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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Sep 27. 2024

다섯 손가락


어버이날을 이틀 지나 큰딸이 엄마를 보러 고향에 왔다. 다른 형제들은 다 다녀가고 엄마가 어버이날이 지나면 허전할 것 같아 이제 온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리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전화하지 않고 그냥 갔다. 

고향 집 대문이 열려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리운 마음에 “엄마” 하고 불렀다. 거실 바닥에 돌아앉아 있던 엄마는 반가운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고개 돌리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돌아보는 엄마 얼굴은 환히 웃는다. 큰딸이 올 줄 알았다는 얼굴이다. 웃던 얼굴이 다시 기력이 없는 모습이 된다. 

큰딸은 그런 엄마가 반가워 손을 잡지만, 이제 뼈만 남은 손이다. 큰딸은 손으로 엄마 얼굴을 만지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과 눈곱을 떼면서 자기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와서 청소하지만, 엄마가 필요한 것을 더 정리한다. 엄마는 안방과 거실을 일어서지 않고 엉덩이로 오간다. 정리를 마치고 엄마에게 점심 하러 가자고 했다. 겨우 일어서는 엄마를 천천히 옆 좌석에 태우고 출발한다. 


고추심기가 끝나 들판은 연한 연두색을 띠고 있다.

차는 아랫마을과 두 마을을 더 지나 예약한 식당으로 향한다. 이 길은 엄마 시집오던 길이다. 큰딸은 연신 엄마에게 말을 하지만 엄마는 말없이 지나는 풍경을 바라본다. 새색시 시집오던 그때를 생각하는지 스치는 풍광에 눈을 고정되어 있다. 그러다가 큰딸이 말 없는 엄마에게 자기 어릴 때 이 길을 엄마 따라 약수탕에 물먹으러 갔던 일을 꺼낸다. 엄마의 눈이 약간 생기가 도는 듯하더니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엄마는 삼대가 같이 농사 일하는 대가족 맏며느리였다. 농사일이 바쁘고 지쳐가는 초복 즈음에 약수탕에 물먹으러 왔다. 엄마는 별난 시어머니 모시고 준비하고 수발 들려고 왔었다. 

시어머니가 언제 약수탕에 물먹으러 간다고 하면 그날 엄마는 바쁘다. 장떡을 만들어 보따리에 싸고 집에 남은 사람들 점심도 준비해 놓았다. 미리 단장을 마친 시어머니는 숨 가쁘게 재촉을 한다. 그래도 정신없이 바쁘지만 약수탕 가는 날은 엄마도 나들이 가는 날이다. 그때 십여 명이 가면서 어린 큰딸도 따라나서고 젖 먹는 동생은 엄마 등에 업혀서 갔다. 큰딸은 어른들 틈에서 종종걸음으로 갔는데 먼 길이다. 엄마 친정은 약수탕 가는 길에서 십 리 더 가면 있다. 엄마는 더 산골로 시집왔는데, 살면서 삼십 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약수탕에 오는 날이 힘들었지만 즐거운 원족이었다.


대가족이 가다가 쉬면서 장떡을 나눠 먹는다. 장떡은 아침밥 위에 삼배 보자기에 밀가루와 고추장과 장물을 버물어 짜게 만들었다. 별맛 없지만 그래도 다 같이 먹으니까 처음에 무겁던 장떡이 약수탕에 도착하면 거의 빈 보자기이다. 

약수탕은 농사일에 지쳐 쉬는 날이기도 하고 약수를 마시기 위해 한 해 한번은 갔었다. 약수를 먹으면 몸에도 이롭고 더운 여름을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짠 장떡을 먹어야 약물을 많이 마실 수 있기에 떡은 중간에서부터 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약수터에 도착할 때까지 목은 마르지만,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약수터에 도착해서 배부르게 약수를 마셨다. 더 넉넉한 집은 먹기 좋은 엿을 가져왔다. 엿은 달아서 먹기 좋고 물도 많이 써니까 약물 먹으러 가는 날 최고였다. 


약수 먹으러 걸어왔던 마당도 기 약수탕은 시오리 정도 떨어진 곳이다. 엄마가 젊어서 왔을 때는 약수가 넘치게 나왔는데, 지금은 약수도 기력을 다했는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곳에는 지금 닭백숙을 하는 두 집이 있다. 그곳에 엄마와 큰딸은 가고 있다. 그 길 주변은 그대로이고 걸어오던 길을 차로 한참 이면 온다.

약수탕에 도착해 엄마를 식당 안으로 부축해 앉힌다. 식당 주인이 엄마에게 인사하며 반가워한다. 엄마는 집에서 의자에 앉을 때까지 “집에서 먹자"라는 한마디 했다. 큰딸은 말 없는 엄마에게 여러 말을 걸어 보지만 눈만 껌벅거리고 귀찮은 듯 말은 하지 않는다.

이 집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맛있다고 하는 곳이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닭백숙집이다. 예전에 맛집도 오랜만에 시골 와 먹어보면 기억 속에 그 맛이 아니지만, 이 집은 맛있다고 한다. 주변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고향 오면 맛집으로 여기 찾는 사람이 많다. 


이 식당은 약수로 닭을 요리하는 닭백숙 전문집이다. 닭 다리는 녹두를 넣어서 백숙을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살을 발라 닭 불고기를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주는 곳은 원래 신촌 약수탕 식당에서 그렇게 만들어서 맛집으로 소문이 얻었다. 이 집은 그곳 따라 비슷하게 만들면서 약간 다른 것이 있다. 

여기 집은 닭 불고기를 그냥 잘게 썰어서 석쇠에 굽어 낸다. 닭고기를 다져서 석쇠에 굽는 신촌과 다른 것이다. 물론 여기에 양념과 요령은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밑반찬이 잘 나온다. 이 식당을 신촌 약수탕을 넘어선 맛집이 된 것 같다. 


마당도 기 약수탕에서 이 식당은 세 번째로 열었지만, 지금은 가장 잘 되는 곳이다. 옆에 있던 원조 식당은 문을 닫았고, 두 번째 식당은 여기 자리가 없으면 가는 곳이다. 주변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나고부터는 예약을 해야 자리가 있다. 실제로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은 주변에서 먹을 만한 곳은 이곳뿐이라고 할 정도이다. 사람이 많아지고 단체 손님용 승합 차를 운영하지 않아도 먼 곳에서도 찾아온다. 


식당 의자에 앉은 엄마는 말없이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늘 익숙한 곳에 와서 그런지 별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말없이 큰딸이 이야기 듣고만 있다. 큰딸은 엄마를 즐겁게 하려고 부지런히 옛날이야기도 하고 이웃 이야기도 하지만 엄마는 줄곧 말이 없다. 주인은 능숙하게 밑반찬을 상위에 차린다. 반찬들도 정갈하고 맛나 보인다. 먼저 닭 불고기가 나왔다. 닭 불고기를 먹고 나서 닭 뒷다리가 하나 들어간 녹두 백숙이 다음으로 나온다. 


큰딸은 닭 불고기를 엄마가 먹으라고 권하지만 좀처럼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큰딸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입에 넣어준다. 몇 번 받아먹고는 고개를 젓는다. 녹두 닭백숙이 나와도 숟가락이 자주 가지 않는다. 죽에 든 닭고기를 발라 먹기 좋게 숟가락에 얻죠 준다. 녹두죽을 몇 번 먹고는 숟가락을 놓는다. 다시 숟가락으로 녹두죽을 입에 넣어주지만, 그것도 몇 번 먹고는 고개를 젓는다. 식욕이 없어 그런지 잘 먹지 못하는 엄마가 안타깝다. 

큰딸도 엄마가 별로 먹지 못하니까 입맛은 별로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닭 요리는 맛있어 자기 몫은 다 비웠다. 엄마의 그릇은 그냥 남은 것 같다. 


엄마는 딸이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바라봤다. 

한참 뒤에 식당을 나서 큰딸의 부축을 받고 차에 오른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엄마는 아직도 말이 없다. 돌아오는 길은 익숙한 풍경인지 보지도 않는다. 

큰딸은 돌아오면서 말 없는 엄마를 보면서 닭 요리가 맛있는데 왜 안 먹었느냐고 물어보고, 입맛이 없는지 물었다.

좀처럼 말이 없던 엄마가 말 대신 손바닥을 펴 보인다. 편 손바닥에 다섯 손가락이 보인다. 그것은 이 집을 요사이 다섯 번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버이날이 있는 달에는 자식들이 자기 시간에 맞추어 객지에서 다녀가는 것이다. 이때 오면 자식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이 집에 오는 것이다. 

큰딸이 생각해 보니까 벌써 다녀간 형제들이 네 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자주 왔을 것 같다. 엄마를 이 집에 연속으로 자식들이 데리고 온 것이다. 엄마는 이곳이 지겨운 것이다. 자식들은 오랜만에 오는 집이지만, 엄마는 계속 자식들이 좋아하니까 온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큰딸이 닭 요리를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엄마를 위한 맛집이 자기들이 먹고 싶어서 오는 집이었다. 

엄마는 이제 원행을 떠났다. 

자식들은 고향 오면 엄마가 그리워 그 집을 찾는다. 큰딸도 이 집에 올 때마다 엄마가 보여준 다섯 손가락이 떠오른다. 자식들이 좋아하니까 말없이 따라왔던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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