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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an 07. 2024

머릿속에 그려지는 마을


읍내로 가는 도로 길을 지나면서 왼쪽 들녘을 바라본다. 경지정리가 잘 된 반듯한 논 들이다.

이곳은 기억 속에 무언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이 들에 밑에는 큰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은 깎은 듯한 절벽 밑으로 흐른다. 그 위에는 높지는 않지만, 울창한 소나무 산이 완만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런 풍광을 배경으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아름다운 산과 개울이 있는 곳, 넓은 들녘에 동양화같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초가지붕 네다섯 채가 서 있는 그런 마을이었다. 길을 빠르게 지나면서도 그런 기억 속의 마을을 찾으려는 듯이 왼쪽으로 오랫동안 고개가 돌려진다. 


봄이 오면 아지랑이가 피는 들녘 가운데 아름답고 포근해 보이는 마을이 그곳에 있었다. 

이 마을을 지나기 전에는 높은 산 밑에는 제법 큰 마을이 있었고, 큰 마을 개울 건너에는 그보다 작은 마을이 자리하면서 그 사이에 들녘이 펼쳐져 있다. 그 들녘 가운데 그 작은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 마을 이름은 “돌베기”였다. 이곳은 수년을 십 리가 넘는 곳에 있는 학교에 갈 때 지나는 마을이었다. 그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때 쉬어서 가던 곳에는 큰 돌이 있었다. 이 돌은 마을 입구에 자리하면서 큰 돌 여러 개와 고인돌이 같이 있던 곳이다. 이 돌들이 마을 입구에 박혀 있는 듯한 모양이어서 “돌베기”라고 붙여진 것 같다. 


“돌베기” 마을은 큰 돌이 있는 곳에 가게를 하는 한 집과 길 건너편에 목수 일을 하는 한 집이 떨어져 있었다. 이 두 집이 외딴집으로 있으면서 가겟집 뒤로 한참을 들어가면 네다섯 집이 옹기종기 한 곳에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있는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면서 개울이 돌아가는 곳에는 노송들이 서 있는 솔밭 밑에는 깊은 가메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소나무와 절벽이 아름다운 가메쏘와 돌아가는 개울 물길이 있고 넓은 들 가운데 위치한 “돌베기”는 한 폭의 동양화였다. 


개울 물길은 가메쏘의 절벽에 서 있는 낙락장송을 지나면서 솔 산 밑의 절벽을 급하게 돌아가기에 마을 밑에 넓은 돌 갱변이 만들어져 있다. 오랫동안 급하게 돌아가는 개울은 돌들을 깎아서 작게 둥글게 만들어서 이곳에 모아 놓은 것 같은 넓은 돌밭이 되었다. 이곳에는 봄가을에 늘 소풍 와서 놀던 곳이고, 돌 사이로 숨겨 놓은 보물찾기 하던 곳이다. 그때 “돌베기” 아이들은 자기 집 앞에 소풍 온 것이다.

넓은 돌 갱변에 앉아 노래도 부르고 즐겁게 소풍 하던 그곳은 “돌베기” 마을 앞이었다. “돌베기” 돌 갱변은 뒤로는 아름다운 노송이 있는 절벽이고 앞에도 산 밑으로 “문디밤쏘”라는 깊은 개울이 흐르는 소풍 오기에 좋은 곳이었다.


돌베기 아이들은 행정구역으로는 십 리나 떨어진 곳에 다녀야 하지만, 초등학교는 가까운 곳에 다녔다. 

아침이면 키 작은 아이들이 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학교로 걸어가면, 개울 건넛마을 아이들을 만나면 반가워 웃음으로 인사하고, 큰 마을에서 나오는 여러 명의 아이들을 뒤따라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가 끝나면 형들을 기다려 이야기하며 무리 지어 돌아오다가 큰 마을과 건넛마을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들어가고 돌베기 아이들만 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키 작았던 아이들이 들판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서 연기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은 풍경화 속에 그림처럼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돌베기” 살던 아이들은 큰 마을 아이들보다 조용하고 순진했었다. 큰 마을의 아이들은 또래가 많고 분주했지만, 몇 명 안 되는 “돌베기”아이들은 떠들지도 않고 조용했다. 아이들의 키도 거의 작아서 더 조용하고 순진해 보이면서 또래보다 어려 보였다. 돌베기 아이들은 목소리 큰 아이도 없이 항상 조용했다.


그런 아이들이 크면서 멀리 떠나고 그곳에서 농사하던 어른들도 돌아가시니까 마을 집들이 하나씩 뜯기더니 나중에는 모두 없어지고 박혀 있는 돌만 남은 들녘이 되었다. 


“돌베기” 큰 돌 옆에 살던 가겟집이 가장 먼저 뜯기더니 살던 사람들은 멀리 가지 못하고 면 소재지로 가서 또 가게를 했었다. 그 집에 살던 잘 웃고 친절한 삼 형제는 멀리 학교 하러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동안 소식이 몰랐었다. 어디에 사는지 궁금했는데 소문에는 삼 형제 모두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집안은 원래 절에 다녔는데, 먹고살기 위해서 직업으로 목사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삼 형제 목사로 알려져 있다. 안쪽 마을에 살던 유난히 키가 작았던 소녀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서 객지에 살면서 식당 일을 오래 하다가 나이 들어서 본인이 시작한 식당이 주변에서는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먹고살 만했다고 한다. 이 소녀도 교회를 다녀 권사로 믿음을 가졌지만, 살 만한 때에 못쓸 병이 와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아이들도 먼 객지에서 그냥 먹고살면서 작은 마을처럼 큰 소식 없이 조용히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을 해서 큰돈 벌었다는 사람도 여러 사람에게 알려진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없이 모두가 옛날처럼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경지가 정리되어 반듯한 논들 사이에 예전에 마을이 있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유유히 돌아서 흐르는 개울과 노송이 서 있는 가메쏘는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이다. 오래된 소나무가 절벽 위에서 쏘를 바라보면서 서 있는 풍광은 수려한 수채화이다. 그 수채화 속에 소나무 위에 앉은 흰색 두루미와 가메쏘 푸른 물에 떠다니는 청둥오리가 운치를 더 한다.

누가 이 아름다운 곳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기억할 것인가. 기억하는 사람은 오래된 사람들이고, 그 마을은 어릴 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향 같은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지금 사람이 지나지 않는 한적한 곳이 되었다. 

도로 옆 들판에 아직 큰 돌은 고인돌과 자리하고 있고, 가메쏘 밑으로 돌아가는 개울 옆에 돌 갱변도 그대로이면서 인적이 드물어졌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 개울에는 가끔 물고기를 잡으러 오는 사람이 보인다. 

한적한 곳이 되고 보니까 물고기가 많기도 하지만, 허가되지 않은 도구로 물고기잡이를 하는 것이다. 개울은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도로가 먼 곳에 있으니까 보이지도 않고, 그러니 허용되지 않는 도구로 물고기를 잡아도 신고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옛날보다 사람이 없어 물고기 살기에 더 좋을 것 같은데, 인적이 드물어서 불법으로 물고기 잡으러 오는 사람은 많아진 것이다. 물고기는 작은 돌베기 마을이 있을 때가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들녘을 지날 때면 옹기종기 있던 작은 마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것처럼, 보고 싶은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에서 들녘을 걸어가는 키 작은 소녀도 보고 싶고, 어린 소년들의 순박한 웃음소리도 들리는 듯한 들녘이다. 

그래도 가장 그리운 것은 네 다섯 채 있던 지붕 위로 연기가 오르는 평화로운 풍광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천천히 오르는 흰 연기가 하늘로 흩어지는 모양이 그립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고향의 전경은 그런 마을이다.


#고향 #수채화 #동양화 #들녁 #고인돌 #고향마을#소나무 #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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