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May 08. 2024

두 마리 개


양쪽으로 산이 서 있고 물이 흐르는 개울 옆으로 만들어진 들길을 따라 이른 아침에 걷는다. 넓지 않은 들판이지만, 산이 막히지 않은 앞쪽은 멀리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 끝도 산이다. 끝에 보이는 산이 이 골짜기의 마지막이고 개울에 흐르는 물이 시작하는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이라 산속 들판 길은 조용하지만, 새들은 아침 먹이를 찾아서 부지런히 날아다닌다. 마을을 떠나서 한참을 걸어도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아침 공기를 들어 마시며 걷는 것은 상쾌하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산골의 작은 도로를 걷고 있는 분위기는 여유롭고 한가하다. 작은 도로에는 낮에 자주 다니는 농사차들도 아침 나오지 않은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 도로를 혼자서 걸어간다.


지금 계절에는 아직 농사일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부지런한 집들의 논은 갈아 놓은 곳도 보인다.  보통은 정리되지 않은 겨울철의 황량한 들판이다. 

걷기 시작해서 첫 마을 앞길을 지나면서 아침 연기가 올라가는 집이 있는지 살펴보지만 아직은 조용하다. 마을 아래쪽에 오래된 황초굴이 아직 두 채가 있어 눈길이 간다. 오래 손을 보지 않아서 곧 무너질 분위기이다. 황초굴은 예전에 집집마다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는데 아직 서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 마을을 지나서 길은 양 갈래이다. 직선으로 가는 길과 다른 골짝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직선 길을 따라 계속 걸어 간다.


지금까지 제법 걸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곧은 길을 걸어가면서 멀리 보이는 산밑 논길에 작은 동물이 움직임 보이는 듯하다. 눈이 나빠져서 멀리 있는 물체가 잘 구분되지 않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들길을 걸으면서 이제 눈은 그 움직이는 물체에 두고 걸어간다. 가까이 갈수록 무엇인지 짐작이 온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작은 개처럼 보인다. 

이제는 그 물체를 보기 위해서 도로 길을 벗어나 농로길을 따라서 그곳으로 갔다. 그 움직이는 것이 작은 강아지로 보이기 시작할 때쯤,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강아지들이 짖기 시작한다. 작은 것들은 짓는 소리만 들어도 어린 강아지인 줄을 알 것 같다. 강아지들이 낯선 사람이 다가오자 짓다가 농로 옆으로 난 수로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짓는다. 들판에 낯선 사람이 다가오니까 자기들의 보금자리인 것 같은 수로로 숨어 들어간 것이다. 작은 강아지들이 넓은 들판 수로 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을 지나서 다시 농노를 따라서 도로 길을 나와 다음 마을 입구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침에 걷는 코스이다. 돌아오면서 다시 강아지들이 있는 곳을 보면서 온다. 멀리 농노에 강아지가 다시 나와서 놀고 있는 것이 보이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농노로 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강아지들이 왜 들판에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을에 돌아와서 강아지에 관해서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 보니까 아는 사람이 있었다.

산불 감시 요원으로 있는 친구가 얼마 전부터 들판에 강아지가 보여 지나면서 자주 본다고 한다. 아마도 인근 마을이나 타지에서 강아지를 들판에 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임자 없는 강아지이지만 키워줄 사람은 없다. 아랫마을에 누군가 불쌍하다고 먹이를 준다고 한다. 강아지들이 말라보였다. 

산불 감시하는 친구가 얼마 전에 행정 담당 부서에 유기견 신고를 했는데, 그곳에 강아지들을 포획할 틀을 수로 위에 설치해져 있었다. 


다음날도 아침에 걷기를 하면서 그곳을 지날 때면 멀리서부터 강아지가 보이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늘 그 농노 수로 주변에서 강아지들이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아침 걷기 코스가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강아지가 있는 곳에서는 농노로 들어가 돌아서 나오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강아지들은 사람이 나타나면 요란하게 짓다가 가까이 가면 수로 밑으로 숨어 버린다. 사람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는 것이다. 수로 위의 포획 틀에는 좋은 먹이를 놓아두었지만 들어가지 않는다. 

산불 감시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처음에 포획 틀이 설치되었을 때 강아지들이 들어가 먹이를 먹다가 갇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포획 틀의 창살이 그렇게 넓은 것 같지 않은데, 그 창살 사이로 두 마리가 빠져 나온 것이다. 그때 강아지는 작기도 했지만, 잘 먹지 못해 말라서 빠져 나온 것이다. 

그 뒤로 강아지들은 틀 속에 좋은 먹이가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포획 틀의 먹이는 시간이 지나 볼썽사나운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틀의 입만 크게 벌리고 있다.


아침에 걷기를 계속하면서 강아지들도 커가는 것 같았고, 아직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계속 짓기만 하다가 그 짓는 소리가 줄어드는 듯 하다. 

강아지들의 짓는 소리도 이제는 우렁찬 개의 소리를 변해 갈 정도로 빨리 크는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먹이를 생각나면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먹이를 찾아서 들판을 돌아다니는 듯 하다.

어제부터인가 강아지가 작은 개처럼 보일 때에 아침에 만나면 수로 밑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지나갈때까지 지켜보다가 간혹 꼬리를 흔들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개들은 내가 들어오는 농노 앞에서 있다가 수로까지 꼬리를 흔들면서 따라오는 것이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분위기이다. 작은 개들이 그렇게 짓다가 이제는 아는 사람처럼 꼬리를 흔들려 따라오는 것이 낯설지만, 이른 아침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수로에 있는 집까지 따라왔다가 그 주변에서 머물면서 더는 오지 않았다. 개들이 이제는 자기들을 포획할 낯선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느 날도 윗마을을 지나 삼거리 길을 지나서부터 보이지는 않지만, 습관적으로 멀리 개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이 향한다. 이때 개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개 두 마리가 농노를 따라 열심히 뛰어온다. 신기하게도 개들은 도로까지 뛰어와서 나를 반기면서 내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반갑다는 표시를 진하게 하고 있다. 

나를 반가워하는 개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연신 개들을 돌아본다. 개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면서 수로에 있는 개집을 지난다. 개들은 수로 밑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농노를 따라 나를 따라온다. 오랜 주인이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면서 계속 도로까지 같이 걸어간다. 그때 사람이 지나다 봤다면 아마도 내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 나왔다고 했을 것이다. 두 마리를 서로 도로에서는 뒹굴면서 나보라고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이제 친해진 개들이 늘 농노에서 뛰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날부터 산속에서 뛰어 내려오는 개들이 보인다. 산속에 먹이를 찾아갔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까 농사철이 시작되어서 수로에 물이 내려오기 시작해 그동안 살던 곳에 보금자리를 산으로 옮긴 것이다. 그 뒤로는 산에서 내가 오는 것이 보이면 뛰어 내려와 따라 다녔다. 개들이 나를 아침에 맞이하는 것이 늘 한결같으니까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자기 개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침 걷기에서 귀엽게 구는 두 마리 개를 보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하루는 내려오는 산쪽으로 보고 걸어갔는데, 다가가도 개들은 내려오지 않는다. 지나쳐 가면서도 계속 뒤돌아 보았고,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는 다시 농노를 들어가 돌아왔지만, 개들은 보이지 않는다. 

개들이 보이지 않은 그날은 돌아오는 길에 두 마리 개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가득한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 낮에는 산불 감시하는 친구에게 개들을 안부를 물어보니까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에 걷기를 시작하면서 개들의 안부가 머릿속에 가득해서 그곳에 빨리 가려고 발걸음조차 빨랐다. 개들이 보이는 곳에 가까워 지면서 걸음은 앞으로 향하지만, 눈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다. 

그때 멀리서 흰 두 마리 개가 나를 보고 뛰어 오고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과 재회하는 심정이었다. 하루 보지 못해서 그런지 더 재롱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두 마리 개는 나에게 만나서 반가운 존재가 된 것이다. 


들판에서 만난 작은 개들이지만 나를 따르고 반가워하니까 마음속에서는 늘 사랑스러운 마음뿐이다. 좋아하는 관계에서는 무엇보다도 들판에 만난 작은 개들처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살아오면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아쉬운 일도 많았고, 표현하지 못한 순간의 망설임을 지금도 후회하는 일로 기억에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자기의 생각뿐만 아니라 특히 마음에 있는 정은 밖으로 표현해야 그 의미가 전달되고 서로의 가슴에 감동과 느낌을 만든다. 

감동이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자기 나름의 감동이 삶을 산다면 그 삶은 성공한 삶이다. 비록 남들에게 작은 것으로 보여도 상관이 없다. 


두 마리 개들은 나를 반기는 것은 자주 만나서 반가운 사이가 된 것도 있지만, 내가 먹이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매일 아침에 반기고 재롱부리는 것이다. 풀만 자라는 들판에서 무엇을 먹고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이라 먹을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데 힘차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작은 쥐나 개구리도 사냥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누군가 먹이를 계속 주기 때문에 강아지가 작은 개로 큰 것이다.  나도 반기는 두 마리 개에게 먹이를 줘야 할 것 같은데, 아침이면 생각나는데, 저녁이면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 정이 옅은 사람인 것 같다.


주변에 배추 농사하는 사람들이 개들을 약을 놓아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런데 개들은 아직 비닐이나 농작물을 어떻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두 마리 개들은 포획될 수도 있고, 야생 개로 자랄 수도 있다. 

넓은 들판에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들이 큰 개가 되면 먹이를 주지 않을 것 같다. 

그때는 야생에 있는 먹이를 찾지 않는다면, 가까운 마을로 내려가서 먹이를 찾아 다닐 것 같다. 지금까지는 버려진 강아지가 불쌍해서 먹이를 주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들개로 될 수도 있지만, 들판에 버려진 두 마리의 개는 몸의 크기나 모양이 무서운 사냥 들개로 자랄 수는 없는 체구이다. 

아침에 만나는 두 마리 개가 앞으로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불행한 유기견이 되지 않길 기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