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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Sep 21. 2024

담보처럼 사는 두 노인

노인정에 노인들이 모여 놀고 있다. 노인들이 여럿 모이면 함께 할 수 있는 쉬운 놀이가 화투이다. 노인들이 화투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이때 휴대폰이 크게 울린다. 김 노인에게 온 전화이다. 김 노인이 전화를 받아 몇 마디하고는 전화를 닫는다. 이어서 집에서 할머니가 찾는다고 일어섰다. 화투는 김 노인이 빠져도 넷 사람이 할 수 있지만, 갑자기 화투는 파장 분위기이다. 이어서 황 노인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상처럼 황 노인이 집에 하던 일이 갑자기 생각난다며 집에 가야 한다고 한다. 노인들은 중간에 가는 두 노인이 못마땅하지만 늘 있어 온 일이다. 두 사람이 빠진 노인정은 화투는 못 치고 티브이나 잡담하다가 저녁까지 놀다 간다. 


황 노인은 노인정을 나왔을 때 김 노인은 벌써 집으로 가고 보이지 않는다. 

김 노인은 할머니 말이라면 군말 없이 잘 듣는다. 오래 살면서 할머니 잔소리에 주눅이 들어 말 대거리도 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한다. 오늘도 노인정에서 오라고 하니까 한걸음에 간 것이다. 

황 노인의 집은 위로 올라가지만 아래로 간다. 김 노인 집으로 가는 것이다. 마치 담보가 담보를 따라다니듯이 늘 서로 붙어 다닌다. 김 노인 집에는 김 노인 부부도 있지만, 황 노인 할머니도 벌써 와 있다. 이렇게 두 노인 부부들은 같이 모여 담보처럼 제 잘 거리며 늙은이들 수다를 하며 보내는 일이 많다. 서로 만나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다. 늘 두 노인 집에서 모일 때가 많다. 김 노인을 부른 할머니는 별로 할 일도, 할 말도 없지만 이렇게 두 노부부가 만나기 위해서 노인정에서 호출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김 노인과 황 노인이 늘 같이 다니니까 담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황 노인이 장에 간다고 나오면 그때 아래쪽에는 김 노인이 다리를 절며 나오고, 김 노인의 경운기가 할머니를 태우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황 노인이 할머니를 때우고 밭으로 간다. 늘 담보처럼 서로 따라다니면서 살아가는 두 노인은 정답게 사는 같은 한편이다. 


한 마리가 나타나면 주변에 오래지 않아 다른 담보가 나타난다. 몰려다니고 협동해서 사냥하는 담비를 사투리로 담보라고 부른다. 담보는 삵보다 조금 크고 때로 다닌다. 담보는 족제비 과로 잡식성이고 산 열매도 먹지만, 멧돼지도 사냥하기도 한다고 한다. 담보가 빠른 몸놀림으로 합동으로 사냥하기 때문이다. 담보는 들고양이의 천적이고 체구는 작지만, 지금 우리 생태계에서 최고의 포식자로 위치한다. 

두 노인은 살아온 과정이나 생각하는 것과 삶의 수준이 비슷하기에 담보처럼 같이 살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담보가 된 것은 비록 비슷한 조건이지만 그래도 서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통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 노인의 할머니가 황 씨라는 것이 연결고리로 남이 아니라는 구실도 만들었다. 

황 노인은 이웃에 있는 동생보다도 김 노인과 더 친하게 지낸다. 두 노인이 사는 것을 보면 천생연분이란 말이 여기서도 어울린다.


황 노인의 경운기가 탈탈거리면 마을 앞을 지나서 밭으로 넘어간다. 경운기 뒤에는 할머니가 타고 카퍼레이드처럼 한 손으로 경운기를 잡고 다른 손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경운기가 뒷면을 보이면서 멀어질 무렵이면 김 노인의 경운기가 마을 앞을 지난다. 여기도 할머니가 경운기 뒤에 탔지만, 허리가 굽어서 바닥을 보고 말없이 지난다. 다시 점심이나 저녁이 시간이 되면 경쟁하듯이 동시에 마을로 들어온다. 두 부부는 다리를 절고 힘이 없어서 걸어 밭으로 가려면 너무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두 노부부는 경운기가 밭으로 가는 자가용이다. 하는 농사도 고추와 벼농사를 하는 것이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서 아픈 것도 비슷해서 만나기만 하면 자기가 더 아프다고 하면서 병원에도 늘 같이 다닌다. 


원래 두 노인은 젊어서 도시로 나갔다. 농사일이 힘들고 도시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 할머니들이 시골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고, 두 할머니 모두 이곳에서 오십 리 안에 살아온 사람이라 도시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할머니들이 더 극성을 떨어 도시로 갔지만, 농사하던 젊은이들이 할 일은 막 노동밖에 없었다. 막노동 일을 하다가 황 노인이 연이 닿아 도로변의 주차요원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자리가 있어 같이 온 친구도 소개해서 두 분은 오랫동안 주차요원으로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들어온 것이다. 도시에 어려운 생활이지만 열심히 살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 고향을 떠날 때는 같은 또래 여러 명이 같이 갔지만, 시골로 돌아온 사람은 두 노인이고 다른 사람은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두 노인은 그렇게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살아왔지만, 늙어서 외로운 것보다 친한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이고 자연스럽게 안 것 같다. 같은 친척이나 가족은 아니지만, 담보처럼 늘 붙어 다니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먹고, 같이 고민하고 늘 같은 편이 되어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같은 편이니까 다른 사람 뒤 담화도 같이하고, 그렇게 재미있는 다른 사람 이야기도 소문날 일 없이 편안하게 하는 사이다. 주변의 이웃들이 “담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다. 부럽고 질투해서 하는 별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황노인이 경운기를 몰다가 떨어지면서 빨리 피하지 못해서 경운기 무거운 머리가 가슴을 넘어서 갔다. 황 노인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져 병원에 여러 달 입원했었다. 

그때 김 노인이 황 노인 대신해서 무거운 것은 실어 나르고 황 노인 집 농사일을 하면서 추수까지 세 노인이 같이 했었다. 노인들이 그렇게 서로를 돕고 사는 것이 부러울 정도이다. 추수가 끝나고 황 노인은 퇴원했고 그 후로 더 가까이 지내는 담보가 되었다.

두 노부부는 아픈 곳도 많고 모두가 다리를 절면서 걷지만, 이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시골 생활이 무료하거나 노년의 외로움이란 없다.

힘듦과 아픔도 공유하면서 아이들처럼 떠들면서 살아가는 노부부는 지혜로운 것이다. 그래도 건강하게 살려고 좋다는 약재를 모아서 가마솥에 끓이는 것도, 두 노부부가 봄부터 가을까지 모아 겨울이면 달여서 같이 먹는다. 이렇게 담보 같은 친구가 있는 세상을 오래 살고 싶은 것이다. 


노인정에서 화투는 다섯 명이 모여 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담보 두 노인이 있어야 성원이 된다. 한 사람을 부르면 다른 사람은 따라오지만 한 사람이 안 오면 다른 사람도 오지 않는다. 또 한 사람이 가면 다른 사람도 따라가니까 노인정 화투는 두 노인이 있어야 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화투판에서 담보 노인들은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 보고는 알아서 담보 노인끼리는 상대 화투 패를 내준다. 그래서 화투를 같이 치는 사람은 그것을 알기에 그것을 이용도 하지만,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담보 노인끼리는 눈짓은 안 해도 서로 도와주고 밑천이 떨어지면 대신 주기도 하고, 화투판에도 늘 한 편이다.


담보의 우정은 오늘도 계속된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았다. 같이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세상이 즐겁고 외롭지 않게 살다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담보 친구들이다. 

마지막에는 내려놓고 외로움도 혼자 겪어야 하고, 혼자서 마음도 추스르고 편안한 마무리를 하는 것인데, 담보 친구들은 그냥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준비와 고뇌 없이도 담보 친구들은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면서 최상 수준의 인생의 황혼을 보내는 것이다. 

혼자서 쓸쓸히 요양원에 마무리하는 사람과 비교가 된다. 물로 마지막에는 담보 노인들도 그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움직이다가 힘들지 않게 돌아가실 것 같은 담보 노인들이다. 

열심히 움직이니까 몸의 기력을 끝까지 쓰고 편안하게 죽음도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좋은 담보를 만나서 소풍 온 것처럼 즐겁게 살다 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형제보다 더 친한 평생 담보를 만들어 사는 두 노인은 마음이 순수하고 자연스럽고 인생을 순리로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좋은 마무리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담보처럼 살아가는 두 부부의 삶은 노년에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할 일이 있어야 하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것이다. 충분히 갖은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과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해도 이루기 힘든 것을 두 노부부는 사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경운기 소리와 함께 담보 노부부는 밭으로 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보통 살아가는 것이지만 가장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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