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좋아서 걸었고, 그 길에서 수많은 생각 속에 여러 꿈을 머리로 그리면서 걸었다.
꿈을 꾸기에는 늦은 나이지만, 단조로운 긴 길을 걸어가면 어느새 여러 생각이 머리에서 꼬리를 물고 나왔다가 사라졌다. 마치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떠난 청년 같은 마음으로 착각하며 걷기도 했고, 때로는 날아간 파랑새를 찾아 떠나온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해파랑길을 시작으로 걷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걷다가 보니 오천 킬로가 넘도록 걸었다. 그 길에는 희로애락도 있었고, 힘들고 걷기 싫을 때와 덥거나 추울 때도 있었다. 어깨춤을 추면서 걷기도 했고 별난 일도 많았다.
한적한 길을 혼자 여러 날 걸을 때 어느 날 작은 슬픔이 올라와 그냥 눈물이 흐르고 오랫동안 울적한 기분으로 걷기도 했고, 나를 돌아본다는 생각에 잠기다가 서러움이 복받쳐 가슴이 답답해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서러움이 아쉬움으로 바뀌어 후회와 안타까움이 되기도 했다.
그 길에서 지난날을 생각하면 때로는 잊고 지냈던 그리움이 나타난다. 그리움에는 멀리 있어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보살펴준 내 편이었고 받은 것은 많지만, 다시 볼 수 없어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움으로 머릿속에 보이는 분들이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이 상상되면 그리움이 가슴 답답한 쓰라린 감정이 되었다.
걷는 길에서 살아온 날을 회상하면서 웃음이 도는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후회되는 일이 더 떠오른다. 걸으면서 옛일을 기억하는 것보다 모두 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았다.
길에서 지난날 후회되는 것은 잊으려 부단히 애쓰며 걸었고, 다시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짐도 많이 했었다. 결국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흐른다.
삶의 무게, 기대와 바람, 아쉬움과 그리움, 희망까지 내려놓는다면 마음이 나를 편안케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망각은 쉽게 오지 않았고 그 아픔은 충분히 생각하고 괴로움을 겪고서 마음이 무디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그것이 무신경해져서 잊히는 것이다.
길에서 나머지 삶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도 있었다. 살아야 하는 의미, 진정한 나의 모습, 감동적인 삶의 마무리는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걸었던 길이다. 그러나 의미는 잡히지도 찾을 수도 없었고, 수시로 변하는 생각으로 머리만 복잡해지기도 했었다.
때로는 희망을 생각하면 걷기도 했다. 희망이 삶의 등불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되려면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벼운 마음을 살려면 희망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노인의 길에서도 희망은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끌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요소이다
길에서 삶의 마무리도 늘 생각하였다. 마무리하는 마음은 모든 생각의 종합판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여기까지 잘 살았다고 자족하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여러 번 반복으로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것을 늘 생각으로 마음을 다짐시켜서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길에서 이것을 다짐해 세뇌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즉 내일 먼 길을 떠나도 가볕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과 주변 정리를 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현실적으로 길을 걷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걷자는 마음이 들어 새롭고 호기심을 돼 뇌이고 걸어도 보았다. 가는 길마다 그곳이 목적이요 의미라는 것을 느끼려고 노력했지만, 다시 잡다한 생각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했지만 그래도 길은 걷는 것으로 좋았고 그렇게 걸어온 길이 긴 여정을 만들었다.
힘든 길이 나오면 곧 지나간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힘든 길은 온통 고단한 생각으로 무거운 걸음이었다. 힘들 때도 필시 지나가고 그다음이 오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길에서도 그러했다.
오래 길을 걸어보니 길에서는 복잡한 생각을 하고 가는 것보다 생각 없이 걷는 것이라는 깨달음도 있었다. 길이 있어 가는 것이고, 걷는 것으로 족함을 알아야 했다.
길은 그냥 걷는 것이고, 생각 없이 걷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걷고서 알았다. 오직 숨쉬기에 열중하면서 보이는 것만 보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길은 가벼운 마음이 되어 나에게 안식은 줄 수 있다.
해 맞이 길에서 희망을 꿈꾸고 해넘이 길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없는 평온이 있기를 바라며 걸었다.
길이 있어서 걸었고, 오직 걷는다는 것에 몰입해서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 명상의 걸음을 추구하며 걷기도 하고, 생각 없이 가는 걸음에서 마음의 비움과 평온을 찾으려고 했었다.
마음의 안식은 생각 없이 걷기만 열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비워지고 편안함이 찾아온다. 다시 길을 만난 날은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