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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Dec 19. 2023

겁 없이 떠난 여행

모르면 용감해지는 것이다. 감기 전염병으로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다가 해외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자 여행을 떠났다. 

마치 빨리 가지 않으면 다시 못 볼 것 같은 생각도 했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왜 그렇게 용감하게 서둘러 갔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이다. 위험이나 고생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가야 한다는 단순함과 좋을 것이라는 마음이 그렇게 겁 없이 떠나게 했던 것이다. 

영어가 부족해서 소통도 되지 않고 단어만 알고 있는 처지였지만, 일단 떠나면 소통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디든지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힘은 들겠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마음이었다. 더 솔직한 심정은 잘 모르고 낯선 사람이지만 속이고 험악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통 인간의 마음을 믿는 것이다. 오히려 진지하게 부탁하면 나이 든 동양인을 불쌍히 여겨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힘은 들지만, 여행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었다. 

흔히 해외여행을 가려면 마음만 먹고 생각이 많으면 안 되고, 일단 떠나는 것이 반이라는 것을 실천했다.


처음에는 휴대폰 앱도 처음 운용하는 것이라 잘 되리라 확신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항공권부터 숙박권까지 모두 시도해서 출발한 것이다. 첫 여행지인 튀르키예 이스탐불은 그 당시에 환율이 좋아 경비가 적게 든다는 이점 때문에 그곳을 택했다.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것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을 참고해서 들어가 숙소를 찾았다. 숙소를 택시를 이용해서 가면 쉽지만,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시내에 들어와서 숙소까지 지상철을 이용했는데, 그 티켓도 역에서 현지인에 손짓과 단답형 단어를 이용해서 발급받았다. 여기 사람들은 모르는 동양인이지만, 무엇을 부탁하는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알아들었고, 그렇게 현지인의 도움을 처음 받았다. 모든 사람을 믿지는 말아야 하지만, 모두가 자기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사람을 잘 골라야 하는 선택이 문제인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스탐불에 숙소가 있는 구시가지까지 갔지만, 지리와 글씨를 몰라 숙소를 못 찾아서 헤매면서 힘들어 한참을 낯선 도시 길가에 앉아 말없이 보냈다. 

지나가는 여러 사람에게 부탁을 했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까 찾지 못하고 그러다가 물어본 사람이 어느 도심에나 늘 있는 건달 같은 사람이었지만, 가리키는 쪽으로 가니까 숙소가 나왔다. 내가 묻고도 이 사람은 복장에서 건달이 확실하다는 것이 느껴서 아차 했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악의를 품지는 않았다. 


일단은 환전이나 물건을 사는데 힘들고, 유적지를 구경 나가서 돌아오는 것도 늘 신경을 써야 했고, 그래서 즐거운 보다는 길 찾기와 불안함이 늘 함께한 첫 여행지였다. 여행을 가면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혼자서 가는 여행이어서 마음의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고 즐거울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이스탐불에서 묵는 동안에 가고 싶은 곳도 거의 가 보고, 유명한 고등어 케밥도 먹었다. 그렇게 첫 여행지에서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니까 다음에 어디로 갈지 정한 것이 없으니까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가 다음 여행지는 도심 여행사를 지나다가 창문에 붙여서 선전하는 벌륨 그림을 보고 카파도키아로 정했다. 

젊은이들처럼 언어가 되어서 다른 젊은 여행자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벙어리 여행이 답답하기도 했다. 


다음 여행지를 정하고 나니까 그곳으로 가는 것이 문제였다. 앱으로 항공권을 예약하고자 했지만, 앱으로는 내 카드가 결제되지 않아 다른 방법을 택했다. 신도심 여행사를 찾아가서 그곳에 가는 시간과 항공권을 미리 본 앱을 참고해서 티켓을 구입했다. 그곳에서도 카드를 받지 않아 현금인출기를 찾아서 튀르키예 화폐로 뽑아서 주었다. 그 현지 화폐를 뽑는 ATM 기계의 영어를 잘 몰라 지나가는 착하게 보이는 현지인에게 부탁해서 뽑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준비 안 된 여행이었지만, 겁 없이 계속 다녔다. 


카파도키아 비행장에 내렸던 상황이 첫 여행 무모함의 하이라이트였다. 

숙소도 정하지 않고 내린 카파도키아의 비행장은 들판 가운데 있는 외딴곳이었다. 그래도 카파도키아의 중심지는 괴뢰메 마을이라는 것은 알고 갔다. 비행장은 괴뢰메 마을 옆에 있는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상상했고 그래서 숙소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무사히 내리면 또다시 문제는 해결된다는 안일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비행장에 내리니까 어둠이 지기 시작했고, 주변은 황량한 들판이었다. 

비행장 입구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숙소에서 나온 차, 개인차와 택시들이 서 있다. 

직감적으로 비행장에서 괴뢰메 마을까지 차를 이용해야 하고 상당히 멀리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택시를 타려고 하니까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다른 택시를 물어보아도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가격이었다. 어두워지면서 비행장에는 불이 들어오고 대기하던 차들도 떠나면서 이제 몇 대 남지 않았지만, 가격이 맞는 차를 찾아다녔다. 몇 대 남지 않은 차 중에서 다행히 적당한 가격을 요구하는 기사 차를 타고 갔다. 그 차는 숙소에서 나온 차로, 내 차비는 기사의 별도 수입이 되는 것 같았다. 


운 좋게 차를 타고 괴뢰메 마을로 출발했는데, 그 거리가 어두운 들판을 반 시간은 갔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괴뢰메 마을에 가면 숙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마음이었다. 

괴뢰메 마을에 도착하니까 주위가 깜깜해져서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기사가 예약된 손님들을 숙소에 모두 내려놓아도 나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내릴 수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숙소가 많은 마을 중심가에 내려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 답답하기는 운전기사도 같은지 계속 무엇이라 물었지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지나면서 가장 환한 곳에 내린다고 했다. 


내려서 호텔이라고 쓰인 곳으로 찾아가서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때도 의사전달은 “원 나이트, 하우 머치”였다.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은 것이다. 방이 있느냐가 아니고 얼마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 말은 알아들었는지 대답은 길게 하는 곳도 있었지만 “노우”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거나, 아니면 손사래 치는 것으로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괴뢰메 마을을 어두운 저녁에 보았지만, 집들이 붙어 있고 큰 마을이 아니다. 불이 켜진 곳은 차례로 들어가서 “원 나이트, 하우 머치”를 외치면서 다니다가 보니까 처음에 같던 집으로 다시 돌아올 정도로 많이 다녔다. 그날이 토요일이라서 여행자가 많아 숙소가 빈 곳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다시 만나 집에서 말이 통하지 않은 동양인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기다리라는 했다. 어디로 연락하더니 잠시 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숙소에서 차를 가지고 와서 데리고 가 하룻밤 묵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줄 미리 알았다면, 겁 없이 여행을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여행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잘 모르고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용감하게 시작한 여행이었다. 


다음에 여행한 곳도 미리 정하지 않고 구글 지도를 보고 며칠 전에 정해서 가는 용감한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까 여행하는 동안 불안한 마음이 늘 자리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길 찾기에 신경을 더 쓰고 다녔다. 그래도 여러 나라를 넘나들면서 여행은 쉬지 않고 계속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오직 눈으로 보면서 발로 걷는 여행이 되니까 반쪽짜리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페인을 들어가서는 예정에는 없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걷기이니까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순례길이 어떤 길이고 예비지식도 없었지만, 걷는 길이니까 걷는 것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것이다. 역시 그 예상은 맞아 걷는 것이 목적인 순례길이고 생각하는 길이어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한 달간의 순례길이 끝나고도 두 달 넘게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외로움과 불편함을 이겨내면서 용감하게 다녔다. 그렇게 힘은 들었지만 다니니까 내성도 생기고 느낌은 없었지만 여행에 대한 노하우도 생겼을 것이다. 


처음 떠난 여행 마지막에도 지루했지만, 곧 어디까지 가고서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끝나가는 여행이 아쉬워야 하는데, 시간이 빨리 가지 않고 구경하는 것도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지막 여행지는 볼 것도 많은 곳이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공항에 가는 길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다. 


여행을 시작하니까 다시 또 다른 곳으로 출발을 할 때는 처음보다는 자신이 붙는 것 같았다. 

자신 있게 출발한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항공권을 세심히 살펴서 티켓팅했지만, 베트남에서 저지당했다. 베트남 국적기 중에서 인도 공항에서 환승 대기가 되지 않는 항공사가 있었다. 그 항공사가 인도 공항에 체류비용을 내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 항공사의 티켓을 샀는데, 환승 지인 다낭에서 처음에는 그냥 인도로 보내줄 것 같이 하더니, 결국은 안된다고 하면서 인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낭에서 그냥 돌아오려고 했다가 돌아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다낭에서 급하게 숙소를 잡고 며칠을 묵었다. 그리고 인도를 경유하지 않고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네팔로 들어가는 항공권을 구입했었다.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네팔 국적기로 환승하는데, 장소가 멀리 떨어진 곳이고 다른 건물이어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웠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내 방식으로 물어서 찾아간 일이 지금도 생각하면 대단했다는 것 같다. 그런 때는 아마도 가진 모든 능력이 발휘된 것 같다. 

그 뒤로도 필리핀이나 인도 여행도 했지만, 여전히 혼자서 하는 여행은 외로움을 느끼면서 힘들었고 그래도 경험은 보이지 않게 늘어간 것 같다. 그렇게 겁 없는 여행이지만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있었다. 


다시 최근에 떠난 유럽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유럽 3대 미봉을 다녀오고, 여러 달을 나라와 도시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이제는 외로움도 덜하고 어디를 이동하는 것도 부담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일단 심적으로 내일 어디로 가더라도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어려움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어진 환경도 첫 여행과 비슷하고 언어 소통은 전과 같았지만, 별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덜 들었고 소통을 어떤 식으로 하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제는 아름답고 새로운 것이 보이고 즐거운 기분도 조금 느끼는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에 적응되어 간다는 느낌이 온다. 


겁 없이 떠났던 첫 여행을 생각하면,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을 경험했던 것 같다. 

이제는 다른 마음이다. 이제부터는 즐기는 여행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겁 없이 시작한 여행이 자신감을 붙인 것이다. 잘 모르고 시작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이 길러진 것이다. 다시 떠나는 여행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나 누구만큼이 아니라 그냥 오직 내가 원하는 곳으로 조용히 떠날 것이다. 어디에 간다는 말보다 실제로 그곳으로 가 여행의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래도 여행을 할수록 준비는 더 많이 하는 것 같고,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별로이다. 

처음에는 그냥 떠나서 다음 여행지는 그 장소에서 정하는 용감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체적인 그림은 그려 놓고 추가나 변화를 주는 여행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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