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의 미봉인 피츠로이 트레킹을 먼저 하려고 했기에, 엘칼라파테 공항에 내려 잠시 갈등이다.
지금 비가 내리고 있고, 앞으로 며칠은 더 내린다는 예보다. 이렇게 피츠로이 트레킹 하러 엘찰텐에 가면 세계 3대 미봉이라는 피츠로이도 못 볼 것 같다. 원래 계획은 엘칼라파테 공항에서 곧바로 엘찰텔로 가려고 계획했었다.
일단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면서 먼저 엘칼라파테로 가서 빙하를 볼 생각으로 바꿨다. 빙하는 날씨가 좋으면 좋겠지만, 흐려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항에서 엘칼라파테 시내로 가는 티켓도 사고, 픽업하는 차를 알아서 타고 갔다. 여기도 처음 오는 곳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찾아가는 것에 대한 마음 걱정은 거의 없다. 부딪치면 해결된다는 것이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여기도 날씨가 추우니까 사실 따뜻한 곳만 생각났다. 이번에도 예약한 숙소가 따뜻한 곳이어서 도착해서 한잠 잤다. 전날 부이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노숙을 했기 때문이다.
한잠 자고 일어나도 아직 날씨가 흐리고, 이슬비가 내린다. 일단은 늦은 오후지만 엘칼라파테 시내 구경을 나갔다. 이곳은 로수글라 시아레스 국립공원 부근 도시로 2만 정도의 인구가 사는 작은 도시이다. 여기 국립공원의 주인공격인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가장 유명한 곳이다.
반 시간도 되지 않아 도시 중심가를 구경하고 더 볼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중심가에는 오래된 고목이 많고, 이태리포플러가 많은 도시인 것 같다.
중심가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트리처럼 만들어 놓은 엘칼라타페 글자가 쓰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엘칼라파테도 구름이 내려앉은 시골 읍 같은 동네이다. 주변에 돌아봐도 농토가 보이지 않고 무엇을 해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목축이나 관광으로 생활하는 것 같다.
돌아오면서 집들을 살펴보니까 호텔이나 호스텔과 음식점이 많고, 관광객을 상대로 한 점포들이 대다수이다.
다음 날 아침 사전에 예약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 투어 차량이 픽업하러 왔다.
관광객 주머니에 관심을 두는 곳인 만큼 모든 과정에 비용을 요구한다. 비용도 인터넷에 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훨씬 더 많이 받는다. 아르헨티나 경제를 핑계 삼아 모든 비용이 오른 것 같다. 칠레보다 더 비싼 것 같은 느낌이다.
날씨는 아직도 이슬비가 내리는 추운 날이다.
빙하를 체험하는 것도 여러 종류이다. 그냥 차로 투어 하는 경우와 차로 이동해서 보트로 빙하까지 가는 것도 있고, 빙하를 걷는 투어도 있다. 빙하를 걷는 투어는 50만 원 이상 받는 것 같다.
투어 픽업 차는 넓고 황량한 벌판 길을 한 시간 이상 달렸다. 그 황량한 벌판 도로 양쪽에는 목장 표시를 한 얕은 철조망이 쳐져 있다.
이 넓은 땅에 방목하니까 소고기가 흔하다고 한다.
누가 여기 오기 전 아르헨티나 가면 만원 만 주면 소고기를 다 먹지 못할 만큼 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배부르게 먹어 보니까 8만 원 정도 나왔다.
투어 차에 같이 가는 관광객은 모두 다섯 명이다. 각 숙소로 돌면서 남미 노인 부부 2쌍을 더 태웠다. 투어 차가 처음에 도착한 곳이 공원 입구, 입장료 받는 곳이다. 어제 투어 비를 모두 준 것으로 알았는데, 다시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내가 잘못 안 것으로 생각하고 입장료 4만 5천 원을 주었다. 이 나라는 카드 스스로가 없어서 카드는 잘 받아준다. 간혹 마스터 카드는 안되고 비사만 되는 곳도 있었다.
이제부터는 산길을 간다. 산길을 가다가 멈추어서 구경하라는 곳이 있다. 빙하가 처음 보이는 곳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푸른색 빙하가 안갯속에서 어렴풋이 보인다. 날씨가 흐리면 빙하는 더 푸른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제 빙하가 완전히 보이는 곳에 휴게실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경하고 5 PM까지 여기 내린 곳으로 돌아오라 하고는 끝이다. 이제부터 혼자서 페리노 모레노 빙하 구경을 나섰다.
안내판을 보니까 몇 시간을 돌아야 다 볼 수 있도록 계단 길을 만들어 놓았다.
처음으로 직접 눈으로 빙하 구경을 나섰다. 계단 따라 내려갈수록 빙하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나무에 핀 겨우살이가 꽃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꽃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천천히 계단을 따라가면서 빙하를 감상했다.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보면서 신기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볼거리이다.
처음에 생각하기를 빙하는 크고 거대하면서 깨끗한 물에 떠있을 것으로 상상했으나 물은 탁하고 전혀 깨끗하지 않았다.
빙하도 완전히 흰 얼음이 아니라, 중간에 흙이 쌓여서 만든 층이 뚜렷이 보였다.
가장 밑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빙하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서 빙하 감상을 했다. 이런 장관을 자주 볼 수 없기도 하지만,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녹아서 떨어지는 빙하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계단은 전망이 좋은 곳에는 의자와 돌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단체로 온 가족 관광객들은 이곳에 앉아서 음료와 빵들을 먹으면서 구경한다. 아이들에게 빙하가 떠들며 웃으면서 보는 재미난 볼거리인 것 같다. 조용히 빙하를 구경하는 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페리노 모레노 빙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라 불리는데, 남극과 그린란드를 제외하면 가장 큰 얼음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녹은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구 온난화와 연관을 살펴보고 있다고 하는데, 일 년에 350m의 빙하가 사라진다고 한다.
가장 가까이서 보면 가장 잘 보는 것이라 생각으로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곳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는 것 같다. 혼자 구경하니까 그 시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고, 빠진 곳 없이 보려고 계단이 있는 곳은 다 걸어보려고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니까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곳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다.
빙하 전체가 조망되고 경사진 단면도 가장 절도 있게 보이는 곳이다. 빙하의 전면이 보이는 곳을 늦게 찾아온 것이다.
빙하를 구경하면서 관찰된 것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빙하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빙하를 보니까 날씨가 맑았으면 엄청 좋은 풍광과 멀리까지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은 겨울이라 낙엽 진 나무도 있고, 고사 된 나무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푸른 상록수는 빙하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멀리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빙하로 한번 접근하고는 떠난다. 여기서도 충분히 빙하를 즐기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멀리 구름 낀 아르젠티노 호수가 넓게 보인다.
여행 중에 날씨가 좋으면 너무 좋은 날이다. 보통 이름난 봉우리를 보러 갈 때, 날씨가 좋으면 절경을 보지만 구름이 막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늘 보던 구름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그런 곳에 갈 때 날씨가 좋으려면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여행 중에 있기 마련이다. 매일 본인이 여행하는 날에 날씨가 좋을 수가 없다. 날씨가 흐려도 지나는 것이 여행길이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내려준 곳으로 돌아오니까 돌아가는 투어 차는 만석이다. 그동안 중국인 대 가족을 한탕 더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