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칼라파테에서 엘찰텐로 버스가 출발할 때에 눈이 많이 내린다. 오늘은 2층 버스 2층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풍광을 구경하면서 갔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중간에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린다. 길은 끝없는 평원의 직선 길이다. 염려와는 달리 버스는 눈 속에서 계속 달린다.
눈 내리는 평원이지만 사슴과 소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두 시간을 눈 내리는 길을 달리니, 눈이 서서히 그친다. 엘찰텐이 얼마 남지 않아서는 해가 뜬 것이 보인다.
피츠로이 트레킹을 파타고니아 성지로 표현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봉이다. 남미 여행에서 예전에는 마추픽추, 우유니 소금사막, 이구아수 폭포를 꼭 가야 할 세 곳이라 했는데, 요즈음은 이구아수 폭포 대신 피츠로이 트레킹을 꼽는다고 한다. 그만큼 피츠로이산은 아름답고 오르고 싶은 곳이다.
버스가 엘찰텐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구름이 걷히고 멀리 피츠로이 미봉이 보인다.
이 미봉을 날씨가 좋으면 버스에서도 볼 수 있지만, 흐리면 바로 밑에 가도 보이지 않은 피츠로이다. 멀리서 보이는 피츠로이는 너무 멋있고 그 주위의 산도 이 넓은 평원에서 돛 보인다.
이렇게 멋진 피츠로이를 지금 올라가면 되지만, 왕복 20Km이므로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돌아올 수 있다. 일단 알찰텐 마을에 여장을 풀고 날씨를 살펴야 한다.
다음날은 내내 눈이 내려 피츠로이에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엘찰텐에서 하루를 더 묵으면 날씨가 좋은 것으로 예보된다.
피츠로이 트레킹에서 피츠로이 미봉을 잘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웃스게 소리를 하지만, 나는 피츠로이를 보기 위해서 엘칼라파테 에서부터 삼 일을 기다렸다.
날씨가 좋은 날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날이 밝기도 전 8시에 출발을 했다. 어제 다녀온 길을 생각하면서 어둡지만, 눈길의 눈빛을 따라 올랐다.
처음에 오르막 반 시간을 지나면서 길이 눈에 들어왔고, 해가 뜨려고 동쪽부터 밝아 온다. 오르막을 지나 쉬운 산길을 갈 때, 멀리 피츠로이가 햇빛을 받아서 붉은 봉우리 위쪽이 보인다. 이 봉우리가 눈이 오지 않았으면 더 붉은빛이 강렬하여 불타는 고구마처럼 보인다고 한다.
피츠로이 봉도 산으로 올라감에 따라 사라지고 눈 덮인 나무 숲길을 올라갔다. 3Km 왔다는 표시를 지나니까 호수와 다른 전망대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번에는 호수 대신 다른 길로 눈 덮인 나무 사이로 갔다. 올라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길은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나무 사이를 지나면서 갑자기 환해지고 피츠로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날씨가 추운 것도 잊고, 눈이 고정되고 탄성이 나온다. 정면으로 보는 피츠로이는 정말 멋진 미봉이다. 한참을 그곳에 서서 사람들이 왜 이곳에 오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피츠로이 봉우리는 지금 눈과 추워서 약간 얼어 있는 느낌이다.
아직은 갈 길은 먼 데, 눈길이 깊어진다.
눈 속에서 나무들이 눈꽃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부터는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도랑과 같이 있는 길은 조심해야 한다. 이 추위에 도랑물에 빠지면 낭패이다.
계속 걷다가 다시 만난 것이 호수에서 오는 길과 마주치는 지점을 지났다. 여기서부터 아주 작은 언덕을 오르다가 다시 나무 숲길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아침 해가 떴는 것을 보면서 햇살이 비치는 눈길을 걷는다.
눈은 더 깊어지고 가는 길에 눈 덮인 나뭇가지가 몸에 스쳐 눈이 얼굴을 떨어진다. 그래도 간간이 보이는 피츠로이 미봉을 보면서 걷는데, 힘을 얻는다.
나무 숲길을 지나면 계곡의 물이 흐르는 눈 내린 계곡길을 걷는다. 이곳에 나무다리는 참으로 요긴한 다리이다.
먼 산을 보면서 작은 강물을 따라서 걷는 들판 길을 걷는다.
지금 걷는 길을 햇볕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주위의 산들은 모두 햇볕이 들어와 햇볕을 기다리며 가는 길이다. 부지런히 걷고 걷는 것은 피츠로이를 가장 가까이 서 보겠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다. 설산의 아름다움은 단조롭지만, 그 나름의 멋이 있다.
가는 길은 눈 덮인 작은 나무들이 눈 사이에서 곳곳에서 아담하고 탐스러운 눈꽃을 피우고 있다.
멀리 피츠로이 봉이 눈에 언 것처럼 보인다.
다시 나무다리를 다시 건너서 나무 숲길을 갈 때 6Km 표시를 보았다.
제법 큰물이 흐르는 작은 강을 보면서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이곳을 지날 때 물들이 있는 평원은 나무로 만든 다리를 여러 개를 놓아서 신발이 젖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다시 눈이 덮인 길을 따라서 가다가 오른쪽으로 서서히 올라간다. 곧이어 8Km 표시를 보면서 오르막을 오른다.
그렇게 급한 오르막은 아니고 완만하지만, 멀리 보이는 피츠로이를 오르자면 있는 급한 언덕을 넘어야 한다. 눈이 많이 쌓여서 길은 보이지 않고 앞에 보이는 언덕을 향해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눈 덮인 나무숲 사이를 한참 가다가 쉬어가라는 나무 오두막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앞으로 올라갈 곳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 오두막에 갑자기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든다. 이 산중에 사람을 찾아서 날아든 것인지, 주위를 돌다가 나중에는 다른 새까지 날아왔다.
지금부터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으로 눈도 많이 쌓여 있다. 여기서는 피츠로이가 보이지 않고 앞에 있는 저 높은 언덕을 넘어야 보일 것 같다.
오르막은 계속 이어지고 경사도 심해진다. 숨도 차고 힘든 길이다.
오르막 눈길 속에 잘생긴 나무를 보면서 올라가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까 더 멋진 나무가 설산에서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큰 숨을 쉬면서 꾸준히 오른다.
이제는 경사가 너무 심하고 눈이 많이 쌓여 한발 한발씩 오른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까 아찔한 기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다.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힘이 들어서 올라가기 어려워 잠시 눈 속에 한참 서 있다. 이때 머리가 어질 거리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갑자기 몸이 이러니까 당황스럽지만, 여기서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래도 피츠로이 밑에 가고 싶은 마음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느낌을 받으면서 준비해 간 사과를 하나 먹으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기운이 조금 돌아온 느낌을 받았지만, 조금 지나니까 또 힘이 빠진다. 나머지 사과도 먹고 조금 좋아진 기분이지만 그래도 기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참 뒤에 오던 외국인 커플이 나를 앞질러 간다. 지금은 눈이 너무 쌓여서 미끄러지면 바닥까지 굴러갈 것 같아 정신은 놓지 않았다.
보이는 언덕만 넘으면 피츠로이가 보일 것 같아 천천히 있는 힘을 다해서 오른다. 8Km에서 두 시간 가까이 오르고 있다. 앞서간 두 사람은 벌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 언덕에 올랐다. 그런데 그곳은 정상이 아니었다. 다시 내려가 다른 언덕을 넘어야 정상인 것이다. 앞서간 사람들이 발자국이 눈 위에 나 있다.
더는 못 올라갈 것 같아서 그 자리에 한참 눈 위에 앉아서 쉬었다. 쉬어도 숨이 차고 힘도 없다.
다시 앞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눈 위를 한발 한발 언덕은 보지 않고 눈만 보고 걸었다. 얼마나 오래 힘들게 걷다가 보니까 언덕 위에 올랐다.
눈 덮인 피츠로이가 거기 있었다. 너무 멋진 광경이었다.
다시 더 바닥으로 내려가 피츠로이를 올려다보고 기를 쓰면서 다시 올라왔다. 뒤에 다시 올라온 사람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정상에서 한참 쉬면서 피츠로이를 구경하다가 정신 바짝 차리고 내려왔다. 올라갈 때보다 눈이 녹아서 미끄러워 힘이 들었지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오두막까지 내려왔다. 이제 정신이 돌아와 생각해 보니까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올라가려는 마음만 내세운 것이다. 돌아서 산을 보면서 눈 덮인 오르막을 오르고 내려오는 아찔한 생각이 들자, 보통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렇게 위험할 줄 알았다면 지금 생각하면은 여기서 돌아갔을 것 같다.
돌아오면서도 비슷하게 힘도 없고, 기력이 빠진 느낌이다. 그래도 두 다리가 힘이 있어 걸어주니까 걷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빈 물병에 받아 마시면서 오니, 조금은 견딜만하다. 아마 탈진 상태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온 것이다.
이번에는 갈림길에서 호수 쪽으로 내려왔다. 눈 덮인 호숫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새를 보면서 피츠로이 설산 트레킹의 시작한 곳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