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을 때가 밀이 푸른빛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시절이었다.
하늘과 다은 지평선까지 온통 밀밭으로, 푸른색 위에 파란색 두 가지뿐이었다. 푸른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곧게 벋은 길을 순례자들은 혼자서 고독하게 걸어가기도 하고,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담소를 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걷다가 보면 혼자서 걷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긴 직선 순례길을 걸어가면서 앞서가는 순례자를 보고 걷지만, 뒤를 돌아보면 열심히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오는 순례자도 보인다.
너무 지루한 길이어서 걷고 있다는 생각 외에는 무심히 걸을 때가 많고, 낯선 길이라 어떤 풍광이 나올지 예측도 되지 않았다.
밀밭 길을 많이 걸었지만, 도로 옆길을 걸을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도로와 순례길 사이에 나무들이 가려주는 경우가 많다. 도로에 달리는 차는 가려줄 수 있지만, 소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소음으로 지루한 길이 된다.
순례길에서 중반을 넘어서 지루한 도로 길을 만날 때이다. 소음으로 유쾌하지 않은 길이지만, 지나면서 코가 기억하는 익숙한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많이 맡아 본 냄새이다.
그렇게 향기롭지는 않지만, 진한 냄새가 고향에 흔히 봄철에 맞아본 향기이다. 쥐똥나무 꽃향기이다.
이 쥐똥나무는 향기라고 말하기는 너무 냄새에 진한 향기이다. 쥐똥나무 꽃은 무성한 잎 사이에서 그렇게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흰 쌀알처럼 송이로 핀다. 이 나무 꽃이 필 무렵이면 아카시아꽃은 지고 벌들이 이 나무에 꿀을 찾아 날아든다. 아카시아꽃향기는 향긋하기도 하지만, 이 나무는 그런 향기와 다르게 진해서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멀리 낯선 곳에서 익숙한 향기가 반갑기만 하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쥐똥나무가 보인다. 이곳의 쥐똥나무는 키가 상당히 크다. 나뭇잎을 보니까 쥐똥나무가 틀림이 없고, 키가 고향의 쥐똥나무보다 배가 되는 것 같다.
반가워서 가까이가 가지를 가져다가 코로 향기를 맡는다. 역시 오래 맞기 싫은 진한 향기가 난다. 그래도 그렇게 반갑고 진한 냄새조차도 싫지는 않다.
쥐똥나무의 생김새는 가지가 많고 키 작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 나무의 열매가 까만 것이 쥐똥처럼 생겼다는데,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 같다. 아직은 꽃이 피었지만, 멀지 않아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본 쥐똥나무도 쥐똥처럼 생긴 열매가 달릴 것이다.
시골에서 쥐똥나무는 집이나 밭의 울타리로 많이 심었다. 가지가 많고 위로 크지 않고 옆으로 크기 때문에 울타리로 적격이다. 가지가 많아서 헤집고 지나가기 힘들고, 키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넘어가기도 힘들어서 경계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쥐똥나무에 참새들도 많이 와서 까만 열매를 따 먹기도 했다.
어릴 때 Y자 나무에 고무줄을 달아서 새총을 많이 만들었다.
그 새총으로 작은 돌을 넣어서 쏘면 멀리 가고 속도도 빨랐다. 그 새총을 만들자면 Y자 나무를 구해야 하는데, 그런 나무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새끼손가락 크기로 양쪽의 모양이 비슷한 Y자처럼 생긴 나뭇가지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 것이 많은 나무가 쥐똥나무이다. 쥐똥나무는 가지가 많고 제멋대로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름을 모를 때는 새 총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은 쥐똥나무 울타리를 손으로 헤치면서 Y자처럼 생긴 나무를 찾아다닌다. 잘 생긴 새총 나무를 찾으러, 동네 쥐똥나무가 있는 곳은 아이들이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찾은 나무는 Y자에 그대로 고무줄을 매 쓰기도 하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다시 잘 다듬어서 새총을 만들었다. 보통 삼각형으로 뻗은 가지를 철사로 묵어 U자 모양으로 만들어 그것을 오래 두면 그렇게 모양이 자리 잡기도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철사로 묵은 나무를 불을 땐 아궁이에 불이 식어서 재가 되기 전, 그것을 묻어 두면 타지도 않으면서 열을 받아서 수분이 다 빠지고 딱딱하게 U자로 굳어진다. 그것을 칼로 다듬어서 새 총을 U 모양으로 부드럽게 곡선 가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 다시 매끄럽게 다듬어 고무줄을 매 새총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새총을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고, 겨우내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거나 망가지면 다른 놀이에 관심이 옮겨 간다. 그런 놀이들이 아이들에게는 유행처럼 번지다가 식고, 다시 계절이 오면 또 쥐똥나무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쥐똥나무는 화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생긴 울타리였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나무도 아니고,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도 아니다. 그래도 아무 곳이나 잘 자라고 생명력이 강한 나무이다. 척박한 땅에도 쉽게 자라고, 돌보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어울려서 촘촘한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쥐똥나무 울타리는 작은 동물들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만, 조금 덩치가 있으면 들어오기 힘들었고, 완전히 막혀 안쪽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보일 듯 말 듯하는 울타리였다. 가지는 많고 촘촘하지만, 가시는 없는 것이 쥐똥나무이다.
이제 그런 쥐똥나무 울타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거의 돌이나 시멘트로 담장이나 울타리를 하고, 나무로 해도 지금은 고급 진 측백나무, 사철나무, 화살나무나 더 비싼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울타리도 간혹 있지만, 예전처럼 어디 가도 보이던 친숙한 쥐똥나무 울타리는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쥐똥나무는 아직 길이나 마을 가까운 숲에는 자라고 있다. 그 생명력은 아직도 건재한 것이다. 오래된 산책로나 등산로에도 5, 6월이면 진한 향기를 풍기는 쥐똥나무는 아직도 건재한 곳이 많다.
추운 겨울날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지들만 촘촘히 엇갈려 무성하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쥐똥처럼 생긴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 사이로 참새들이 드나들고, 아이들이 모여들던 쥐똥나무는 볼 수 없다.
그래도 그 나무가 울타리를 하고 있던 곳을 지날 때면 아직도 그곳에 있던 무성했던 쥐똥나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앞산으로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참새들을 쫓아다니던 울타리, 참새들은 손꼽 놀이하듯이 아이들이 보이면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른 가지로 달아나면서 아이들을 놀리는 듯했었다. 그 즐겁던 시절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