인 부부가 밭으로 가는 중이다. 이어서 또 가까이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도 같은 방향에서 오니까 석포 노인 경운기 같은 느낌이다. 더 가까이 소리가 들리고 지나가는 경운기에 석포 노인 부부가 타고 있다. 이 석포 노인 경운기는 뒤 칸에 의자를 고정시켜 놓아서 할머니가 앉아서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번에는 위쪽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리고 지나가는 황 노인 부부가 이너머에 있는 밭으로 일을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다정하게 노부부들이 일하러 아침나절에 경운기를 타고 일을 나간다. 


경운기는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청년들의 빠른 걸음보다는 빠르고 포장된 도로가 굴곡이 없어서 편안하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갈 수 있으니까 노인들에게는 자가용 같다. 차보다 속도가 느려서 농촌 길에서 사고의 위험은 있지만, 멀리서도 보이니까 조금만 신경 쓰면 추월하기 어렵지 않다. 달리는 차에게 신경 쓰이는 경운기이지만, 노인들에게는 농촌에서 더 좋은 자가용은 없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경운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못들에서 황 노인 부부가 탄 경운기가 농노를 지나서 큰길로 나오고, 멀리 한내들에서 석포 노인 부부 경운기가 소리를 내면 큰길을 따라 나온다. 뒤를 이어서 옆에서 같이 일하던 김 노인 부부도 석포 노인 부부 경운기가 따라 나온다. 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보면 마을 최고령 김 노인 부부의 경운기도 아래들에서 큰길로 들어서면 노부부들이 탄 경운기들이 탈탈거리면 집으로 돌아간다. 

노인들의 경운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병하듯이 천천히 경운기 음을 내면서 가는 저녁 들판도 보기 좋은 풍광이다. 


경운기들이 마을에 들어서면 해가 앞산을 넘어가고, 땅거미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온다. 경운기들은 아침에 나온 집으로 들어간다. 

할아버지가 뒤에는 할머니를 태우고 탈탈거리며 집으로 가는 경운기의 모습은 저물러 가는 노인들의 삶과 닮아있다. 황혼의 저녁 무렵에 편안한 안식처로 들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지나고 편안히 쉴 곳으로 들어가는 노인들의 원숙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제 경운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저녁이 찾아오고, 내일에 또 노인들이 탄 경운기가 들로 나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뒤에는 할머니를 태우고 탈탈거리며 지나가는 농사철의 모습이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다.

이렇게 경운기와 농사하면서 오래 같이 살아온 노부부는 해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본인들의 삶이 행복하고 좋은 황혼의 시절이라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살아가는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 객지에 나간 자식들이 명절 때 만나면 농사한 것을 주는 것이 노부부들의 보람이기도 하다. 


운전 못하는 노인들이 이용하는 것이 경운기다. 나이가 들어도 운전을 하면 차를 몰고 다닌다. 농촌에서 가장 오래 산 노인들에게 이렇게 친숙한 경운기도 이 노인들이 계시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오랫동안 정겹게 들어온 경운기 소리도 이제 멀지 않아서 추억 속에 탈탈거리는 소리로 남을 것 같다. 

경운기에 앞에 탄 할아버지와 뒤에 앉아서 가는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이 있는 시골 마을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경운기 #자가용 #노부부 #농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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