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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Sep 16. 2024

금싯골 가는 길

금싯골로 가는 길, 산으로 오르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칡넝쿨로 덮이고 산 풀이 너무 자라 기억 속 위치는 길이 없었다. 무성한 숲 풀을 헤치고 조금 나아가니 어렴풋이 옛길이 나온다. 아직 길은 간간이 빗물에 쓸려간 곳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다.

산길 주변에 나무들이 자라 길을 막기도 하고 길 위에 풀들도 자라고 있다. 

첫 계곡길로 들어가면 골이 깊어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곳이다. 이곳은 유년 시절 비 온 뒤 계곡물이 흐르면 보막이를 하던 곳이다. 산으로 소를 몰아서 올려보내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때, 아이들은 내리는 물을 이용해서 보를 막았다. 보막이는 위에 막은 보에 물을 가두어 터뜨리면, 아랫보로 내려가 보가 터지거나 견디는 한여름의 놀이다. 아랫보를 넓고 크게 막아 위 보에서 한껏번에 내려오는 물을 뚝이 버터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가 터져도 웃고, 안 터지면 소리 지르며 좋아하던 산골 아이들 놀이였다. 


지금은 이맘때쯤 한 번 지나가지만, 예전엔 다니기 좋은 훤한 산길이었다. 

또 다른 계곡을 지나면 산허리를 돌아 위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이 우거져서 보이지 않는다. 우거지니까 사람이 지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다니니까 그 길은 더 우거져 길이 없어진 것이다. 

여러 곳을 한참을 헤매다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예전에 나무해 내려오다가 지게를 놓고 쉬던 큰 바위는 아직 그대로이다. 그 옆으로 난 길은 아직 희미하지만 보인다. 

이곳은 “윷판맥이” 부근에서 나무를 한 짐 지고 내려오던 사람들이 쉬었던 바위로 옛사람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땀 훔치는 모양이 그려진다. 여기서 쉬고는 산 아래 평지까지 내려갔다. 그 농부들은 무거운 한 짐이지만 그렇게 힘든 줄 몰랐고, 어떤 이는 고무신을 신고 다니기도 했다. 

길은 가파르게 이어져 “윷판맥이”로 오르는 오르막이다. 이곳이 금싯골로 가는 가장 힘든 길이고 깔딱 고개이다. 지금은 너무 힘이 들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산길은 오르막이 끝나는 부근에 “윷판맥이”가 나오고 그곳부터 산등선을 따라가는 길이다. “윷판맥이”는 정월 대보름날 달 보러 와서 이웃 동네 달 보는 곳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이 길은 겨울에 땔감 하러 다니던 길이고, 대보름날 달 보러 가던 산길이라 어느 곳보다 다니기 좋은 길이었다. 

그런 길은 기억 속에 있고 지금은 다니지 않아 거의 정글 숲길이다. 그래도 옛길이 대강 방향과 모양이 남아 있다. 옛사람들이 수백 년 다니던 길이니까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요즈음은 이 길을 산에 사는 짐승들이 다닐 것이다. 주위에 온통 우거져서 그래도 다니기 좋은 길은 사람이 다니던 이 길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이제 추석 전에 벌초 가는 길이 되었다. 그래도 수십 년 전에는 벌초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은 여전히 다니기 좋았다. 이제는 벌초 가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 길은 산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쁜 쉼을 몰아쉬면서 마지막 오르막을 오른다. 

오르막 뒤는 약간 넓은 평지이고 그곳에 이웃집 묘가 있는 곳이다. 예전에 이 묘는 자손들이 많아 잘 관리되어 이곳에서 한참 쉬기 좋은 곳이었다. 

이제 이곳에는 아직 벌초도 하지 않았고, 산소도 관리되지 않아 산처럼 보일 정도이다. 자손들이 대처로 떠나고 노인들은 돌아가셨다. 예전에 여러 자손들이 함께 하던 벌초도 장자 집에서 관리하면서 벌초 대행업체에서 풀을 벤다고 한다. 

이 산소를 지나 조금 위가 “윷판맥이”이다. “윷판맥이”는 넓고 평편한 바위들이 여러 개 군락으로 있는 곳으로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면서 큰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풍광이 좋은 작은 고개이다. 이곳 바위에 윷판이 파져 있어 “윷판맥이”라고 불린다. 이 윷판을 힘센 장수가 손가락으로 눌러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윷판맥이”에 와서는 연신 옆을 살피면서 간다. 예전에 여기 뱀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뱀을 보지 못한 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 뱀들은 지나가면 먼저 알고 도망가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놀랐다. 오늘도 여기서 도망가는 뱀 꼬리를 봤다.


금싯골에 벌초하러 가기 길에는 막냇동생이 앞서고 내가 뒤를 따라갔다. 

동생은 예초기를 메고 가고 난 낫과 물이 든 배낭을 가지고 가는데도 숨이 차고 힘이 든다. 이렇게 숨찰 정도로 힘들다는 느낄 정도의 길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앞서가는 동생이 산길에 처 있는 거미줄을 몸으로 걷고 험한 길은 대강 낫으로 정리하고 가는데도 걷기만 하는 난 힘들다는 생각뿐이다. 

나도 이 길을 중학교 시절에 뛰다시피 오갔던 곳이다. 금싯골 주봉에 부친 묘를 이장할 때 친척들이 도와주고 할아버지가 주관해서 옮겼다. 이때 잔심부름을 한 사람이 나였다. 할아버지가 잊고 온 것이 있으면 바람처럼 집으로 가서 가져왔던 길이다. 그때 산등선과 내리막은 달리고 오르막은 걸어갈 정도로 어렵지 않은 길이었다. 겨울에는 더러 나무하러 왔고, 대보름날 달 보러 동네 아이들이 오가던 길이다. 이 길은 언제까지나 잘 다닐 수 있는 산길로 남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어렴풋이 보이는 길이 되었다. 


그 시절 이 길을 오가며 멀리 보이는 “황새두들”을 보며 보이지 않는 미래의 막연한 꿈도 꾸었고, 금싯골 봉우리에서는 넓은 하늘을 날아 “황새두들”을 넘어서 가는 상상도 했었다. 대보름날 이 길을 걸으면서 가슴 트이는 기분으로 산골을 벗어나 먼 대처로 달려가 마음껏 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 산길은 꿈과 희망이 함께 했던 곳일 때는 활기도 넘치고 숨도 차지 않던 젊은 시절이었다. 세상에 나가서 살다가 이제 돌아와 다시 걷는 이 산길은 힘들고 숨이 차다. 

대보름날 마을 아이들과 함께 가면서 떠들던 그 길은 이제 숲이 우거지고, 산 아래도 나무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 산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의 길인 것 같다. 이 길은 많은 동무들이 떠오르게 하고 할아버지의 인자한 얼굴도 기억 속에 살아난다. 또 이 길은 힘차게 나무해 한 짐 지고 내려오던 동네 어른들도 보이는 듯하다.


“윷판맥이”를 한참 지나서 마지막을 작은 깔딱 고개를 오르면 금싯골 주봉에 자리한 산소가 보인다. 예전에 산소가 우뚝하게 드러나 보였지만 지금은 주변의 나무와 숲으로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금싯골 산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높고 탁 뜨인 곳에 자리한 묘소는 아래로 동천이 흘러 돌아가는 모양과 “황새두들”이 멀리 보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가슴은 확 트이고 시원하다. 이제 돌아와 다시 그 자리에 섰지만, 산천은 변한 것은 별로 없고 흰머리만 늘어났다. 여기까지 오는데, 힘이 들었다. 

동생과 작업하면서 여러 곳에 짐승이 만든 구멍을 메우면서 낮아진 묘소와 우거지는 주변 숲들만 무성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제 이곳은 희망의 끈을 찾으려고 오는 것도 아니고, 아련한 조상의 그리움이나 존경만으로 온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했듯이 한 해 보내면서 산소에 무성하게 자라 풀과 나무를 제거해 주려고 온 것이다. 한 해만 벌초하지 않아도 산이 될 것 같아서이고, 이웃 눈치와 아직은 산에 오를 자손이 있다는 표현일 수도 있고, 해야만 마음이 편하기에 온 것이다.


금싯골로 오는 산길은 길고 멀었다. 

멀지 않아 아득히 먼 곳이 될 수 있고, 멀리서 올려다보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난 나이가 들어도 힘만 있으면 가야 할 곳이지만, 미래의 세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한참을 서서 내려다보는 아래는 많은 세월이 단번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봄날이 있었고, 한여름 한없이 달리면서 흘리던 땀이 보이는 듯하다. 무엇인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이 여겨지던 가을날은 지금 내려 보이는 가을 들녘처럼 평범해 보이고,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 상상이 되는 자리이다. 지금도 산 아래 세상은 멀리 들길을 돌아가는 작은 버스처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고 돌아 내려왔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곳도 다시 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조상님들은 내 자손들은 이렇게 금싯골을 찾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을 것 같다. 나도 올라오기 힘이 부친다. 금싯골은 산으로 돌아가도 밑에서 올려 다 볼 수 있는 곳이지만, 가지 않는 금싯골은 보이지 않은 산속에 있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금싯골 가는 길은 희망과 추억의 길로 남을 날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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