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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가을풍경

by 안종익

지나다 좋은 풍광이나 느낌이 오는 곳을 보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해 놓은 사진들이 폰 갤러리에 저장되고, 가끔 그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오늘도 스치듯 갤러리를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도심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지난 늦가을 마포에 볼일이 있어 갔는데 여유시간이 생겼다. 지난날 바쁘게 일했던 여의도가 멀지 않은 곳이라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난다. 여러 생각도 하지 않고 그곳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 타고 마포대교를 넘어갈 때는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밑으로 보이는 한강이 그날에는 참으로 넓어 보였다. 마포대교 위에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군중이 보이는 듯하고, 대교 끝 부근에서 보이는 여의도 공원 모퉁이는 그대로이다. 그때는 완전히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되었다. 여의도 환승센타에 내려 그냥 익숙한 공원을 옛날처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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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상당히 지났지만, 전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여의도 공원은 익숙하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빨리 국회 앞 국민은행 건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때는 늘 바빴고 내가 늘 있던 곳이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국회로 들어가는 군중을 막아섰던 곳이었다. 아직도 마음에는 그곳이 날를 부르고 찾는 듯했다. 그곳은 국회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국회 정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때는 국민은행 앞에 있어야 주변의 움직임이 모두 들어오기에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그때 그곳 국민은행 노상에서 오랫동안 바쁘게 일했었다.


그곳 국민은행 앞에 있는 은행나무 가지가 앙상할 때부터 시작한 일터는 바쁘게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나뭇가지에 싹이 돋고 잎이 푸를 때를 지나 단풍이 들 때도 쉬지 않고 일하다가 노란 잎이 떨어지면 제일 바쁜 시기가 된다. 눈 내리는 겨울에도 국회는 그곳에 있어 일은 계속되었고, 그곳이 나의 일터였다. 국민은행 앞에서 보낸 시절이 가장 바쁘게 보낸 날들이었다.


여의도 공원에서 군중들이 흥분되어 구호를 외치며 국회로 들어가려는 것을 국민은행 조금 지나서 막아 셨다. 방패든 젊은 의경들이 조밀하게 서 방어선을 만든 것이다. 그곳에서 실랑이를 심하게 하는 일도 많았고, 때로는 막아서면 서로 마주 보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외치고는 해산하기도 했다. 이곳이 집회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마무리하는 곳이였다.

대개 마지막 모양새는 국회에서 들리도록 구호를 외치고 집회를 마감하는 경우였다. 그것은 자기들의 주장을 알아 달라는 구호와 몸짓으로 의사전달을 하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군중들은 이곳 주변에 돌아갈 버스가 머무는 곳이었다.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군중들이 맨손이 아니고 도구를 들고 방패를 밀치고 들어올 때는 버스로 막고 격렬하게 부디 칠 때도 있었다. 그때는 물대포를 쏘고 버스 위에 올라가 전체를 조망하면서 일하던 때였다. 그렇게 격렬한 시기는 늦은 가을에서 겨울이 시작하는 때가 많았다. 많은 단체가 한해를 결산하고 마무리 주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갑자기 몰려오는 군중이 나타나면 정말 바쁘게 막던 곳도 국회 앞 국민은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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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공원에 들어섰다.

멀리는 국회가 보이는 곳이다. 이 공원 가운데에 대형 국기 게양대가 서 있다. 지금도 그곳 게양대에 국기가 펄럭였다. 그 뒤 공원 안에는 색다른 애드벌룬이 떠 있다. 관광객을 싣고 올라 공원 높은 곳에서 여의도 주변의 구경하고 멀리 한강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는 것 같다. 예전에 없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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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있는 국기 게양대를 지나면서 한참이나 오려다 보았다

그 시절 어느 날 아침, 국기 게양대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무전이 나와 급히 이곳에 온 기억이 났다. 밤사이에 게양대 중간보다 높은 곳에 사람이 올라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알 수 없지만, 초가을 밤새 게양대에 매달려 특이한 광경을 만들고 있었다. 무엇을 주장하려고 올라간 것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급하게 사다리차를 불러 땅으로 내려 엠브런스에 태운 적이 있었다.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도 했고, 무엇이 그렇게 절박해서 올랐는지 측은한 생각도 했었다. 그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던 그 사람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 자리엔 태극기가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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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공원을 거의 지나 국회 앞으로 가는 문 오른쪽 교통 CCTV 탑이 서 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이 CCTV 탑 꼭대기에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

한참 여의도 광장에서 집회 중에 한 사람이 이곳에 올라간 것이다. 일단은 안전을 위해 떨어질 것을 대비해서 CCTV 탑 밑에 두꺼운 메트레스를 놓는 것이 우선이었다. 급하게 무전으로 메트레스를 요청하고, 위험한 곳이니까 내려오라고 설득을 했다.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시위 군중이 모여들고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메트레스가 도착했다. 키 크고 약한 동료가 메트레스를 설치하러 들어갔는데, 그때 탑에서 있던 사람이 밑으로 뛰어내렸다. 설치한 메트레스에 떨어지지 않고

메트레스를 설치하고 나오던 약골 동료 위에 떨어졌다. 기절한 동료를 엠브런스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던 기억도 났다. 그 동료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 이곳에서 일을 마치고는 안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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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가는 마지막 사잇길이 산업은행 옆길이다. 이곳에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다. 이 은행 건너편이 모디아 빌딩이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모디아 빌딩 위에서 시각 장애인이 빌딩 난간을 주변의 시선을 끌기 위해 걸어가던 일도 있었다. 한 발만 헛디디면 밑으로 떨어질 상황이었다. 밑에서 올려다보며 조용히 내려오라고 설득했던 기억도 그 빌딩의 난간을 올려다보면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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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 사잇길에 쳐 놓은 차 벽에 시위하던 군중이 불을 질러 화염에 휩싸였던 것이 눈에 선하고, 주변 건물로 옮겨붙지 못하도록 소방차를 급히 불렀던 곳도 지났다. 그곳을 지나면서 그 버스가 타던 곳이 어디쯤 된다는 생각으로 그곳을 찾아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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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민은행 앞에 도착해 내가 늘 앉아 있거나 서성이던 곳에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함성 소리와 구호가 들리는 듯하고, 귀가에는 군중들이 부르던 노래 한 소절인 ”산자여 따르라“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오는 듯 했다.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서 부르던 ”산자여 따르라“는 절박한 군중들의 노래가 이제 그리운 소리가 되었다. 지금 옆에서 그 노래를 부르다면 정겨운 소리일 것 같다.


지금은 국민은행 앞에 늘 군중들이 모이던 곳에 대형 화분들이 놓여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 군중들이 모이는 장소가 많이 좁아 진 것이다. 주변은 아직 그 건물과 거리의 풍경들은 그대로이다. 지하철역이 더 생긴 것 같고, 주변 나무는 그사이에 더 자란 것이 느껴진다. 늘 앉아 주위를 돌아보던 자리에 앉아 옛날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건물 사이로 나오는 차가운 칼바람은 아직도 불어왔다.

한창 시절 이곳에서 일하던 그때는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국회 앞 풍경은 그대로이지만,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모두가 떠나 어딘가 살아갈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에 그리 오래지 않은 추억이 생각나는 곳에서 지난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면 얼굴에는 씁슬함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이렇게 다시 온 것은 옛날로 돌아간 기분으로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면서 잠시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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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일했던 현장에서 서 있으니 지나간 인연들과 그렇게 급했던 일도 많이 잊혀가는 기억이 되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작은 조각은 긴장하고 힘든 일을 끝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동료에게 담배 한 개피 얻어 피우면, 그 연기에 취해 머리가 핑 돌며 기분이 후련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의 담배 이름이 ”디스“였다.

한참이나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아직도 이곳 사람들의 표정은 여전히 바빠 보였다.

그리고 휴대폰 속 사진에 가을은 깊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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