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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an 06. 2024

잠을 누에처럼 잔다

저녁에 잠이 들어 아침이 오면 새로운 날이 시작하는 것이다.

밤이 깊어가면서 아침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시 활동할 때를 기다리는 마음인 것이다. 아침이 오기까지는 잠을 자야 하고, 그 잠은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며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낮에 한 일 없이 보내고 저녁이 오면 텔레비전을 보다 한참이 지나면,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서 본다. 잠시 편안함을 맛보지만, 누워있으면 오는 것은 졸음이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면 아직 환하게 불 켜진 방에 텔레비전 소리만 들린다. 다시 일어나 정리하고 잠이 들면 몇 번이나 자다 깨다 하면 아침이 올 때가 많다.


그렇게 하룻밤에 몇 번을 자다 깰 때면 누에가 생각난다.

엄마는 일 년에 두 번씩 누에를 쳤다. 봄과 가을에 누에를 칠 때 뽕을 가져다가 큰 가지에서 달린 잎을 따서 누에에게 준다. 그러면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뽕잎은 뽕나무를 가지째로 쳐오면 그 잎을 따야 한다. 그때는 작은 손이지만 어린아이 손도 일손이었다. 뽕잎 따는 일은 엄마를 돕는다는 마음보다는 엄마가 시켜 억지로 하는 하기 싫은 일이었다.

누에가 커 갈수록 뽕잎을 많이 먹었고, 뽕잎을 먹는 소리도 커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뽕잎을 먹지 않는 조용한 때가 온다. 이때를 누에가 잠을 자는 때였다. 이런 날은 뽕잎을 따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 누에가 잠잘 때가 좋은 날이었다.


누에는 좁쌀만 한 누에알을 받아와서 따뜻하게 해 주면 아주 작은 애벌레가 꿈틀거리면서 뽕잎을 먹기 시작하면 눈에 보일 정도로 빨리 자란다. 많이 자라면 뽕잎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주 많이 주어야 하기에 큰 누에가 될 수로 엄마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바빠진다. 이때 누에가 뽕잎을 먹지 않고 조용히 잠잘 때가 엄마도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누에는 넉 잠을 자고 나서 고치를 만드는 섶으로 올라가서 고치가 되는 것이다. 누에는 넉 잠을 자면 고치가 되니까 나도 하룻밤에 넉 잠을 자는 날에는 고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하면서 누에 치던 엄마를 생각한다.


잠은 “죽음의 형님”이라고 말도 하듯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느끼는 결과는 별로 없지만, 살아가는 동안 이보다 중요한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책에서 오래 사는 첫 번째 요소가 잠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다음이 먹는 것이고, 운동이 그다음이니까 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잠을 무조건 많이 자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잠이 장수와 건강의 조건이니까 많이 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잠자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거나 잠을 못 자는 상황이나 충분치 못하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말은 누구나 동의한다. 잠은 피곤한 못을 회복시키며 고장 난 몸을 고치는 시간이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한겨울 낮이 짧아서 해가 일찍 지고, 해가 넘어가면 곧 어두워진다

산골에서는 산이 높아서 해가 넘어가면 어두워지는 것이 더 빠르다. 어두워지면 이른 저녁이지만 골목에는 사람들도 다니지 않으니 조용하고 적막한 밤이 찾아온다. 시계를 보지 않으면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없다.

일찍 먹은 저녁은 할 일이 없으면 침대에 누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잠이 든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방에는 불을 켜져 있다. 불을 끄지 않고 잠이 든 것이다. 그때 시계를 보면 아직도 초저녁이다.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누우면 다시 잠이 든다. 한참을 잤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어두운 밤이고 텔레비전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잠이 들었으니까 잠에서 깬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텔레비전을 끄고 불도 크고 잠잘 준비를 하고서 이불에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오늘 저녁만도 벌써 두 잠을 잔 것이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아 눈은 감고 있지만 잠이 들지 않는다.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다. 계속 생각을 하다가 눈은 감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에 잠이 든다. 몇 시간은 잔 것 같은데, 눈이 떠지니까 시계를 본다. 깊은 잠을 잤으니까 아침이 밝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어두운 밤이다. 자정은 넘었지만, 새벽도 아니다. 벌써 이 밤에 석 잠을 잔 것이다. 


다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아서 일어나 불을 켠다. 

이번에는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본다. 보고 싶은 것도 보고 여러 내용을 찾아서 보다가 보면 시간이 꽤 시간이 흐른 기분이다. 한밤에 처음에는 앉아서 유튜브를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이불을 덮고 오래 보면 누워서 보는 것도 불편한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다시 잠이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다시 불을 끄고서 잠을 청해 본다. 잠이 든다. 

다시 잠에서 깬 시간은 아직 새벽 시간이다. 이제부터는 잠이 올 것 같지도 않다. 

오늘 밤에도 벌써 넉 잠을 잔 것이다. 누에 같으면 이제 넉 잠을 자고 난 뒤라 고치를 만들려고 섶에 올라가야 할 때이다. 이제부터는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새벽 시간이다


혼자 사는 산골의 밤은 누구와 이야기할 상대도 없고 너무 조용한 시간 들이다. 몇 잠을 자면서 아침을 기다리지만, 아침이 와도 급하게 해야 할 일도 없다. 

아침에 운동을 나가지만 그 운동조차 하지 않으면 시간 구분이 되지 않은 변함없이 이어지는 시간 들이다. 그 이어지는 시간 속에는 잠이 있는 것이다. 

새벽 시간도 긴 너무 길다. 그래도 다시 텔레비전도 있고 유튜브와 네 플렉스도 있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있다. 그것도 계속 보니까 흥미도 없고 식상한 볼거리가 되었다. 이 시간에 느끼는 것은 사는 것은 재미도 없고 의미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원래 의미 없이 사는 것이 삶이라고 위안해 본다. 


다시 새벽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는 그냥 잠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지내거나 간혹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을 느끼고 아침이 힘들어진다. 

누에처럼 넉 잠만 자면 고치가 된다면 오래전에 고치가 되었을 것이다. 난 고치 속에 번데기 되어서 그 속에서 다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고치가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무료하게 나이를 먹어간다. 그래도 매일 고치가 되는 잠을 자서는 안 되고, 밤에는 한잠을 자는 날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멀지 않은 과거에 여기 살았던 대천 할매는 늘 아침이면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활동하다가 저녁이면 일정한 시간에 자리에 누워서 잠을 잤다. 일어나면 다시 저녁에 누울 때까지 아프지 않으면 눕지 않았다. 그런 생활 리듬은 습관이 되어서 자연스러웠다. 그 할매는 삶이 별로 바쁘지 않았지만, 누에처럼 몇 잠도 자지 않고 사는 것이 지루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하고 그러고는 저녁에는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그 잠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을 잠자기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서 잠을 시작하는 것이다. 잠도 삶의 중요한 일부이니까 낮에 활동하는 것처럼 밤에는 해야 할 일이 잠이다. 누에는 고치가 되기 위해서 넉 잠이 필요하다면 사람은 긴 한잠이 필요한 것이다. 한잠은 한번 자는 잠이기도 하지만 깊은 잠이다. 간혹 두 잠도 잘 수 있지만, 누에처럼 넉 잠을 자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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