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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03. 2023

나는 시내버스 기사이다 5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 부는 이른 아침이지만, 시내버스 기사는 정해진 시골길을 가고 있다.

오늘은 읍에서 출발한 버스가 작은 면 가장 끝에 있는 당리까지 가서 그 면을 가로로 내려오면서 입암면을 돌아 읍내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가 오늘 하루 시작이다. 

출발부터 빈 버스는 가곡리와 두 동네를 더 지나도 사람이 타지 않는다. 이렇게 빈 버스가 운행되는 것이 낯설지는 않다. 그래도 장날이면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승객이 타지만, 보통은 한두 명이 보통이고, 빈차로 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제 들녘은 거의 수확이 끝나서 황량하고, 아침이라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 마을을 지날 때는 간혹 사람이 보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사람보다 지나가는 차들이 더 많이 보인다. 

 

가곡리에서 산 고개를 넘어서 당리에 도착했지만, 정류소에서는 기다리는 승객은 없다. 당리도 예전에는 오일장이 섰던 곳이지만, 지금 아침 날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곳이 되었다. 초겨울 아침에 노인들이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지만, 주민들이 많이 줄어서 조용한 동네가 되었다. 이 당리는 그래도 큰 마을이라서 잠시 멈추어서 운행시간을 조정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정차해 버스 안에서 동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예전에 같이 자란 동네 몇 살 더 먹은 형이 이곳으로 이사 와서 정미소를 운영하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남은 사람들에서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가신 곳이다. 그 마음 좋은 형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늘 같이 만나 한잔할 때면 술을 사양하지 않고 드시다가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젊은 나이에 간 사람이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 먼저 떠오르니까 아쉬움이 남는 삶을 살다 간 형이다. 

 

다시 버스는 출발하지만 아무도 타지 않은 기사 홀로 버스이다. 기포리를 지나서 큰 동네인 정족리에서는 손님이 탈것으로 생각했지만, 타는 손님은 없다. 이제 아침도 제법 시간이 지나서 노인들도 활동할 시간인데 승객은 없다. 정족리를 지나면 청기리가 나온다. 이곳이 면 소재지이다. 

면사무소 앞이 보이는 곳까지 버스가 가까이 가니까 정류장이 보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정류장 문은 닫혀 있다. 여기서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면 소재지 정류장에 버스를 정차시켰다. 

마을 앞 정자를 바라보는데, 골목에서 낯익은 사람이 버스 타려고 빠른 걸음으로 나온다. 오늘 첫 손님이 될 것 같다. 

 

첫 손님은 이곳에 사는 황 군이다. 늘 황 군이라 부르지만, 나이는 환갑이 지난 지 수년이 되는 어른이다. 아직도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고, 아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도 없는 총각일 가능성이 많다. 

의사소통은 원활하지만 약간 지능이 부족해서 늘 혼자서 지내지만, 객지에 나갔다고 돌아오면 고향에 변하지 않는 것은 황 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황 군은 늘 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가족도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고, 나라에서 주는 생계지원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생계지원금도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기에는 많지는 않지만, 먹고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간혹 고기도 사 먹기도 하고 읍내 장날에는 가끔 고등어를 사다가 구워 먹기도 한다. 황 군은 아직 신체 건강해서 다른 곳에 취직해서 먹고살 수 있지만, 소득이 생기면 생계지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냥 놀고먹고사는 것이다. 

혼자 사니까 동네에서 김치나 된장은 늘 얻어먹어도 남을 정도이고, 지원금으로 먹고살기는 부족하지 않아서 다음 달 지원금이 나올 때까지 돈이 남을 때가 많다. 하루 일과는 마을 나가서 이 집 저 집 다니는 것이고 그러다가 해가 빠지면 집으로 돌아와서 쉬면 되기에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 황 군은 혼자 사는 외로움도 못 느끼고 사는 것 같다.

 

그래도 매일 마을에 놀기에는 심심한 일이고, 시내버스 타고 군내를 돌아다니는 일이 황 군에게는 여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 걱정 없이 달리는 차를 타고 기분도 내고, 속까지 후련한 마음을 드는 것은 날마다 즐거운 인생이다. 남들은 조금 모자라는 황 군을 안쓰럽게 볼 수도 있지만, 시내버스 타고 다니는 황 군의 마음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시내버스는 1300원만 내면 종점까지 탈 수 있기에 한적한 시내버스에서 버스 기사의 말벗도 되고 차창으로 구경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 되기에 황군 입장에서는 날마다 시내버스 관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내버스 기사가 버스 문을 열어 주니까 황 군이 요금통에 돈을 넣는다. 확인할 것도 없이 1300원이다. 이 요금으로 읍내까지 가서 읍내 정류장에 잠시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시내버스 관광코스이다. 

황 군이 버스에 올라오자 버스 기사는 아침 식사를 했는지 묻지만, 어디까지 가는지 묻지 않는다. 종점까지 가는 것은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제는 어디 갔었는지는 물어본다. 

시내버스 기사 중에 황 군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엇이 즐거운지 늘 웃으면서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목소리가 크지만, 어제 타고 간 버스 기사 이야기와 주변 이야기를 아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고 기사와 같이 대화가 되니까 시내버스 기사들이 좋아한다. 

 

시내버스 기사는 며칠 전에 읍내 정류소에서 봤는데 “왜 아는 체 안 했느냐"라고 물으니까 황 군은 자기는 못 받다고 이야기한다. 다음 이야기는 오늘 어디 갈 것인가를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한다. 대체로 읍내 정류소에 내려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도 자주 타는 노인 중에 얼굴이 익은 사람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잘 알지만, 그래도 황 군처럼 자주 보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버스 기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빈 버스에서 황 군이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황 군은 버스를 오래 타고 다니다 보니까 친한 버스기사들의 운행시간도 아는 경우가 많다. 기사 중에 보이지 않는 기사를 황 군에게 물으면 비번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기사도 있다. 황 군은 그렇게 버스 기사에게는 반가운 손님이고 부담 없는 손님이다. 늘 요금도 정확하게 내고 오늘처럼 외로운 빈 버스가 운행되지 않게 타주는 시내버스 최고의 단골 고객이다. 

 

시내버스는 입암면 소재지를 조금 지나서 무거운 짐을 들고 할머니가 올라온다. 

할머니는 짐을 겨우 버스 문 첫 계단에 올려놓는다. 이때 황 군이 일어나 짐부터 들어서 올려놓고, 할머니 손을 잡고 의자에 앉힌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 기사는 할머니와 황 군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미소 띤 얼굴로 출발을 한다. 황 군은 늘 하던 일인 것처럼 능숙하게 문 가까운 곳에 할머니를 앉히고 기사 옆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조금 지능이 모자라지만,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도 않고 눈치는 있어서 힘든 어른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니까 모두 황 군을 좋아한다. 시내버스는 읍내로 가는 여러 동네를 지나서 읍내 정류장에 도착했다. 운행을 종료한 버스 기사는 이제 정류소에서 잠시 쉬다가 다음 코스로 운행할 예정이다. 오늘 첫 운행은 황 군을 포함해서 두 사람을 태운 것이다. 큰 시내버스 2시간여 운행에 2600원 수익이다.

 

읍내 정류장에서 내린 버스 기사와 황 군은 정류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 정류장에는 모자를 깊게 쓴 나이 지긋한 황군 또래의 남자가 앉아 있다. 버스 기사는 모자 쓴 남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 남자도 오래 알던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한다. 

황 군은 모자 쓴 남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모자 쓴 남자도 황 군을 아는 체하지 않는다. 아마도 서로가 늘 보는 사이인 것 같은데, 서로 외면하는 사이인 것 같다. 

모자 쓴 남자는 석포면에서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이다. 이 남자도 생계지원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 시내버스 타고 다니는 것이 낙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 남자는 머리 수술을 해서 뇌를 다쳐서 보통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시내버스 기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낙이다. 뇌 수술하고 다 완치가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수술비가 2조 5천억이 들었다고 시내버스 기사들에게 하소연하는 남자이다. 

이 남자도 오늘 아침에 시내버스를 타고 석포에서 읍내 정류장까지 구경 나온 것이다. 군에서 시내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두 단골 고객이 읍내 정류장에서 만난 것이다. 두 고객은 경쟁의식인지, 언제부터인가 서로 만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시내버스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 노선을 달리해서 다니면서 시내버스 여행을 즐기는 군내의 두 명의 여행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시내버스보다 더 좋은 것은 없고, 버스 요금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곳이다. 이들에게 시내버스는 더울 때는 시원해서 좋고, 추울 때는 따듯해서 좋은 곳으로 바깥으로 지나는 풍경은 세상을 구경하고 지나는 승객들을 바라보면서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로는 오랜만에 만나는 어떤 버스 기사들은 자기 버스를 한동안 안 탔다고 투정도 해주고, 늘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가사들이 있는 곳이 시내버스이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버스에 승객이 절반은 차지만, 보통은 빈 버스이거나 한두 명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시내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오는 것이다. 승객들이 차비로는 적자이지만, 군에서 지원해 주니까 운행되는 것이다. 농촌은 정류소 운영도 지원될 정도로 지자체에서 시내버스 운행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이 너무 많으니까 인근 군에서는 군민에게 운임을 받지 않고 무료로 운행되는 곳이 있을 정도이다. 농촌 시골 버스의 차비는 버스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어김없이 시간만 되면 오는 시내버스는 차 없는 노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버스이고, 이제는 가까운 경로당에 갈 때에도 노인들은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걷지 못하니까 시내버스에 올라타면 경로당 앞까지 태워주는 것도 시내버스이다. 

 

황 군은 읍내 정류장에서 머물다가 다른 시내버스를 타고 또 다른 곳으로 구경 나갈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정류장 시간표를 보고 찾아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거나,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가 있으면 타고 갈 생각이다. 그때 아는 시내버스 기사가 자기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따라가는 것이다. 가면서 버스 타고 갔던 이야기도 하고, 다른 기사 이야기도 하면서 황 군의 하루는 그렇게 가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달리는 세상을 구경하면서 자주 보는 친근한 기사와 같이 여행하는 기분으로 늘 즐거운 황 군이다. 황 군과 석포의 남자는 시내버스를 제일 많이 이용하는 손님이고 만족도 가장 높은 고객들이다. 

읍내 정류소에 있던 석포에서 온 남자는 벌써 다른 버스를 타고 떠났고, 황 군은 아직도 정류소에 머물러 있다. 오늘은 자기에게 더 살갑게 해주는 버스 기사가 운행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읍내 정류소 노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대합실이다. 

 

 

 

 #시내버스  #운전기사  # 읍내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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