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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기억하는 떡

by 안종익

시장의 떡집을 지날 때 맛난 떡에서 김이 오른다. 명절이나 좋은 날에 먹었던 귀한 음식이던 떡이다.

지금은 먹을 만큼 포장을 해 놓은 떡은 마음에 드는 것을 쉽게 고르면 된다. 그래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은 명절 무렵에 주로 머물고, 재래시장 부근에 볼 수 있는 것이 떡이다.

떡집을 지나다 옛날에 먹었던 떡이 기억에 떠 올랐다. 기억 속의 떡을 요즘 떡집에서 본 적이 없었다. 오직 그 떡은 모양과 맛이 기억 속에 그려진다. 그런데 그 떡을 어느 때 먹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내 기억에는 설 명절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엄마와 할머니가 둘러앉아 떡을 빚어서 둥근 반 위에 가지런히 정렬하듯이 만들던 모습과 어느 명절에 그랬는지 모르겠다. 추석에는 송편을 하니까 설이나 대보름에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그 떡이 먹고 싶은 것보다 기억 속에 되살아나니까 맛나게 먹던 것까지 생각났다. 어릴 때 오랫동안 그 떡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그 떡을 보지 못했다. 왜 안 만드는지 모르지만, 요즈음은 흔적이나 그 떡을 말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추억의 떡이 된 것이다. 그런 떡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나왔다.


이름부터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그 떡을 ”만두“라고 부른 것 같기도 하고, ”망두“라고 부른 것 같기도 하면서 기억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또 기억으로는 떡은 쌀로 빚었는데, 동그랗게 떡을 펴서 반으로 접고, 접어서 겹치는 동그란 끝을 붙여서 만들면 그 모양이 반달이었다. 그 반달 모양의 떡은 바닥이 작은 배 바닥처럼 편편하고 그 안에는 공기가 들어가게 볼록하게 만들었다. 떡 속에 고물이 들어가지 않고, 공기를 많이 넣으려고 했던 것 같다. 만들 때 공기가 부족한 떡은 입으로 공기를 불어 넣고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떡의 모양이 옆으로는 볼록한 반달 모양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솥에 채반을 놓고 그 위에 떡을 서로 붙지 않게 해서 쪘다. 쪄낸 떡은 볶은 콩가루를 무쳐서 먹었던 기억이다. 쌀로 빛은 떡으로 쫄깃하고 콩가루의 고소함이 있던 맛으로 기억은 그려진다.


지금은 왜 그 떡을 하지 않는지, 어느 때 먹었는지 궁금해서 그때 만들어 먹었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았다.

먼저 팔십 중반인 고모에게 물었다. 기억 나는 떡의 모양을 설명하니까, 기억에는 있지만 이름과 언제 먹었는지 몰랐다. 그 재료가 밀가루로 한 것 같다는 추정을 한다. 고모는 그 떡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런 떡이 있었던 것은 기억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떡 이름은 알 것 같았는데, 그 이름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만두라고 부른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분명히 젊어서 해 먹던 떡이라는 것은 기억했다.


그래서 평소에 그런 떡이나 음식 솜씨가 있다고 했던 구십이 된 왕고모에게도 알아보았다. 여기도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는 떡을 설명해도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많은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세월의 지나면서 기억이 지워지고 각자가 기억하는 것은 차이는 있지만, 많은 것은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세월이 무상함을 생각나게 하고 떡에 대해서는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이것은 기억 속에 그 떡을 내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도 내가 더 많이 기억하는 것은 아직 덜 늙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만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작은 엄마에게 전화로 떡을 설명했다. 나이가 아직 칠십 후반이라서 그런지 그 떡을 기억했다. 작은 엄마가 기억하는 것은 쌀로 빚고, 아이 첫돌에 해 먹는 돌떡이라고 했다. 여기도 그 떡 이름은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했다. 빚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이 떡이 속이 빈 이유도 말해주었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아이 첫돌보다 명절에 떡을 먹었던 기억이 분명한데, 명절 때 하지 않았다고 말하니까 아직 확실히 풀리지 않는 떡이었다.


음식도 잘하고 명절 음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여동생은 그 떡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르는 떡이라고 했다. 그런 떡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십 년 차이가 나니까 내가 어릴 때까지 해 먹다가 곧 하지 않은 떡이 된 것이다. 왜 그 떡이 해 먹지 않는 떡이 되었고, 사라진 떡이 되었는지 더 궁금했다.


일단은 컴퓨터 검색으로 그 흔적은 알 수 없었고, 유튜브에도 비슷한 떡은 없었다. 그렇게 간단히 찾아본 것으로는 그 떡에 대한 기록이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그 떡은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있었으나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입맛이나 필요가 없어 없어진 음식이 된 것이다. 그 떡이 특별히 맛이 있어서 기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한 했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그것이 명절에 먹었던 기억이고 나는 돌 때 먹은 기억은 별로 없다.


칠십을 갓 넘긴 다른 이들에게도 전화해 물어보면 기억들이 조금씩 달랐다. 많은 것을 확실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떡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이 첫돌에 했던 떡인 것은 분명했다. 아이들 첫 돌에 이 떡과 수수 팥떡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첫 돌에 만든 떡이니까 아마 기억이 많이 났을 것 같다.

첫 돌에 다른 떡도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 떡과 수수 팥떡을 했다는 것이다. 돌 떡에서 이 떡이 속이 빈 것은 ”속이 빈 떡처럼 마음을 넓게 갖고 살라“라는 의미이고, 수수 팥떡은 액운을 막아주고 수수처럼 거친 세상에도 잘 자라라는 뜻이 가졌다는 것이다. 물론 돌 떡으로 백설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흰 백설기처럼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 떡 이름을 정확히 모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만두하고 하는 사람이 많았고, 망두라고 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이 떡을 잘 아는 사람도 이름이 만두와 망두 무엇이 맞느냐 물어보면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떡은 여러 사람에게 들은 것으로는 아이 첫돌에도 만들었지만, 명절에도 만들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설에 떡국에 넣어 먹었다고 했고, 추석에도 송편과 같이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떡을 쌀로 만들었지만, 쌀이 귀해서 싸라기 쌀로 만들기도 하고 수수로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 떡은 쌀이 귀하던 시절에 다른 재료로도 만들었던 것 같고,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만든 것이 특별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쌀이 풍부해지고 속 고물이 든 송편에 밀리고, 그냥 쌀떡으로는 시루떡이나 절편 떡과 뚜렷한 차이가 없으면서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니까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으로 추정해 본다. 그 떡보다 더 맛난 것이 많이 나오는 세월에 손이 많아가면서 독특한 맛이 갖고 있지 않은 떡이라 잊힌 것이다. 풍족한 시절에 그런 떡을 찾을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게 생각된다.


이 떡을 찾아 여러 사람에게 알아본 후, 떡만큼 다른 생각이 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지워지고, 더 오래 산사람이 더 많이 기억하지 못했다. 구십인 왕고모는 평소에 많은 것을 알고 영리한 분으로 기억했지만 여섯 살이 더 적은 고모에 비해 더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기억이 더 지워진 것이다. 나이가 적은 작은 엄마는 고모보다 더 기억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세월의 길이와 비슷한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한 이치를 느끼니까 삶의 의미를 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런 이치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서와 잊히는 것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여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지금 순리로 잘살고 있다.

우리는 비슷하게 살다가 공평하게 세월 따라 잊히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너무 자연스러워진다.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저 시간이 가면 공평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같이 가는 좋은 여행의 동반자들이다. 긴 여행을 함께 떠나는 사람처럼 앞에 가는 사람과 뒤에 가는 사람들이다. 같이 가는 여행자끼리 정답고 즐겁게 가다가 보면, 여행이 끝나는 것이다. 이런 여행은 즐겁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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