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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an 09. 2024

엄마의 맛집

어버이날을 이틀 지나 큰딸이 엄마를 보러 고향에 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도 해오고, 고향 도착 전에 엄마에게 전화해 필요한 것을 물어보니까, 엄마가 차는 기저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도 사서 왔다. 반가운 엄마를 보면서 집안 정리를 해주면서 맛있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엄마는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하지만, 큰딸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 전화로 예약을 했다. 엄마가 집에서 먹자고 하는 말은 돈이 아까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같이 갈 맛집은 시오리 정도 떨어진 닭백숙을 하는 집이다. 그래도 이 집이 주변에서는 맛이 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잘 걷지 못하는 엄마를 부축해서 승용차에 태웠다. 식당에 도착해서도 식당 안으로 부축해서 들어가 자리에 앉혔다. 그때까지 집에 나오면서 “집에서 밥을 먹자"라는 소리를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엄마를 식당에 데려온 큰딸은 말 없는 엄마에게 여러 말을 걸어 보지만 눈만 껌벅거리고 귀찮은 듯 말은 하지 않는다.


엄마가 사는 시골에도 가까운 곳에 맛있다고 소문이 난 집은 여럿 있지만, 도시에 비하면 특별히 맛난 집은 별로 없다. 예전에 맛이 있던 집도 오랜만에 시골 와 먹어보면 기억 속에 그 맛이 아니다. 그전에는 맛난 것을 많이 먹어보지 못하기도 했고. 지금은 입 까다로워진 것도 맛집을 찾기 어렵게 한다. 그래도 이 약수 식당이 부근에서는 이름난 맛집이다. 주변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고향 오면 맛집으로 여기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식당은 약수로 닭을 요리하는 닭백숙 전문집이다. 닭다리는 녹두를 넣어서 백숙을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뼈를 발라서 닭 불고기를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주는 곳은 원래 신촌 약수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그렇게 만들어서 맛집으로 소문이 얻었는데, 그곳과 비슷하게 만들지만 다른 것이 있다. 

여기 맛집은 닭 불고기를 맛나게 석쇠로 굽어 낸다. 닭 불고기를 석쇠로 굽는 것은 신촌마을과 같은 방법이지만, 닭고기를 다져서 굽는 신촌과는 달리 다지지 않고 그냥 잘게 썰어서 굽어내는 것이 다르다. 아마도 굽는데 시간이나 잘 굽자면 요령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닭 불고기가 이 식당을 신촌마을을 넘어선 맛집으로 만든 것 같다. 


닭백숙을 약수를 넣어 끓이는 것은 약수터에서 많이 해 먹었다. 

부근에 약수가 나오는 곳으로 이름난 곳은 가장 유명한 곳은 달기 약수터이고, 그다음은 신촌 약수터였다. 이곳도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오는 약수터로 마당모기라는 곳이다. 마당모기 약수터는 산속에 들어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식당이 들어선 것은 약수가 나오기 때문에 그 약수를 먹으러 사람들이 모이니까, 식당이 생겼다. 

그때는 약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여름에는 식당을 할 만했다. 그때는 약수 먹으러 올 때면 식당에서 닭백숙을 시켜 먹기도 했지만, 집에서 닭을 잡아 가지고 와 약수탕에서 물을 떠다가 주변 한적한 개울이나 공터에서 솥을 걸고 끓여 먹었다. 약수터 주변에 가족들이 모여서 약수로 닭을 삶아 먹는 풍경을 복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마당모기에 처음 생긴 식당은 약수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주로 더운 복날에 왔기 때문에 여름 한철 장사였다. 마당모기에 첫 식당은 오랫동안 혼자서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한집이 더 생기고, 그다음에 이 식당이 생긴 것이다. 


약수 먹으러 가는 시절은 농사일이 한창 바쁘고 몸이 지쳐가는 한여름 복날이었다. 보통 약수 먹으러 집을 나서면 나들이옷을 입고서 가족이나 지인끼리 작은 보따리 하나씩 들고 나선다. 더운 날씨에 멋 내는 아주머니들은 이날은 양산도 들고 나오는 날이다. 농사일로 지쳐 쉬기도 하고 약수도 마시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은 약수터를 찾았다. 약수를 먹으면 몸에 좋고 더운 여름을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약수 먹으러 가는 날에는 장떡을 해서 가지고 간다. 장떡은 고추장이나 장물을 많이 넣어서 짜게 만들었다. 그렇게 짜게 만든 장떡을 먹어야 약수를 많이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장떡을 중간에 가면서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약수터에 도착할 때까지 목이 마르지만, 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약수터에 도착해서 배부르게 약수를 마셨다. 

더 넉넉한 집은 먹기 좋은 엿을 구해서 먹었는데, 엿은 달달한 것이 먹기도 좋고 물도 많이 써니까 약물 먹으러 가는 날에는 최고였다. 


큰 딸이 엄마를 모시고 온 식당은 옆 식당과 메뉴는 비슷하지만, 닭 불고기를 특색 있게 하는 집이라서 주변에서는 맛집이다. 이곳 약수터에서 이 식당은 세 번째로 열었지만 지금은 가장 잘 되는 곳이다. 옆에 있던 두 식당은 처음 생긴 식당은 문을 닫았고, 두 번째 식당을 찾는 사람은 이 식당에 자리가 없으면 가는 곳이다. 주변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나고부터는 예약을 해야 자리가 날 정도이다. 실제로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이 먹을 만한 곳은 이곳뿐이라고 할 정도이다.

사람이 늘 많이 몰리고 먼 곳에서도 찾아오면서 식당에서 단체 손님 승합 차를 운영하지 않아도 자가용으로 찾아오고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한다고 할 때도 이 식당에 많이 온다.

자식들도 일 년에 한 번씩 오면 이 집에서 맛있게 닭백숙을 먹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버이날을 전후해서 자식들이 고향에 오면 이 맛집으로 부모님을 보통 모시고 오는 것이다. 


식당 의자에 앉은 모친은 말없이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늘 익숙한 곳에 와서 그런지 별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말없이 큰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만 있다. 큰딸은 엄마를 즐겁게 하려는 듯 부지런히 옛날이야기도 하고 이웃 이야기도 하지만 엄마는 줄곧 말이 없다. 

주인은 능숙하게 밑반찬을 상위에 차린다. 반찬들도 정갈하고 맛나게 만들어 내놓았다. 먼저 닭 불고기가 나온다. 닭 불고기를 먹고 나서 닭 뒷다리가 하나 들어간 녹두 백숙이 나오면 다 나온 것이다. 

큰딸은 닭 불고기를 엄마가 먹으라고 권하고, 숟가락에 고기를 올려주어도 몇 번 먹고는 그만 먹는다. 닭백숙은 고기를 발라 먹기 좋게 해도 별로 먹지 않고 녹두죽만 여러 번 먹고는 그만 먹는다. 큰딸은 숟가락으로 녹두죽을 떠서 입에 넣어 주지만, 그것도 몇 번 받아먹고는 다 먹었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식욕이 없어서 그런지 잘 먹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측은하고 마음이 아프다. 

큰딸도 엄마가 별로 먹지 못하니까 식욕이 없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닭 요리는 맛은 있어서 자기 몫은 다 비웠다. 엄마의 그릇만 절반 이상 남았다. 


그래도 엄마는 딸이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지켜만 본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식당을 나서서 큰딸의 부축을 받고 차에 오른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엄마는 아직도 말이 없다. 지나가는 차창으로 익숙한 풍경인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큰딸은 돌아오면서 말 없는 엄마를 보면서 닭 요리가 맛이 있는데 왜 안 먹었느냐고 물어보고, 입맛이 없어서 안 먹었느냐고 물어본다. 

좀처럼 말이 없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요즘에 “이 집에 다섯 번 왔다"라는 말을 한마디 하고 다시 또 조용했다. 

어버이날이 있는 달에는 자식들이 자기 시간에 맞추어서 객지에서 다녀가는 것이다. 이때 오면 자식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이 집에 오는 것이다. 

큰딸도 생각해 보니까 벌써 다녀간 형제들이 네 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요즈음에 자주 왔을 것 같다. 엄마는 이 맛집에 거의 연속으로 자식들이 데리고 온 것이다. 너무 자주 왔으니까 이곳이 지겨운 것이다. 자식들은 오랜만에 오는 집이지만, 엄마는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온 집이다. 

그래도 엄마는 큰딸이 닭 요리를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엄마를 위해서 맛집을 찾아왔지만, 실제로 자기들이 먹고 싶어서 오는 집이었다. 


지금도 엄마의 기일이나 고향에 올 때면 그 맛집을 자식들은 찾아간다. 여전히 맛집이지만 큰딸은 이 집에 올 때마다 엄마가 했던 “다섯 번 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맛집이지만 자주 먹어서 지겨웠지만, 자식들이 좋아하니까 말없이 따라왔던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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