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 오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한국의 한 교회에서 지은 MCM 병원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숙소 주인에게 혹시 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안다고 하면서 지금 갈 수 있다고 한다.
갑작스럽지만 따라나섰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가더니 큰 도로를 건너서 가서 좌회전하니까 MCM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도착은 했지만, 목적은 구경이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 보이면 그냥 ”한국서 왔다“고 말을 붙이고 싶었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서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고향 후배로 에티오피아에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얼마 전에 들은 것이 기억났다. 이제부터는 그 후배를 아느냐고 물어볼 생각이다.
병원의 규모는 상당했다. 여러 곳을 다녀도 한국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숙소 주인이 한국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묻는 것 같다. 그러더니 뒤편으로 간다. 그쪽은 숙소와 교회 건물이 있고, 테니스장이 있었다. 거기서 운동을 마치고 가는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고 후배를 아느냐고 물었다. 잘 안다고 하면서 친절하게 전화를 하더니,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더니 바로 옆에 숙소 건물인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렇게 중학교 때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후배 집을 갑자기 방문했다.
후배는 날 알아보지 못했지만, 동창들 이름을 언급하면서 서로의 기억을 살렸다. 수십 년 만에 보니까 잊어버린 것이다. 사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고향 사람들이 만나 고향이야기를 하니 반가운 만남이 되었다. 난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말을 실컷 하는 것이다.
MCM 병원은 아디스아바바에 서울 명성교회가 선교목적으로 병원도 만들고, 의과대학도 설립한 것이다. 민간단체가 이렇게 큰 규모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지만, 종교단체이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후배는 이 MCM 병원에서 세운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사모님이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준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내일 주일이니까 예배에 참석해서 교인들을 만나보라고 했다.
다음날 교회에는 이곳 교민들과 예배드리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주일에 점심도 같이하지만, 타국에서 시름을 나누는 자리였다. 교민들이 하는 일은 몰라도 이곳에 사는 것에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그날은 온종일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에티오피아의 맛있는 커피점으로 사모님과 음악 했다는 교민이 안내해서 평소에 즐기지 않던 커피도 마셨다. 그렇게 우연하게 오래된 고향 인연으로 잊지 못할 대접을 받았다. 사모님이 선물로 냉장고에 붙이는 것을 사 주었는데, 이것은 배낭 속에서 집까지 잘 갈 것이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한다는 것은 한국 나오기 얼마 전에 후배 둘째 형님과 경로당에서 놀 때,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다. 학교 다닐 때 조용하던 후배였다. 그동안 인연이 없어서 못 봤지만, 이렇게 먼 아프리카에서 만날 줄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만날 인연이었고, 어쩌면 또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일 수도 있다. 너무 반가웠고, 어떤 만남도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후배는 이 길을 만족해하고 잘살고 있었다.
후배와 이야기 중에 ”살아가면서 마음의 평온과 안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런 사람은 종교인이고,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한다고 믿고 따르면, 마음의 평온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목회에 뜻을 두었고 지금 이렇게 목회를 하는 것을 잘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오랜 고뇌한 흔적이 보였다. 서양철학사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서 고뇌한 것이 보였다.
오랜 시간 예수님의 신성과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공부와 고뇌한 흔적이 보였다. 지금은 신성의 예수님으로 믿는 자의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되어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해 나도 많이 생각하고 그에 관한 책도 접해 봤지만, 아직도 위대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에 마음을 두고, 정리해 가는 것일 수도 있다.
후배는 오랫동안 목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와 방향성이 확실히 정해져 사는 삶이 부러웠다. 매일 수많은 생각으로 평온한 마음이 부족하고, 그냥 살아가는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후배의 형제들이 여럿이다. 큰 형님이 목회하시고 내가 아는 두 형님은 신앙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중에서 고향에 농사하는 형님은 고향에서 지관을 하고 있다. 묘터도 잡고 이장하는 일을 하니까 고향에서 초상이 나면, 그 형님을 찾는다. 그 형님은 조상신을 믿는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형제라도 생각이 다르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찾으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이 후배를 만날 인연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 우리 삶이요 여정이다. 그리고 아디스아바바에서 또 다른 인연이 기다리는 곳으로 여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