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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an 01. 2024

마음의 평온을 바라면서

아침이 밝았다. 새로운 날에 좋은 시작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어나 운동을 시작한다.

오늘이 돌아가신 엄마의 기일을 추모하기 위해서 형제들이 모이기로 한 날이다. 형제들이 오면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서 남아 있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하고 어떤 말을 해야 공감할지도 생각해 본다. 그래도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로 이해하면서 각자의 삶을 잘 살면서 우리는 엄마의 자식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엄마의 같은 자식이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더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지만, 최소한은 지금까지 갖고 있는 형제애는 유지하자는 것이다. 서로 형제애가 많이 돈독하면 좋지만, 갈등이 있으니까 더는 나빠지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아침나절이 지나고 시간은 흘러서 멀리 있는 형제들은 도착할 무렵이었지만, 아직도 아무도 오지 않고 어디까지 왔다는 연락도 없다. 아직은 모든 형제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것은 희망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세상일에는 기적도 있고, 기대하지 않는 좋은 일도 일어나니까 기다려 본다.

제일 가까이에 온 형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형제로부터 멀리 있는 막내가 일이 있어서 못 온다는 말도 같이 전해 들었다. 

오늘이 모친이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는 해이다. 옛 풍습에는 3년 상이 부모를 떠나보내는 의미 있는 해로 정해서 이날을 기렸다. 그런 해라는 것도 전했고 모친 기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 꼭 참석하라고 연락도 했지만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도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오지 않은 것이다. 엄마의 기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 보지만, 마음속에는 오고 싶지 않아서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엄마의 기일에 오고 싶지 않거나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아니고, 형제 중에 마음 상한 사람이 있어서 오지 않은 것이다. 원래 보기 싫은 형제는 아니지만, 어떤 계기로 마음이 상해서 오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 다른 형제들도 곧 도착할 거라는 연락이 왔지만, 또 바로 밑에 동생은 아직 연락이 없다. 

일전에 오지 못한다는 연락은 받았지만 그래도 꼭 참석해야 하는 이유와 당부를 했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래서 연락이 없어서 올 거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이 동생이 오면 내가 전하고 싶은 말도 있고 해서 누구보다 더 기다리는 중이다. 

추념을 할 시간은 다가와서 연락이 없는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한번 해도 받지 않는다. 문자로 전화해 달라는 것도 남겼다. 전화는 끝까지 오지 않는다. 

다른 동생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참석을 하기 싫어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 여기도 엄마에 대한 마음보다는 보기 싫은 형제가 있는 것이다. 


형제들은 도착하고 엄마의 산소를 찾았다. 

이제는 멀리 떠난 엄마가 그리워도 다시는 볼 수 없지만, 그리운 마음도 옅어져 가는 느낌이다. 

멀지 않아서 나도 가는 길이고, 그것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마음과 그때까지 마음의 평온을 갖고 싶은 생각이다. 그런 마음의 자세는 갖고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엄마의 기일을 기리는 날에 엄마 생각도 하지만, 앞으로의 마음의 평온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엄마가 가시던 그날은 몹시 추웠다. 오늘은 그날처럼 매서운 추위는 없고 포근한 기운마저 있는 날이다. 엄마를 생각하는 울적한 마음이 들면서 내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나는 것은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떠날 준비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마음의 평온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관계에서 섭섭한 마음도 없으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섭섭한 생각을 갖지 않으면 되지만, 살아온 관계에서 그런 마음이 버리기 힘든 사람이 있다. 살아오면서 내가 잘해 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로 타인이 아니라 형제이다. 그런 형제도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아끼고 마음을 썼던 내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모두 잊기로 하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준 것만도 감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된 마음이지만 그래도 그 말은 전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서 동생들을 기다린 것이다. 

기다리다가 오면 웃으면서 “오늘까지” 우리는 엄마의 자식으로 만나 잘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좋은 형제의 인연을 감사하면서 서로가 잘 살자는 말을 하려고 준비했었다.


같이 가장 오랜 시간 고민하고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바로 밑에 동생이 오지 않았다. 왜 안 온다는 이유도 전하지 않고 나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살면서 그 동생에게는 친절하지 못하고 비민주적이었던 시간들은 후회한다. 목표만 생각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날들이었다. 다시 그 시절이 오면 잘 살지 못하더라도 민주적으로 사는 것을 택하고 싶다. 

그 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을 정도로 살아오지는 않았다. 이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것은 무척 마음이 아프고 배신감마저 든다. 

그래도 능력 있게 일할 때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 관심이 멀어진 사람이 되고 보니까 더 섭섭한 마음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동생만큼은 알아주리라는 생각이었다. 

막내 여동생도 살면서 그렇게 보살피면서 살아왔는데 자기 혼자 세상을 살았던 것처럼 하는 것을 보면 생각도 하기 싫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그 동생은 보호자처럼 생각하고 살았지만, 그것을 알아주지는 않더라도 연락은 해야 하는 것이다. 슬프고 원망스러운 생각이 가슴속에 자리하면서 삶의 허무마저 느낀다. 


이제 돌아보면 이기적이고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을 후회한다. 

이기적으로 살려면 철저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또 다른 면에서는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려는 착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으로 되지 않고 도리어 순진한 마음으로 살면 아픈 일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도 없이 단순한 마음으로 살았다. 평생 하던 일을 마치면 주위 사람들이 거의 떠난다는 것은 알았지만, 같이 살아온 사람도 나를 떠날 줄을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나만 바라보고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그 정을 못 잊어서 같이 살 줄 알았는데, 냉정하게 떠났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고 나서도 사람을 믿은 것이 아니라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해서 허접스럽게 행동하다가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 처지가 되어도 또 다른 삶이 찾아오리라 바랐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아픔이 시기적으로 늦게 찾아와서 많은 고뇌와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늙어간다. 

수많은 고뇌를 해도 아픈 기억을 털고 가지는 못한다. 아픔이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지 가까운 형제들조차도 나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원망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이 이해 못 해 주는 것이 더 가슴이 답답하다.


후회가 늘어나는 노년이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후회를 덜한 삶을 살고 싶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에서는 벗어났지만, 나만의 희망을 갖고 살고 싶은 것이다. 그 희망은 글을 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 희망을 갖는 것이다. 의미가 있고 오래 생각하게 하는 인간의 슬픈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글을 조용하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삶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남은 세월을 스스로는 치열하게 사는 나의 삶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도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그런 여행이다. 이제는 혼자 가는 여행도 호기심과 작은 흥분이 가슴에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었다.

그렇게 아픔을 겪었지만, 나름의 계획도 섰고 마음도 정리되어서 실천만 한다면 어느 정도 아픔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존감과 가치관을 생기면서 편안한 마음이 올 때도 있었다. 


혼란한 마음의 시간이 지나면서 열심히 살려고 건강 상태를 체크하게 되었다. 

지난 십여 년간 치열하게 살 생각만 했지 건강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로 뇌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십여 년 전에 알았지만 나이 들면 줄어들거나 그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방치한 것이다. 상황은 반대로 가서 뇌종양은 의사가 놀랄 정도로 크게 자라 있었다. 방법은 수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하고 싶지만, 수술 날짜는 아직 받지 못했다. 수술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어떤 결과를 올진 예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간절하면 통한다는 생각은 믿지만, 지금은 그 말도 전적으로 믿는 마음이 아니다. 그냥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자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삶에 대한 애착이 별로인지 “여기까지”라는 마음을 먹을 때가 더러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아프거나 피해를 준 일도 없으니까 더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다. 할 일이 없으니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수술이라는 큰 신체적인 고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금 마음속은 그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찾지 하고 있다. 수술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면서 그 시간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삶의 방향이 정해질 것 같기도 하다. 


신체적인 장애가 어느 것보다 먼저 생각게 하는 시점이지만, 일단은 수술을 받아들이면서 또 나름의 삶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도 조용히 사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글을 쓰면서 보내는 것이다. 외롭고 울적한 마음을 글이라는 창작을 하면서 달래고 몰입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는 예상하지 말고, 평소 생각하고 살아가리라고 마음먹은 대로 사는 것이다. 

가족이나 자식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내 삶을 내가 감당하면서 수술의 결과도 어떤 방향이든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평소와 같이 살지만, 아직도 얻지 못한 것이 마음의 평온이다. 

친하고 믿는 동생들이 나를 지금까지와 같이 생각만 해주면 마음의 평온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동생들은 내가 늙어가면서도 단란한 가정을 갖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가족은 나를 떠나고 다시 돌아올 마음도 없는데, 아직도 동생들은 그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단란한 가정을 유지 못한 나를 원망하고 있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나 나의 아픔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원망하는 것 같다. 이제까지 가족을 잘 이끌었고 열심히 살아온 것만 인정받기를 바라지만, 동생들은 나머지 인생도 가정을 깸 없이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몇 동생들은 나의 가정사는 엎어진 물처럼 되었지만, 아직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엄마의 큰아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범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면서 불만이 있어 오늘 엄마의 기일을 기리는 날에도 오지 않은 것이다. 물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엄마의 뒤를 이어서 가족의 중심에서 살기를 바라는 좋은 마음인 것은 안다. 

내게는 너무 슬픈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인정하고 나머지 삶은 내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동생들이 원망스러우니까 외로운 생각이 들고 슬프다. 

동생들은 나를 위로할 줄 알았는데,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위로는 하지 않아도 나를 슬프게 하지 않으면 그래도 좋으련만 힘들게 한다. 엄마의 기일에도 연락도 받지 않으니까 가슴을 아프게 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갖은 동생들을 설득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안다. 온전히 엄마의 큰 아들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던 때만 생각하면서 자기들 마음에 있는 불만을 용서할 수도 있지만, 할 마음이 없다.

차라리 내가 그런 동생들을 이해하고 스스로 용서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동생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접고 각자 잘 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말을 전하고 싶어도 연락을 받지 않으니까 전할 수가 없다.

그래도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안 오는 연락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위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엄마의 큰아들이니까 엄마의 마음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내가 정리하고 위안을 찾는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동생들이 나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연락이 안 오는 것은 잘 됐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하자.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 생각을 마음의 평온을 찾는 구실로 삼는 것이다. 내 탓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나를 위로하고 동생들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살아온 것에 감사하면서 끝까지 부지런히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마음의 평온이 곧 올 것이라고 믿고 부지런히 사는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마음의 평온을 기다리면서 보낸다.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방향은 마음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평온 #기일 #엄마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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