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Oct 16. 2024

서해랑 길 31일차

힘차게 흐르는 만경강 강물을 보면서 전에 자주 보았던 것처럼 반갑다. 변함없이 힘차게 흐르는 강을 보면서 건너편 부안 들이 보인다. 다시 김제 들 넓은 지평선을 보면서 황금물결을 예상했지만 아니다.

넓은 들에는 벼를 심은 곳도 있지만, 누런빛과 알록달록한 콩밭이 대다수이다. 벼농사보다 콩 농사 수익이 많으니까 김제의 지평도 가을 들녘이 변한 것이다. 예전에 벼들이 황금들판이 이루던 시절을 상상만 해본다. 

만경강 뚝을 따라가면 들녘 가운데 알콩 쌀콩 체험관이 보인다. 이름이 특이하다. 이 주변에도 거의 콩밭이다. 

콩밭을 들려다 보니 비닐을 깔지 않고 고랑을 넓게 만들고, 넓은 고랑에 두 줄로 콩을 심어 놓았다. 이것은 기계로 파종하고 수확하기 때문에 고랑이 넓게 만든 것 같다. 황금물결을 이루는 벼보다 풍경은 별로이지만 그래도 넓은 김제평야는 가슴이 시원하다.


이른 아침에 가슴 트이는 들판을 걸어가면 다시 걷는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한가하게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이런 기분을 오래 가지고 가야 하지만, 곧 잊힐 것이다. 늘 걷는 일상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힘든 생각이 나고 지루함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지금과 같은 마음을 오래 생각하고 싶다. 보이는 것이 처음 보는 것이며 신비로운 동심으로 돌아가서 걷고 싶다. 비록 걸음걸이는 느려지더라도 마음은 젊어지고 싶은 것은 보통 사람의 바람이다. 좋은 길을 기쁨 맘으로 걸어간다.


봄에 시작한 서해랑 길을 더워서 다음에 다시 걷기로 하고 김제 땅에서 돌아갔다가 돌아왔다. 

아직 마지막까지는 1000Km가 남았다. 

몸이 많이 나빠져서 걸음도 늦어지는 기분이고 힘도 떨어진 것 같다. 전에 걷던 기력이 아니어서 끝까지 갈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다시 시작한 길을 잘 걷고 싶고, 그러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싶으면 돌아갈 것이다. 깊은 숨쉬기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갖고 싶다. 지금 한적한 김제의 넓은 지평선 농노는 구름이 가려서 걷기 좋다. 간간이 빗 방물이 떨어지지만,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다.


들판 길을 걷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쳐다보니 철새들이 이동하고 있다. 이동하는 철새 대열은 서로 신호를 보내면서 날아가고 있다. 먼 길을 가는 철새들이 힘 있게 나르면서 내년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있어‘”라는 인사를 하듯 소리를 내면서 날고 있다. 

고향에서 떠나올 때 제비들도 며칠 전에 떠났었다. 제비들이 늘 전깃줄에 길게 앉아 꼬리를 까딱거리면 놀다가 지치면 하늘 높이 나르던 것을 여름내 보았다. 나는 모습도 물찬 제비처럼 선을 길게 하면서 시원스럽게 날던 제비였다. 언제까지 주변에 그렇게 날고 놀 줄 알았던 제비가 며칠 전에 하늘을 쳐다보니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익숙하게 날던 제비가 어딘가 있겠지 생각하면서 하늘 여기저기를 보아도 제비는 날지 않았다. 지붕 밑 제비집에도 제비는 없었다. 언제 떠났는지 보이지 않는 제비가 야속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그렇게 이웃하면서 지내다가 인사 없이 떠난 제비가 야속했다. 여기서 떠나는 철새를 보면서 제비가 보고 싶어진다. 


김제 들판에 멀리 메타세쿼이아 길이 보인다. 아마 그 길을 걸을 것 같은데 그곳을 보고 가다가 길을 잃었다. 그래도 지도에서 나오는 수교를 쉽게 찾아서 다시 리본을 따라 걷는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줄 알았는데, 그 길은 가지 않고 입구에서 수교 쪽으로 갔다. 수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농수로를 따라 걷는다. 

멀리 익어가는 감나무가 보인다. 그곳으로 가까이 가니 홍시도 보인다. 

벌써 일부 홍시는 떨어져 바닥을 벌겋게 만들어 놓았다. 아직 나무에 달린 홍시도 멀지 않아서 바닥에 떨어질 것 같다. 감나무가 있는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다. 곧 떨어진 홍시를 하나 땄다. 관리하지 않아 흰 가루병이 보인다. 주인이 있어도 흰 가루병이 있는 홍시는 따 먹어라도 했을 것 같다. 

홍시를 맛보았다. 그래도 홍시는 달았다. 옛날 할아버지가 따 주시던 홍시가 생각난다. 그 홍시는 너무 달고 가을에 먹는 별미였다. 


비가 가늘게 온다. 일기예보에는 3시에 온다 했는데 일찍 시작한 것이다. 우비를 입을 정도는 아니지만 내린다. 이렇게 내리는 비를 맞고 걷는 것도 기분 좋은 것 같다. 풍광은 흐리지만 걷기에는 그만인 날씨이다. 

다시 일기예보를 다시 보니까 비가 오는 것으로 나온다. 이렇게 맞지 않은 예보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걷는 첫날이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지금은 몸 상태가 괜찮지만 걸으면 힘이 들 것이고, 아침에는 좋지만 오후는 힘들어진다. 이것들이 세상의 이치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편한 삶이다.  


길을 걸으면서 집착을 생각해 본다. 그 집착을 버리는 것을 마음 내려놓는다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었다. 

집착에서 벗어나면 마음의 근심이 없어지고 욕심도 없는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희망도 집착의 굴레에 들어갈 것이다. 집착에 벗어난다는 것은 희망도 버리고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과 다른 의미이다. 삶도 집착에서 벗어나면 마지막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나 기대도 집착의 가벼운 표현일 것이다. 이것만 버려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걷기는 그런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생각이나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걸으면서 적은 것이라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다.


김제는 코스모스 길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많이 보아 온 코스모스는 향수를 자극하는 꽃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그리운 사람이 나올 것 같은 마음이다. 

코스모스 길을 지나서 작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이 산 이름이 봉화산이다.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때 봉화산 오른 적이 있었다. 그다음에 또 봉화산을 만났다. 그때 봉화산이 가장 흔한 산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봉화를 올리던 산을 모두 봉화산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래서 서울 부근에 가면 봉화산 더 많다고 한다. 


봉화산을 내려와 조금만 걸어가면 심포항이다.

내리는 비는 조금씩 계속 내리지만 그래도 비를 맞고 걷는다. 멀리 51코스의 종점인 심포항이 보인다. 조용하고 한적한 작은 항구이다. 지나는 사람도 없는 항구에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다. 

대표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다섯 손가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