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항 저 너머 해가 뜨는 기운이 보인다. 어부들은 항구로 배들이 오고 모습도 보이고, 바다로도 더러 나가고 있다. 멀리 보이는 바다에 배들이 떠 있다.
벽화 위에 거진미항이라고 쓴 언덕으로 계단을 오른다.
계단 위에 소나무들은 거진 마을 산림욕장이고, 그곳이 해맞이를 하는 곳이다. 올라가 보니 거진항이 아래로 보이고, 거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에 넓은 바다가 있는 것이 풍요로워 보인다.
산림욕장 숲길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은 여름이라 벌써 해가 떠오른 것 같은데, 지난번 해파랑길을 걸을 때는 겨울이라 해가 뜨지 않은 길을 갔었다.
산림 욕장 길에 여러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기다림”이란 제목으로 넙치 눈이 튀어나오고, 바닥에서 붙어 있는 조형물이 기다림을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햇볕을 받는 등대 조형물은 제목처럼 “희망의 빛”을 연출하는 것 같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이곳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는지 깨끗하다. 정비된 길은 끝나고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산길은 초입에 응봉(정상)을 안내하고 있다.
소나무 숲길을 한참 가다가 도로 위로 멋진 다리를 놓여 있다.
응봉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사이로 올라가는 길이고, 그 소나무 사이로 난 길옆에는 시작하면서부터 양쪽에 작은 돌탑들을 쌓아 놓았다. 길은 지그재그로 급경사 길을 올라가더니, 옆으로 난 길로 갔다. 드디어 응봉 정상이 보인다. 그때까지 돌탑은 계속 쌓아져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바람과 정성을 다해서 돌탑을 쌓으면서 간절함을 표현한 것 같다.
응봉은 해발 122m의 작은 봉이지만 남다른 분위기이다.
응봉에 도착해서 아래를 보니 예상치 못한 절경이다. 예전에 이 길을 왔을 때도 이곳에서 감탄했었다. 화진포 호수가 소나무로 여러 호수로 구분되고 바다의 해안선과 어울려서 멋진 풍광이다. 싱가포르 총리가 개인 휴가로 이곳에 올라 “아름다운 해변과 고요한 호수를 간직한 곳”이라고 극찬을 하였다고 한다.
멀리 금강산도 보이는 곳이 응봉 정상이었다. 응봉에서 화진포로 내려오는 길에는 곧게 뻗은 적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소나무 사이의 급경사에 만들어진 계단도 일품이었다.
화진포 해안에 내려가기 바로 전에 김일성 별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별장은 원래 독일 선교사가 만든 것으로 김일성 일가가 이곳을 휴양지로 이용하면서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고 있다.
화진포 해변의 하트 마크와 멀리 있는 섬은 낭만적이고, 바로 밑 해변이 화진포 해수욕장이다.
화진포 호수의 아름드리 소나무 옆 도로를 걸으면서 화진포 호수를 바라본다. 화진포 호수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으로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호수 따라 송림 길을 걷다가 화진포교를 넘어서 갔다.
그곳에는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 있다고 해서다. 이승만 별장은 단순한 한 채로 화진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돌 오리가 지키는 다리를 건너면 화진포 해안 박물관이 나오고, 그 옆으로 성계 주산지 초도항으로 가는 길이다.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초도마을을 지나서 초도 해수욕장이 길게 자리를 잡고 있고, 그 해변 길을 따라 해변의 끝을 돌아서 갔다.
그 해변의 끝을 돌아서면 멀리 대진항이 보인다.
대진항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먼 길이다. 대진항을 지날 때는 항구에는 고기 경매가 한창이고, 남쪽의 최북단 항구답게 고깃배와 어부들이 북적거린다.
대진항의 높은 등대 전망대를 돌아서 내려가면 대진 2리 해수욕장이 초승달처럼 펼쳐져 있다.
그 끝에 있는 것이 금강산 콘도이다. 이 콘도는 오래된 콘도이지만 위치와 바로 앞에 섬과 모래가 좋아 인기가 높다고 한다.
금강산 콘도에서 조금 더 가면 통일전망대로 가는 안보교육장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명파해수욕장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차량 이동만 가능하다. 해파랑길을 걸었을 때 명파해수욕장까지 걸었고, 나머지는 차로 통일전망대에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략하기로 하고 통일전망대 입 간판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렇게 몇 년 전에 시작한 코리아 둘레길(해파랑길 770Km, 남파랑 길 1470Km, 서해랑 길 1800Km, DMZ 평화의 길 510Km)을 모두(4550Km) 걸었다.
길은 답답한 마음을 덜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찾은 것이다. 처음에는 해파랑길만 걷고 그만할 생각이었지만, 그러다가 유럽여행을 가서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까 거기서도 답답한 마음에 산티아고 순례길과 피스테라 땅끝까지 걸었다. 그러다가 남파랑 길을 시작했고, 그리고 히말라야 트레킹도 했었다. 또 중간에 제주도 올레길도 다 걸었고, 외씨버선 길 도 상당히 걸었다. 그러고는 서해랑 길을 걷고 나니까 나머지인 평화의 길도 다 걸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오늘 그 끝을 만났다. 지금 마음이야 다시 걷지 않겠다는 생각이지만 장담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길이 있어서 걸었고, 그 길에서 어려움과 즐거움이 함께 있었다. 길을 만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길은 인생길과 비슷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