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2 Km 걷다

by 안종익

예전 블로그를 보다가 걸었던 글을 보았다. 지금 더해보니 6,062 Km는 상당한 거리다. 그때 그 길을 열심히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느낀 것도 많은데, 지금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 당시 하던 직장을 마감하니, 마음의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래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보다가 ”해파랑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걸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면 무슨 답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 더 생각과 준비하고 떠났다. 그곳에 길이 있으니, 걸으면 된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시작하는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이었다.

KakaoTalk_20260325_155034034_06.jpg?type=w1

진정한 나의 모습을 성찰하고, 인생 1막에 대한 아쉬움을 잊으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날이 설 이틀 전이었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시원한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돌아서 걸어갔다. 그때 출발하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걷기 시작하여 2 일차부터 발에 물집이 잡혔다. 온종일 걸으니, 물집 다음에 먼저 배낭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메어보는 배낭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넣었다. 배낭은 갈수록 무거워져서 걷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무겁게 느껴져 6 일차 울산에서 우체국을 찾았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집으로 보냈다. 걸을 때 먼저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것은 배낭 무게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때 일 년 중 가장 추운 때였다. 그래도 시작한 것이니까 끝을 보고 싶었다. 삼척 맹방해수욕장을 지날 때는 너무 추워서 해수욕장 화장실에서 들어가니 너무 따뜻했다. 화장실에서 나가기 싫어 한참이나 머물렀다.

KakaoTalk_20260325_155034034_07.jpg?type=w1


걸어보니 처음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생긴다. 발가락도 새끼발가락부터 물집이 생겨 엄지발가락 방향으로 옮겨갔다. 계속 걸으면 물집이 자연적으로 터져 나중에는 말라붙었다. 발가락 물집이 아프고 난 다음에는 발바닥 전체가 은근히 아프다. 그다음 허리가 아프다가 며칠 지나면 괜찮고, 다음은 배낭 멘 어깨가 아파서 계속 만졌다. 이렇게 온몸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아프더니, 보름 정도 지나니까 이제 감각이 없어졌는지 그렇게 아픈 곳이 없었다. 그때도 발바닥은 계속 힘든 것 같았다.


걷다가 점심 먹으러 식당에 혼자 가면, 식사 사절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삼척의 번개시장 부근 허름한 밥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은 노부부가 하는 밥집이다. 혼자 밥을 시켰는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 주인 할머니는 밥을 다 먹어갈 무렵에 다시 밥과 국을 주면서 ”많이 먹어라“했다. 그 인정에 한동안 감동한 적이 있었다.

이 해파랑길 770Km를 26일간 걸어,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또 집으로 돌아오면서 외씨버선길 청송과 영양 구간 60 Km까지 걸었다.

KakaoTalk_20260325_155034034_05.jpg?type=w1


이 길에서 사람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편하게 사는 것을 택하지 말고, 몸과 머리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보람과 행복감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걸으면서 몸으로 알았다.


이제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해파랑길로 걷는 것은 족하게 생각했다.

유럽 여행 중에 언어 소통이 원활치 않아 눈과 다리로 여행하고, 입과 귀는 하는 역할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구경하면서 산티아고 길이 생각났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답답해서 걷고 싶었다. 시원하게 걸어서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프랑스 생장으로 갔다. 생장이 산티아고 길 시작하는 곳이다.


첫날 아침, 생장에서 페레네 산맥 줄기를 넘어가면서 너무나 황홀했다. 완만한 산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산속에 구름이 얻혀 있었다. 구름 옆에는 양 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너무 평화롭고 좋아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거운 탄성을 내면서 그 길을 같이 걸었다. 그 페레네 산맥을 넘으면 스페인이었다. 산티아고 길 3일간은 너무 아름답고 좋았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 맛에 걷는 것이었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22.jpg?type=w1

산티아고 길을 이른 아침에 시작하면, 늦은 오후에 숙소인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그리고 숙소를 잡는다. 그다음 사워하고 편의복으로 갈아입고, 숙소 주변 구경하고 저녁까지 먹고 돌아와 잠잔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선다. 친구나 연인이 걷는 사람, 노부부가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것처럼 걷는 사람, 온 가족이 함께 걷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진진한 얼굴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끝없는 밀밭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래도 중간에서 지루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 산티아고 길 800 Km를 28일 만에 걸었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19.jpg?type=w1

그리고 산티아고 성당에서 피스테라 길 100 Km를 3일 더 걸어, 스페인 땅끝에 도착했다. 그때 대서양이 보이는 절벽에 신고 온 신발을 벗어 놓고 왔다. 지난 후회와 아쉬움을 모두 벗어 놓고 온다는 뜻으로....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17.jpg?type=w1


산티아고 긴 여정에서, 사는 것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오래전부터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싶었다. 네팔 칸투만드에서 포카라 가서 ABC 트레킹을 시작했다.

출발하는 정류장에서 3대 미봉인 카차푸차레가 보였다. 코스는 푼힐전망대를 거쳐 가는 긴 코스를 잡았다. 히말라야 설산을 마음껏 보면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15.jpg?type=w1

설산의 숙소에서 추위에 떨면서도 짐꾼들의 노랫 소리가 슬프게 들였다. 그래도 그 셀파 젊은이들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ABC 트레킹 100 Km를 7일에 걸었다.


그 뒤로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해서 현무암 돌담길을 보면서 귤이 익어가는 계절에 길을 걸었다. 어느 날은 바람이 너무 세게 불었다. 한 걸음 옮기기가 힘들었다. 마치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지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었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13.jpg?type=w1

제주 올레길을 산티아고 길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서, 순한 길이 아니었다. 이 올레길은 437 Km를 12일에 걸었다. 그리고 멋진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눈이 내려 무릅까지 오는데, 앞에 간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이 길도 15 Km였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12.jpg?type=w1


다시는 걷지 않을것 같았는데, 다시 남해안 남파랑길을 걷기 위해, 그 출발선인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섰다. 이곳은 해파랑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08.jpg?type=w1

남파랑길은 ”남쪽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남해안을 보고 걸었다. 이 길은 이순신 장군의 유적과 해녀에 관한 것을 많이 보았다.

걷는 길이 이른 아침에 시작하므로 일출을 보는 날이 많았다. 남파랑 길을 걸을 때, 오전에 걷고 오후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그 길은 거제도 가라산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이었다. 높은 산을 지친 걸음 올라갔다. 지쳐서 못 걸을 쯤에 정상이 나왔다. 내려다보는 풍광은 좋았지만, 그날은 아직도 기억하는 힘든 길이었다.

남파랑길 1470 Km를 47일에 걷고, 마지막 코스인 해남 땅 끝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신고 걸어온 신발을 해변가에 두고 왔다. 아직도 잊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다.

KakaoTalk_20260325_153901481_04.jpg?type=w1


이 길을 걸을 때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아직도 잊을 게 있고, 정리할 것이 있냐“ 그런 핀잔을 들어도 아직도 내려놓은 것은 많이 있는 것 같다.


서해안 길은 서파랑 길이 아니라 서해랑길이라고 부른다.

이제 걷는 것이 익숙해져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에 해남 땅 끝 마을을 찾았다. 그 무렵 해남 들녁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걷기 시작해 목포 부근에 가니, 보리를 추수하기 시작했다. 서해랑길은 갯벌이 늘 보이는 길이다.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것보다 물이 빠진 갯벌이 더 많이 보았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26.jpg?type=w1

김제의 넓은 평야를 걷고 만경강에서 집으로 갔다가 다시 걸었다. 만경강에 가을이 깊어져 있고, 지나는 마을에 감들이 익어서 홍시 되어 있었다. 들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철새들은 이동이 시작되었다. 넓은 들녘에 철새들이 들판에서 먹이를 보충하는 곳을 지날 때, 홀로 걷는 길손이 공연히 철새들을 날려 보냈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27.jpg?type=w1

여러 날 걸으면 이른 아침이면 힘차게 걷다가 오후가 되면 다리의 무게가 천근이 되는 것 같다. 힘들게 걸음을 옮겨서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아침이면 다시 회복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남해랑길 1800Km를 63일간 걸었다. 종점인 강화도 평화 전망대에 도착해서, 이곳에서도 신고 온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왔다. 아직도 잊어버리고, 내려놓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이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25.jpg?type=w1


그래도 아직 걸어야 할 길이 있었다. 코리안 둘레길 중 평화의 길이 남은 것이다. 학생 시절 숙제처럼 끝까지 해야 했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04.jpg?type=w1

이곳을 걷고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다. 한참 지나서 여름에 길을 나섰다. 강화도 평화 전망대에서 DMZ를 따라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길이다. 이곳은 군부대가 많았고, 때로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이었다. 이 평화의 길 510 Km를 17일간 걸었다. 마지막에는 해파랑길과 겹치는 곳이 있었다. 두 번 올라간 응봉에서 내려다보는 화진포 호수와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았다.

KakaoTalk_20260325_153214839_03.jpg?type=w1


신고 간 시발은 3 컬레를 마지막 코스에 남기고 왔다. 그래도 잊고 싶은 것이 잊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다. 모든 길을 걷는 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끝나면 잘 걸었다는 생각과 보람과 만족감도 느꼈다.

길은! 잊고, 내려놓고, 의미를 찾으려고 걸었다. 그래도 아직 잊고 싶은 것이 많다. 그리고 내려놓을 것도 많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는 평생 찾지 못하고, 찾다가 세월 다 가는 것이다. 그 의미는 죽을 때까지 찾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 생각한 느낌과 의미 있는 것들도 잊혀 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보람과 행복이 온다는 것은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KakaoTalk_20260325_155034034_01.jpg?type=w1









































작가의 이전글바보야, 문제는 건강이야