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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12. 2023

시골 목사

조용한 마을에 이삿짐을 실은 용달차가 들어선다. 마을 가운데 있는 교회에 새로운 목사가 온 것이다.

짐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목사와 사모는 새로운 곳에 도착한 호기심에 약간 얼굴이 상기된 상태이다. 짐이 들어오는 곳은 교회 옆에 붙어있는 사택이다. 

사택은 교인들에 의해 말끔히 청소되어 있고, 이삿짐을 옮겨주기 위해서 나이 든 할머니와 그래도 작은 물건은 들 수 있는 남자 교인이 서 너 명 나와 있다. 목사 내외는 기다리던 교인들과 반가운 인사를 한다. 목사의 얼굴은 상기되어 일일이 다정하게 인사를 하면서 환히 웃는 모습이다.

마을이 생각보다 큰 것으로 목사의 처음 마음으로는 모두 교회로 인도하리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기도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과 바람이 있다. 


첫 예배를 보던 날 아침에 목사는 강단에서 기도하고서 돌아서 교인들을 보면서 앉았다. 

교회에 모인 교인들은 열두어 명이 되는 것 같다. 목사를 쳐다보는 교인들의 눈에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 같은 표정이다. 이 시골교회에서 오려는 목사가 없어서 그동안은 믿음이 좋은 장로가 설교를 했었다. 그 장로도 이제는 자기가 사는 도시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렇게 첫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과 일일이 인사하면서 곧 집으로 방문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첫 주일을 보냈다. 다시 교회에 혼자 남았을 때, 무릎을 끌고 교인을 많이 인도하겠다고 기도를 했다.


마을에 가장 오래 믿은 할머니를 앞세워서 인도 겸 호별 신방을 나갔다. 방문한 집에서 방 안으로 들어가거나 마당에서 새로운 목사라고 인사하고 교회에 나오시라고 부탁을 한다. 다음 주부터 나오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새벽 교회 종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농사 일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야 하는 새벽에 종소리는 수면에 방해된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교회에 나올 만한 사람은 거의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대체로 옛날부터 믿던 가족이 있는 집안에서 교회에 나오고, 새로 나오는 할머니들은 아들들이 객지에 나가서 교회에 출석하면서 시골에 혼자 있는 엄마를 교회에 나가도록 한 것이다. 물론 할머니들이 혼자 살면서 적적하기도 하고, 교회 나가면 사람들도 만나고 자식들이 잘 살 수 있게 빌 수 있으니까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시골 목회가 시간이 지나면 교인이 늘어야 하는데 좀처럼 늘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것은 이 시골교회가 속한 교단에서 지원이 있어서 차량이나 운영비가 오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것이다. 그 교단에서 월급도 나온다. 작은 월급이지만, 교인들이 가져다주는 채소와 반찬 재료로 생활하고, 주일에 나오는 현금으로 일요일 점심은 교인들과 같이 먹도록 사모가 준비했다. 그렇게 늘지 않은 교인들과 마음으로는 성령 충만하게 목회를 했다. 

교인을 한 명이라도 늘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늘어나지 않으니까 처음에 교인을 많이 인도하고 싶다는 포부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에 섬기던 백리 밖에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시골교회로 옮기라고 설득을 했다. 옮기겠다면 주일 아침에 예배 전에 봉고차로 태워와서 예배를 마치면 다시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멀리 사는 교인들이 시골교회로 예배드리러 오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이제 교인들이 드러나서 스무 명이 조금 넘는 교회가 되었다. 


늘 열심히 마을을 다니면서 인사도 하고 웃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파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파출소에서 목사를 찾아왔다. 

놀라서 온 이유를 물어보니까 새벽에 치는 교회 종소리가 수면 방해를 하기에 종을 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새벽이면 종소리를 듣고 살아온 동네에서 교회 종이 시끄럽다고 익명으로 신고를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날부터 교회 종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교회를 나오지도 않지만, 교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안 목사는 그때부터 호별 방문으로 인도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목사 내외는 마을에 살면서 마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십여 년 가까이 마을에서 목회를 하면서 보냈지만, 멀리서 데려온 교인 외에는 늘어난 교인이 없다. 오히려 그동안 돌아가신 교인 수만큼 줄어들었다. 교회에 젊은 교인은 객지에 나갔다가 들어와 혼자 사는 과부댁만 이제 환갑이 갓 넘었고, 다른 교인은 모두 잘 걷지 못하는 노인들이다. 목사가 이곳에 온 지도 오래되었지만, 처음보다 교인은 줄었고 이제는 목사라는 일을 하는 마을 주민이 된 것이다. 그래도 교단에서 지원이 나오니까 살만하고, 주일이면 모여서 늘 희망하는 천당을 가기 위해서 열심히 나오는 노인들과 함께 보낸다. 목회자이지만, 평범하게 먹고사는 생활인이 된 것이다.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한다. 목사도 지금 유럽에 교회가 없어지고 교인들이 줄어들면서 탈 종교 화하는 것은 하나님이 유럽을 버렸다고 설교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지 말자고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이 멀리 유럽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돼 가고 있다. 바로 밑 마을에서 동네에 가장 잘 지어진 건물인 교회에 교인이 없어서 문을 닫았는데, 그 교회에 다니던 교인들도 여기로 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교회를 아주 떠났다고 한다. 이제 먹고살만하니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마음을 줄 곳도 많고, 내세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잘 살게 해 달라는 기복이나 죽어서 천당은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런 흐름이니까 목사는 신도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마음의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이곳에 올 때는 환갑을 바로 지나고 왔지만, 이제 목사로서 은퇴할 나이로 앞으로 살아갈 것이 더 관심이다. 


이 동네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비록 스무 명도 되지 않은 시골교회 목사이지만, 그래도 잘 살고 좋은 직업이었다고 생각된다. 

목사는 좋은 직업이었다. 

일단은 외롭지 않고 늘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올 수 있으니까 지루하지 않은 세월이었다. 나를 따르는 교인들은 어떤 바람을 가지고 나오니까 간절하고 진지한 만남이고 좋은 관계이다. 미래의 목표도 천당에 가는 것이니까 만나는 사람들은 진심일 것이다. 자신의 위치도 하나님과 통하는 중간 역할을 하니까 리더이고 상위계층인 것이다. 인도하고 가르치니까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고, 무시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존경의 대상이 되니까 만족한 직업인 것이다. 천당이 있다면 목사는 누구보다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으므로 만족한 것이다. 


주변에 노인들은 늙어가면서 혼자가 되어 간다. 여러 방법으로 같이 살던 사람들은 떠나고, 혼자서 사는 노인들이 많다. 아무리 잘 살고 열심히 살아도 나중에 남는 것은 자식들이나 소수의 친구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없는 노인들이 많다. 자식도 떠나고 연락을 끊은 사람도 많고, 주위에 친구들이 없는 사람이나 있어도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열심히 살았다는 사람도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고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은 소수이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도 한두 명일 것이다. 


목사는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 신도는 스무 명이 안 되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외로운 노년에 같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 중에 목사나 스님같이 성직자만큼 존경받은 사람이 없다. 여기서 싫어하는 사람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역사가 존경받아야 근거를 제공하는 목사라는 직업은 행복하고 좋은 직업이다. 

이제 시골 목사가 은퇴할 날이 다가온다. 이 동네에 십여 년을 살았지만, 또래 노인들 중에 수십 명에게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목사가 유일하다. 시골 목사는 여기 산 것이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다. 


목사 은퇴 예배를 그동안 같이 보낸 교인들과 거행되었다.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면서 신앙적으로 깊어졌다고 설교하면서 이제 떠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교회 옆 사택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정이 든 곳이다. 멀지 않은 곳에 새로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사택에 있는 짐들을 싣고 교회를 떠날 시간이다. 교인들이 모두 나와서 가는 목사를 보러 나왔다. 목사와 사모는 왔을 때와 같이 일일이 인사하면서 건강하시라는 말을 건넌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마을을 벗어나면서 목사도 한번 뒤돌아 본다. 올 때는 마을 앞으로 왔는데, 떠날 때는 마을 뒤로 가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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