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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Oct 17. 2024

서해랑 길 32일차

이른 아침 심포항에는 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하다. 심포항 끝나는 부근에서 작은 산으로 오른다. 산길을 가다가 보면 “새만금 바람길”이라는 표시가 있다. 이 길 이름이다.

새만금 바람길은 산에서 내려와 만경강 하구의 갈대숲 길로 이어진다. 바다는 보이지 않고 하구의 무성한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갈대밭에 바람개비로 서해랑 길을 표시해 놓았다. 갈대숲 길을 걷는 정취가 색다르다. 아무도 없는 가을 갈대숲을 떠오르는 추억도 없이 걷는다. 추억보다도 어제 내린 빗물이 고여 있는 곳을 피해 가는데 정신이 갔다. 바람개비는 색깔별로 만들어져 길을 만들고 그 길도 갈대가 높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바람개비와 같이 가니까 멀리 바람개비로 만든 문이 보인다. 이 바람개비 문을 지나서 마지막에는 코스모스 밭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래 걷는 경우가 많다. 걸으면서 좋은 경치와 새로운 것의 호기심도 있지만, 그래도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

시작할 때는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좋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길이 있었던 것과 만든 것에 감사하는 생각을 갖는다. 길이 있어서 걸을 수 있고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얻은 것 같은 감정도 생긴다. 

이렇게 좋은 길도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프고 걷기를 마치는 오후가 되면 다리가 천근처럼 무겁다. 또 발이 아프면 즐거움은 많이 줄어든다. 그렇지만 걷기를 마치고 하룻밤을 지나고 아침이 오면 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피곤했던 다리와 발도 회복이 되어 즐겁게 걸을 수 있다. 그래서 아침이 오면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들은 아침이면 그렇게 새날처럼 기력이 돌아오는 것이 즐거움의 시작이다. 이 두 가지가 있어서 걷기를 계속하는 것 같다. 


지금 지나는 들판은 만경강 농수로를 따라 보이는 넓은 평야를 보면서 걷는다. 

여기는 콩밭도 있지만, 아직 벼농사하는 논들이 더 많은 곳이다. 들판에는 황금빛의 벼들이 수확을 앞두고 서 있고 추수한 곳도 많이 보인다. 

벼들이 제대로 서 있지 않고 누워 버린 곳이 보인다. 너무 비료를 많이 주어서 웃자라 이렇게 된 것이다. 비료를 많이 주면 수확량이 많아지지만, 이렇게 눕는 것이 문제이다. 누워버리면 수확하기도 힘들고 새들이 찾아오고 누운 벼는 땅에 닿아서 싹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논둑에는 아침이라서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다.

농수로를 따라 걷다가 멀리 벼를 수확한 논에 소먹이로 만든 공룡알을 가지런히 둑 밑에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들판에서 보는 반듯한 정리 정돈이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다.


만경강의 넓은 들녘에 아담한 정자가 보인다. 저곳에 올라가면 주변 들녘이 내려다보이고 만경강의 넓은 갈대밭과 바다로 가는 강물도 보이는 전망 좋을 곳일 것 같다.

들녘이지만 만경강 변에 위치해서 뒤에는 김제평야가 건너는 군산이 보이는 곳이다. 오르니 앞이 확 트였다. 이곳은 만경 8경 중에 일경으로 만경 낙조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넘어가는 해는 만경강을 붉게 물들이고 갈대숲과 어우러져 만경 1경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낙조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만경강을 따라 걷는 강변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길이다. 

이 길에는 양쪽에 갈대가 바람에 춤추고 오직 앞에 보이는 길을 보면서 걷는다. 끝없이 갈대 들판에 난 길을 갈대를 보며 걸으면 가을이 절로 다가온다. 아무도 지나지 않고 혼자서 걷는 넓은 갈대 들판은 또 지나는 가을이 느껴진다.

키 높이의 갈대가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긴 길이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걷고 나서 만경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세 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고 중간에 놓인 오래된 다리가 “새창이다리” 이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만경 대교로 불리다가 이제는 사람만 다닐 수 있도록 하고 다리 위에서 쉬면서 만경강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새창이다리”를 건너면서 만경강을 내려다본다. 다리 위에는 낚시하는 젊은이들이 보이고 밑으로 흐르는 만경강은 김제의 넓은 들의 비옥하게 만든 젓 줄 같은 물이다. 다리를 건너니 군산에 들어섰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김제 마을을 건너보면서 지나는 노인에게 말을 붙인다. 노인도 사람이 그리운지 다가와 말을 받아준다. 이 강에 예전에 물고기가 “겁나게 많았다"라고 하면서 지금은 별로라도 나직이 말한다. 이 다리를 오래 건너다니면서 세월을 보냈고 이제 이 다리와 같이 나이 들어 조용히 지내는 노인은 다리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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