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Oct 23. 2024

서해랑 길 33일차

군산 첫 시내버스 시간에 맞춰 창바이 교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하다. 안갯속에 강 건너 김제 신창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오늘은 만경강을 따라 군산에서 걷는다. 처음 시작하는 길은 잘 포장된 강변도로이다. 조용한 직선 길을 걸어간다.

시작하는 초입 도로변에 노란 꽃이 보인다. 흔하고 친숙한 호박 꽃이다. 노란 호박꽃 앞에 걸음을 멈추고 오래 바라본다.


순박하고 커다란 호박 꽃은 진한 노란색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호박 꽃은 흔해서 눈길이 가지 않지만, 자세히 보니 이쁘다. 벌들이 잘 찾아오라고 넓고 크게 활짝 벌려 피어 있다. 호박 꽃에는 단골로 찾아오는 호박벌이 있다. 호박벌도 퉁퉁하게 생긴 것이 호박 꽃만큼이나 큰 벌이다. 

호박 꽃은 선이 굵고 다섯 갈래의 넓은 꽃잎과 중간에 우뚝 솟아있는 수술이 복스럽다. 이 노란 수술에 붙어서 꿀을 따는 호박벌의 뒷다리에 꽃가루 묻혀서 날아가는 때가 호박 꽃의 시간이다. 

흔히 못생긴 사람을 호박에 비유한다. 호박은 여러 모양으로 둥글게 생긴 것이 보통이다. 그 호박도 가을 녘 밭둑에 누렇게 익어서 골이 선명하고 동그란 호박은 너무 잘 생겼다. 

호박은 어디에 심어도 잘 자란다. 논둑이나 밭둑에 심기도 하지만 집 담장 밑에도 심는다. 어디 더럽고 울퉁불퉁한 땅이라도 호박 넝쿨은 자라서 덮어버린다. 그리고 노란 꽃이 활짝 핀 다음에 둥근 호박이 달린다. 아스팔트 위도 뻗어 나가고, 나뭇가지도 타고 오르고, 덤불도 올라가 덮어버린다. 그렇게 험한 곳에서 자라 어김없이 호박이 달린다. 호박이 자라는 곳은 작은 공간이나 비탈진 곳에 다른 작물 대신 자란다. 

그런 호박을 다른 것과 비교하니까 못생긴 것으로 여겨진다. 주로 수박과 비교되지만, 그렇게 비교할 필요가 없다. 호박을 호박으로 보고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비교하지 않으면 좋은 호박인 것처럼 사람도 비교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호박벌이 퉁퉁한 몸으로 소리 내면서 호박 꽃에 머리를 박고 꿀을 찾는다. 

돌담에 올라가 무성하게 덮은 호박에 호박 꽃이 피어 온통 노란 돌담이다. 돌담에는 노란 꽃들 수만큼 호박벌이 앉고 날아다닌다. 아이들은 담장에 서서 호박 꽃에 들어간 호박벌을 확인하고는 호박 꽃잎은 모아서 호박벌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 호박 꽃을 따서 빙빙 돌리다가 땅바닥으로 내려쳐 버린다. 호박 꽃에 든 호박벌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당해 버린다. 아이들이 호박 꽃을 따서 그렇게 노는 것이 즐거운 놀이였다. 그래도 호박벌은 아이들에게 잘 달려들지 않는 순한 벌이다. 그때는 호박벌이 그렇게도 많았는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호박 꽃만큼이나 친숙했던 호박벌이었다. 


만경강을 따라 걷는 길을 이십 리 가까이 걷었다. 강변의 풀들과 갈대들을 보면서 걷는 길은 아침 길이라 상쾌하다. 멀리 금광리 다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오른쪽 농노 길로 간다. 

들판의 농노 길을 십 리 정도 걷는다. 이곳은 완전한 시골 풍경이다. 시골 풍경에서 작은 언덕길을 넘으면 회현면 사무소가 나온다. 회현면은 시골 면에 있는 것처럼 하나로 마트가 보이고 제법 크다. 소재지를 지나서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산속에는 큰 저수지가 기다렸다.


이곳은 군산 호수로 군산 저수지이다.

산속 저수지를 따라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 있고 산책객들이 많이 보인다. 저수지 둘레 따라 걸으면 몇 시간이 필요하지만, 서해랑 길 코스 따라 걷는다.

산속 호숫가에 울창한 나무 밑으로 난 길은 시원하고 햇볕을 가려주어 너무 걷기 좋다. 오르막도 없고 나이 든 노인들도 천천히 갈 수 있는 길이다. 

원래 농업용수로 개발한 인공저수지이지만, 지금은 군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었다. 저수지 대나무 숲길을 지나가는 길은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저수지 가에 서 있는 나무 전망대에 노부부가 다정히 저수지를 바라보며 앉아서 쉬고 있다. 저수지를 숲길을 지나서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내려가는 길은 다시 들판의 농노이다. 긴 농노를 따라 지루하게 걷는다. 그곳 작은 농수로에 낚시 우산 아래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는 강태공이 한없이 여유롭다. 나도 낚시를 저렇게 즐기고 싶어진다. 지나면서 농수로를 유심히 보니까 날렵하게 움직이는 고기가 보인다. 붕어가 제법 많이 살고 있다. 또 지나는 길에 우렁이를 줍는 아주머니도 만났다. 한참을 서서 우렁이 줍는 것을 구경하다가 다시 길을 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들판 길도 다시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 서해랑 길 53코스를 마친다. 순식간에 시골에서 도시로 변했다. 



















작가의 이전글 서해랑 길 32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