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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an 20. 2024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흐린 날씨에 소리 없이 안개비가 내리는 것 같다. 문밖을 나서면서 우산을 쓰지 않고 걷기 시작했지만, 내리는 비가 옷을 적실 정도는 아니다. 늘 아침이면 걷는다. 아직 어둠이 약간 있지만 익숙한 들길에는 늘 그러했듯이 조용히 아침이 밝아 온다.

오늘은 집을 떠나 큰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마음은 복잡하지만 떠나는 집은 정리하고서 가고 싶어 걸으면서 무엇부터 정리할까 생각을 해 본다.

집으로 돌아와 먼저 밀린 설거지도 하고, 냉장고에 넣을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해서 정리했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와서 침대 위에 있는 침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다음으로 한 것은 안 방과 거실에 있는 휴지통을 비워서 마당 가마솥 아궁이에 넣었다. 아직도 비는 조금씩 내리지만 그 아궁이에 넣은 휴지와 쓰레기에 불을 붙었다. 아궁이에서 타는 불을 보면서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내가 다시 돌아올 집이지만, 돌아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와도 정리된 집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다. 아궁이에 타는 불이 그런 나의 마음 확인하려는 듯 마지막 불이 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병원을 가는 이 아침에도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부터인지 “여기까지”를 자주 생각한다. 여기까지 잘 살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관계에서 비록 내 생각이 옳다는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옳은 것을 상대에게 주장해 수긍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생각을 전달하기도 두렵고, 자기 생각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사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에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관계가 좋지는 않지만,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여기까지에 만족하자는 것이다. 특히 가까운 관계가 생면부지의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다든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기 싫은 것이다. 최소한으로 서로 감정의 동요가 없는 옆 집사람이라도 되고 싶은 것이다. 


큰 병원에 갈 날이 정해지고 차분한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불안함과 감정의 기복을 느꼈다. 미래가 불안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혼자 있다가 보면 외로움을 느끼면서 우울해지고 마음의 편안을 찾지 못하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마음이 평온을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오래지 않아서 무료함을 느끼면서 지루하고 공허한 순간이 찾아온다. 

병원에 갈 생각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있어 그런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싶지만, 그것보다는 아직 나의 삶의 방향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변하는 것이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런 변하는 마음은 짧은 시간에 경험하니까 마음의 변화를 확실히 알았다.

혼자서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때 어느 순간에 기분이 가라앉고 새로운 것을 보아도 호기심도 없고 즐겁지 않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었다. 이러한 마음이 한없이 지속할 것 같아 한없이 맥 빠진 상태에 놓였는데 어떤 생각을 계기로 마음이 변화가 생긴다. 그 변하는 마음을 느끼는 순간 마음에서 의욕이 생기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과 여행이 즐겁고 활력을 느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변하는 감정을 느낄 정도의 마음을 경험한 것이다. 마치 즐거움과 행복함이 손에 잡히는 듯한 감정이었다. 

마음을 편안하고 자존감 있게 생활할 수 있는 감정도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변하는 감정을 마음이 바뀌면 가능하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이다. 그런 좋은 감정이 되도록 하는 것은 노력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니까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집을 떠나면서 정리 정돈을 하고 가려는 마음은 돌아올 때는 새로운 마음이 되어서 오고픈 마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관계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하고, 잘 잊히지 않지만 잊어야 마음이 편한 것은 잊어야 한다. 

잊어야 하는 것이 많다. 잊고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머리는 늘 외치지만 가슴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그만하고 받아들이고 내려놓아야 한다. 

집을 떠나서 병원으로 가면서 무엇을 잊어야 하고 내려놓아야 할지 몇 번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떠난 사람, 내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족으로 연을 맺은 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갖은 사람도 잊어야 할 사람은 잊으면서 모든 바람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 마음의 기복도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하거나 문득 떠올라서 그런 것도 있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잊어야 하는 것을 내가 놓지 않아서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보처럼 혼자 집착으로 스스로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대는 벌써 나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데 홀로 짝사랑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나도 확실히 모른다. 의사의 말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심각한 경우까지 왔다는데 결과까지 나쁘게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수술을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리 내어 반복해서 빌고 염원하면 그렇게 된다고 믿고 하라고 권하는 보살님도 있었다. 

병원의 결과가 좋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갖고 있지만 다른 결과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고 싶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것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여기까지”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살았다고 생각하고 만족하면서 마음을 오직 감사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제부터는 내가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병과 지내면서 어디까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쩌면 병원에서 최고로 얻을 수 있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나머지 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다짐도 병원에서 느끼기에 좋은 생각이다. 


우리의 삶은 고통과 죽음이 있어야 하는 과정이고 마무리되는 것이다. 병원에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서 지난 일을 정리하고 잊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지난날 주어졌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아파하면서 그 아픔 뒤에 편안함을 기대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보낼 시간을 아픔과 편안함을 모두 나의 삶의 몫이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고통의 시간도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한다. 홀로 살아가야 인생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독립하고 외롭고 고독한 삶을 선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무도 날 도와줄 사람 없다는 것도 느끼고 삶이 외롭지만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거창한 마음으로 병원을 가는 것 같지만, 이런 것을 계기로 나의 삶의 방향을 확실히 굳히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하지 않는 삶을 거창하게 만든다고 해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일생이다. 


모든 관계에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은 잊으면 안 되고, 그 고마움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엄마를 보낼 때 “엄마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꼭 그 말은 해보고 싶고, 하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이어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이 익숙지 않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야 하고, 만일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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